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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tant Reading, Computational Criticism, and Social Critique: An Interview with Franco Moretti

Korean Journal of Digital Humanities / Korean Journal of Digital Humanities, (E)3058-311X
2024, v.1 no.1, pp.157-175
https://doi.org/10.23287/KJDH.2024.1.1.9
Jae Yon Lee (UNIST)
그림 1.

취리히 대학(University of Zurich)의 사회경제사 연구소 (Research Institute for Social and Economic History)에서 대담 중인 프랑코 모레티

그림1.png

1. 루카치(Lukács), 형식주의자들, 형성기1

루벤 해클러(이하 R.H.): 저희 인터뷰를 선생님의 개인 이력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선생님의 사생활이나 지적 배경에 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해서, 로마에서 공부했을 때의 스승이나 연구방법론을 첫 질문으로 드리겠습니다. 어떤 분이 지도교수님이었나요? 무슨 책을 읽으셨습니까? 당시에 유행하던 방법들은 어떤 것들이었나요?

프랑코 모레티(이하 모레티): 저는 리체오 클라시고(liceo classico) 라는, 고등학교나 김나지움과 같은 곳을 다녔는데, 그곳은 라틴어, 그리스어, 철학, 역사 등을 주로 가르쳤고 과학 과목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선생님 중 가장 중요한 분을 중학교 시절에 만났지요. 그분은 엠마 카스텔누오보(Emma Castelnuovo)라는 수학 선생님이었습니다. 로마에 있는 한 대학의 수학과가 그 선생님의 삼촌인가 종조부인 귀도 카스텔누오보(Guido Castelnuovo)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질 정도로, 그 선생님은 유명한 이탈리아 수학자의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엠마 카스텔누오보 선생님은 제가 학교에 다니면서 만난 유일한 천재였습니다. 더 있었을지도 모르죠, 제가 열 살에서 열두 살 정도 되던 때였으니까. 그렇지만 그 선생님은 저에게 기하학을 향한 열정, 직관과 논리의 결합을 향한 열정을 불러일으켜 주셨습니다. 그 열정을 제가 실제로 표출시키는 데에는 수십 년이 걸렸군요.

거의 막판까지 저는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죠. 물리학은, 과학을 전혀 모르던 저 같은 사람에게는 과학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지만 제 수학 실력이 물리학을 연구하기에 확실히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좀 복잡한 사연이 있습니다. 저는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1년 동안 있었고 영어를 잘 했었기 때문에 어떤 문학을 공부할 것인가를 선택할 때에 거의 관성적으로 영문학을 고른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변함없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두 문학은 불문학과 독문학이었지요. 그랬기 때문에 좀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었는데, 저는 영문학자로서는 썩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비교문학자로서는 꽤 준비되어있었던 것이더군요.

대학교에서 저에게 가장 중요했던 선생님은 아마도 루시오 코렐레티(Lucio Colletti)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이론철학을 가르치는 교수였고, 반헤겔주의 맑시즘 분야의 대단한 맑스주의 사상가였고, 또 과학적 방법론을 크게 존중하는 분이기도 했습니다.2

귀도 커스틴: 알튀세르 쪽의?

모레티: 아뇨, 전혀 알튀세르적이지 않았습니다. 전혀요.

귀도 커스틴(이하 G.K.): 반헤겔적이면서도 알튀세르적이지도 않다는 뜻인가요?

모레티: 예, 그는 이탈리아적인 변종(variation)이었습니다. 코렐레티는 구조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구조주의에 매우 영향을 받았습니다만,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는 포퍼(Karl Popper)를 처음 저에게 언급한 분입니다. 포퍼 때문에 저는 뒤늦게 자연과학에 다시 관심을 두게 되었지요.

그 당시에는 맑시즘과 구조주의가 지배적이었지요. 사실 저에게 있어 중요했던 만남은 대략 그 두 개의 사조였습니다. 꽤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데요, 츠베탄 토도로프(Tzvetan Todorov)의 러시아 형식주의자 선집과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Theory of the Novel』을 말 그대로 한 권 한 권 읽은 것이 대학교 2학년 때였다는 것을요. 그때 읽은 루카치는 맑스주의자가 되기 전의 루카치였습니다. 그러니까 토도로프와 루카치가 구조주의자가 아닌 형식주의자였던 때였죠. 그러나 그렇게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접근—하나는 형식주의적이고 미시적인, 다른 하나는 역사철학적인—방식들은 양쪽 다 가능하고 또한 그 자체로 웅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저의 지적인 삶의 전체는 어떻게 두 관점의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애를 써 본 시도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항상 형식주의적인 측면, 사회학적인 측면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둘이 쉽사리 절충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지요. 물론, 저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를 읽었고, 그 대가들의 학문 안에서 두 방법은 이미 더 혼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바로 그 이유로 두 방법은 또한 약해졌습니다. 아마도 두 접근방식 사이에 긴장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겠지요.

R.H.: 그러면 토도로프와 루카치의 텍스트들은 선생님의 강의계획서에 있었나요?

모레티: 『소설의 이론』은 없었습니다. 그 책은, 루카치가 맑스주의의 대단한 비평가였기 때문에 읽었던 것이니까요. 러시아 형식주의자는 물론 수업의 한 부분이었습니다만, 제 생각에 그들의 저서는 다른 목적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기막히게 좋은 번역 시장이 있었어요. 입소문이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고, 중요한 저작들을 젊은 학생들은 종종 교수보다 더 빠르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교수들과는 달리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루카치의 저작을 독일어로, 러시아 형식주의자 책을 러시아어로 읽히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R.H.: 선생님은 독서회 활동을 하셨습니까? 예를 들면 맑스나 루카치나 러시아 형식주의자의 책을 같이 읽으셨습니까? 아니면 혼자 읽으셨습니까?

모레티: 저 혼자 읽었습니다. 독서회라는 것이 당시에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정치적인 그룹들은 있었는데요, 아마도 그런 모임에서 ‘간부학교’(ecole cadre) 같은 것을 운영했을지도 모르지요. 대학 생활을 통틀어 저는 신좌파(New Left) 정치에 참여했습니다. 어떤 해는 더 열심히 어떤 해는 덜 열심히 했죠. 당시의 이탈리아에는 박사(Ph. D.)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물두 살에 논문을 쓰고 졸업했지요. 그땐 운이 좋으면 소규모의 연구비를 받고 (박사후과정은 아니고, 그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스물두 살부터 가르칠 수 있었고요. 저는 1976년 정도까지 계속 정치참여를 했는데요, 트로츠키주의(Trotskyist) 그룹하고, 그 뒤에 『매니페스토 Manifesto』에요. 그게 제 정치참여였습니다.

G.K.: 『매니페스토』 신문 말이군요?

모레티: 맞습니다. 그리고 이 신문은 정치적인 그룹도 있었어요. 저는 전적으로 트로츠키주의 그룹의 한 분파에 참여했습니다.

R.H.: 그럼 선생님, 애초의 동기는 그러한 정치그룹에 참여하는 것이었던가요? 부모님은 그러한 참여를 격려하셨는지요?

모레티: 아뇨, 제 부모님은 많이 개방적이고 너그러운 분들이었습니다만, 좌파는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은 1970년대나 80년대에 훨씬 더 좌파적이었습니다만 당시에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때는 좀 보수적인 편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고전주의자들이었죠. 어머니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었고 아버지는 대학에서 연구하던 금석학자(epigraphist)였습니다. 아버지는 대학에 계셨지만 제가 공부하고 있던 로마의 대학은 아니었고요. 저는 매우 자유분방하고 인문학적인 교육을 집에서 받았습니다. 글을 읽고 옳고 그름을 생각해보는 것과 같은 교육인데, 여러분들의 동년배들이 받은 것보다 더 인문학적인 교육이었지요.

G.K.: 그것이 1970년대의 이탈리아 대학 문화의 한 부분이었겠죠? 대학들이 매우 정치적이지 않았나요, 그때?

모레티: 맞아요. 맞습니다.

G.K.: 그럼, 선생님이 미국에 가시게 된 계기로 화제를 바꿔보겠습니다. 언제, 어떠한 이유로 거기에 가셨나요?

모레티: 1990년이죠. 1972년에 제 학위 논문을 쓰려고 영국에 가 있었을 때, 패리 앤더슨(Perry Anderson)을 만나서 친구가 되었습니다. 사실 제 첫 책, 『경이의 징후들 Signs Taken for Wonders』은 영어로 출간이 되었죠.3

G.K.: 1983년에...

모레티: 맞습니다. 그 뒤에 저는 교양소설(bildungsroman)에 관한 책을 이탈리아어로 썼고, 그 책 역시 영어로 나왔습니다.4 이탈리아에서는 큰 학교에서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이전의 시스템도 그렇습니다만, 지금도 이탈리아 내에서 이동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저는 로마에 살면서 여기저기로 통근을 했지요. 처음에는 페스카라(Pescara), 그 뒤엔 남부에 있는 살레르노(Salerno)요. 하지만 저는 북부 지역에 살고 싶었습니다. 저는 남부 이탈리아-관료적인 로마-가 싫었지요. 밀라노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베로나에 자리가 났을 때 잡았지요, 밀라노에서 쉽게 통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1983년도의 일이었었지요. 그렇지만 베로나 대학은 매우 작은 대학이었습니다. 몇 년 뒤에, 저는 더 큰 곳으로 옮기고 싶었습니다만 이탈리아 안에서 찾기는 불가능했습니다. 반면 프린스턴이나 콜롬비아에서는 저에게 교수직을 제안했었습니다. 제 책이 영어로 출간되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저는 그랬죠, ‘몇 년 정도는 다른 사람이 나를 원하는 곳으로 가 보자.’ 그리고 저는 지금의 제 아내를, 당시에는 학생이었던, 아내를 만났습니다. 미국에 가 보자 했었던 3년이 25년이 되었군요.

R.H.: 그럼, 페리 앤더슨과 만났을 때를 얘기해 주시겠어요?

모레티: 예, 기꺼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와 만나게 된 것도, 당시 제가 어떻게 지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 같습니다. 저는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 안에 있는 영국도서관에서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딱히 특별한 이유도 없이 저는 친구들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만든 트로츠키주의 저널 뭉치를 들고 영국에 왔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몇 년 동안 『뉴 레프트 리뷰 New Left Review』를 읽고 있었는데, 그 주소가 칼라일(Carlyle) 가(街)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찾아보니까 그 주소는 영국박물관과 매우 가까웠습니다. 어느 날 저는 이탈리아 친구들과 만든 저널 몇 개를 들고 그 주소에 있는 집의 문을 두드렸지요. 그때 『뉴 레프트 리뷰』 사무실에는 비서 한 명, 페리, 그리고 문학번역가였던 쿠엔틴 호어(Quentin Hoare)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페리 앤더슨과 만났습니다. 저희는 신문을 읽고,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습니다.

G.K.: 그 뒤에 페리 앤더슨은 선생님의 연구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고...

모레티: 그리고 저희는 좋은 친구가 되었지요. 지금도 좋은 친구입니다. 저는 버소(Verso)출판사에서 출간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애착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지요. 같은 이유로 그들과 함께 출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림 2.

문학작품을 다이어그램으로 읽기-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네트워크로 시각화(프랑코 모레티의 Distant Reading의 책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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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책이 아닌, 그래프와 도표 읽기: 수량적 접근

G.K.: 선생님을 최근에 유명하게 만든 연구방법에 관해 더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5 선생님의 방법론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전산비평”(computational criticism), “멀리서 읽기”(distant reading), 혹은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으로 불러야 할까요? 아니면 더 일반적인 의미로, 문학에 관한 “물질주의적”(materialist) 접근이라고 부르시겠습니까? 선생님의 작업을, 다른 것이 아닌 하나의 이름으로 특정하는 것은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모레티: “수량적”(quantitative)이란 용어는 제 연구의 요긴한 부분이기도 하고 또 중요한 전례도 포착합니다. 예전에 저는 사회사에 수량적 방식을 광범위하게 도입한 아날학파(Annales School)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요, “수량적”인 성격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고, 여기에 “전산적”(computational) 측면이 더해졌습니다. 이 관점은 엄청나게 큰 아카이브 뿐 아니라, 데이터를 조직할 수 있는 알고리즘의 측면도 포괄하지요. 그렇게 알고리즘이 운용하는 데이터에 기반하여 통계적 작업을 수행하는 몇몇 종류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 연구의 또 다른 측면을 표현합니다. 반면 “디지털 인문학”은 단순히 거대한 학문적 영역을 식별하기 위해 등장한 판에 박힌 문구(formula)입니다. 저도 이 말을 씁니다만 단지 다른 사람들이 쓰기 때문에, 또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쓸 것이기 때문에 사용하지요. 하지만 솔직히 저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디지털 인문학”은 의미하는 바가 없는 반면, “수량적” 그리고 “전산적”이라는 말은 의미가 있습니다.

“물질주의적”이란 용어는 정확하기도 하고, 동시에 엄청나게 추상적이기도 합니다. 만약 모든 것을 추상적인 숫자로 환원시켜버린다면 물질주의에 관해 언급하기가 좀 모호해집니다. 이것은 확실히 하나의 추상이 되어버리니까요. 게다가 이렇게 사용할 수 있는 전산적인 방식이 늘어나서 결과를 만들어냄에 따라 혹은 결과가 나오는 것처럼 보이게 됨에 따라, 세계체제와 진화론적 접근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제 생각엔 “물질주의적”이라는 용어가 훨씬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역설적으로, 최근 제 연구에는 의도하지 않았던 물질주의적 요소의 감소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드문 경우는 아니지요. 학문적 연구는 어떤 방향을 향해 움직입니다. 연구자가,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새로운 기술을 가진 다른 그룹과 협업을 하게 되면 특히 그러하지요. 연구자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데에는 수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한 방향으로 향하는 걸음걸음은 크지 않아 지금 당장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만, 시작점을 되돌아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R.H.: 그러면 “멀리서 읽기”는 어떻습니까?

모레티: 그 표현은 “세계문학에 관한 견해 Conjectures on World Literature”라는 제 논문에서 나온 것입니다.6 그 용어는 마지막에 추가한 것인데요, 원래는 “계열 읽기 serial reading” 라고 불렀었던 것입니다. 이 용어로 다시 아날학파를 언급하게 되는데요, 그들은, 제3수준의 계열사(系列史)에 관해 이야기했었지요.7 그것이 저의 참조틀이었습니다. 그 뒤에-여러분도 이런 일이 어떻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지 아시는 것처럼-,“멀리서 읽기”라는 말이 생각났고, “계열 읽기”라는 말을 지우기로 마음먹었지요. 그렇게 부르는 것은 정말 농담 같은 것이었습니다만, 지금은 더는 농담이 아니지요. 매우 진지한 일이 되었습니다.

R.H.: 그러고 보니 읽기라는 것이 선생님의 작업에서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이라는 것이 생각나는군요. 읽기는 다른 개념들에서는 빠져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산비평”은 컴퓨터로 하는 작업에 더 초점을 맞춘 것처럼 들리고요. “디지털 인문학”은 많은 것을 의미하는 포괄적 용어 같습니다. 선생님은 읽는 작업도 많이 하시지요, 컴퓨터 작업도 많이 하시고요? 아니면 해석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모레티: 해석이죠.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당면한 의문은 이러한 것입니다. 해석은 읽기에서 나오는가? 아니면 역설계(reverse engineering)8가 필연적으로 꼼꼼하게 읽는 방식을 추인하는가? 이것은 제가 거의 모든 학생의 의견과 생각을 달리하는 질문입니다. 학생들은, 문장과 단어와 그 의미를 자세하게 살피기 시작하는 언제든 꼼꼼히 읽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저는 꼼꼼히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텍스트를 꼼꼼하게 읽는 행위입니다 [원문 강조]. 그 텍스트를 가장 복잡한 분석을 할 수 있는 연구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말이지요.

연구자는 매우 심도 있는 독서를 할 수 있습니다만, 그 정독에서 사고는, 텍스트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관습적인 문법의 어휘 뭉치들에 의해 진행됩니다. 이러한 두 가지 행위를 구별하는 것이 제겐 유용해 보이더군요. 양쪽 모두 꼼꼼한 작업입니다만, 하나는 텍스트가 있으므로 해서, 또 하나는 계열이 있으므로 해서-사실 계열적 읽기이군요-특징지어집니다. 그 두 작업에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은 유용하다기보다는 어폐가 있다고 봅니다.

R.H.: 해석하는 훈련은 선생님의 학문적 수련의 기초과정이었었나요? 선생님의 학생들은 선생님이 이탈리아에 계셨을 때와는 다른 기술을 배우지 않을까 상상합니다만.

모레티: 음, 그렇게 다른 것을 배우지는 않습니다. 학생들이 문학실험실(literary lab)에서 저와 함께 일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학생들 대다수는 많은 부분에서 아직도 더 전통적인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작업합니다. 해석은, 수량분석이 분포와 빈도와 다이어그램 속 패턴을 끌어내는 사실과도 관계합니다.

문장의 유형이 어떤 단어나 단어군으로 특징지어지든, 이것은-저는 망설이지 않고-사실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모든 연구자가 어느 정도는 같은 결과를 발견하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단어들이 의미론적 군집을 이룬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것은 해석의 행위입니다. 어떤 의미론적인 군집이, 예를 들어 공간이나 친밀감이나 혐오를 의미한다는 것은 해석이 다른 결과입니다. 어쨌든, 그러한 종류의 해석은 텍스트를 읽음으로써 생기지 않습니다, 매우 잘게 쪼갠(atomistic) 단어들을 봄으로써 생기지요.

G.K.: 예, 이미 이야기의 주제는 저희가 관심 있는, 선생님의 구체적인 작업과정으로 옮겨가는군요. 선생님은 정확한 질문이 있고, 연구를 시작한 뒤에 답을 구하는 방법을 찾으시나요?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작업하시나요? 데이터를 엄청나게 모은 뒤, 어떤 패턴을 감지하면 답을 찾아볼 질문이 생기게 되는가요?

모레티: 보통 저희의 연구는 성글고 일반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뒤에, 아카이브 속으로 파고들어 가 첫 발견을 시도합니다. 이후에 저희의 질문을 다듬거나 바꾸거나 하지요, 반복해서요.

G.K.: “아카이브”라고 하셨는데 디지털 아카이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모레티: 예 맞습니다. 디지털 아카이브요. 저희는 매우 명확한 전제, 그러니까 테스트를 거쳐 결국 부정되어야 할 전제를 가지고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부분적으로 그 이유는, 문학이론, 영화이론, 혹은 문화사에 있어 명확하게 정의된 이론들, 그러니까 연구자가 한 부분을 떼어 부정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이론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지요. 결국, 이론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저희는 좀 직관적으로 일을 해온 편입니다. 개별적으로 또 그룹별로 제시한 서로 다른 접근법들 사이에서 4~5년을 이리저리 방황했는데, 그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저희는 반복적인 방법론을 개발하지는 않았습니다. 스스로 반복적인 단 한 가지 경향은, 수량적으로 찾은 결과를 서사나 스타일과 같은 이미 존재하는 문학이론의 측면과 연결하고 다시 연결하려는 시도였지요. 저희는 주로 소설을 가지고 작업했습니다만 요즘에는 연극이론도 추가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형식주의자들과 루카치와 가졌던 우연한 만남을 다르게 구현하는 시도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루카치”는 녹아서 문학사의 새롭고 방대한 물질이 되고, “형식주의자”들은 기존관념에 의해 표상되는 것이지요.

R.H.: 선생님은 해석에 시간을 더 쓰시나요, 아니면 데이터 처리에 더 쓰시나요?

모레티: 저는 프로그램을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니 데이터도 처리하지 않지요. 제 학생들과 젊은 동료들이 프로그램을 구동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는지 완전히 알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떨 때는 며칠씩 걸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몇 시간이나 그것도 안 걸리는 때가 있거든요. 데이터를 찾는 일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덜 걸리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대신 연구 과정을 되짚어 더 큰 그림을 보여드리지요. 저희 프로젝트는 연구 시작의 첫날부터 결과의 출간 때까지 보통 몇 년이 걸립니다. 데이터는 첫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 대부분 섭렵하고요. 저희가 질문할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에는 이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실제로 검토하고 이 모든 과정을 다시 쓰고, 이해하는 데에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요. 우리가 지금 따라가는 논리는 무엇인가? 왜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가? 이 발견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는 데에 가장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것이 해석일까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데이터에 관한 모든 연구가 그 자체로 해석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어떤 것은 기술적(記述的)입니다, 저희가 따르고 있는 논리를 찾는 과정 같은 것들 말이죠.

R.H.: 랩에서 하는 일은 공동작업인 거죠? 선생님께서는 항상 “저희(we)는," “저희는 이랬습니다”, “저희는 저랬습니다”라고 말씀하셔서요. 그렇지만 홈페이지나 팸플릿을 보면9 대부분 단독저자로 되어있더군요, 몇몇 논문은 공동저자로 되어있었습니다만.

모레티: 저희는 작업틀(template)을 정해 놓지는 말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몇몇 작업은 단독저자입니다. 저의 논문과, 한 학생이 쓴 박사학위 논문의 챕터, 그리고 다른 학생이 쓴 학사학위 논문의 요약본 등등이 그것이죠. 그렇지만 이러한 연구의 진정한 새로움은 네 명이나 다섯 명이 함께하는 공동작업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저희가 만든 최고의 팸플릿들은 모두 그러한 유형의 작업입니다.

R.H.: 그러한 공동작업의 조건은 스탠퍼드에 몇 년 동안 상주해서 선생님과 같이 일할 수 있어야 하는가요?

모레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현재 있는 많은 공동연구자는 학생입니다. 몇몇 학생들은 2~3년 전에 스탠퍼드를 졸업하고 떠났죠. 그렇지만 저희는 지금도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태워 불러서 보통 한두 번의 미팅을 합니다만, 대부분의 긴 종반 작업은 이메일을 교환하면서 처리합니다.

R.H.: 랩에서 실험을 많이 하셨는데, 성공적이었습니까? 다른 자리에서 저희에게 말씀해 주신 바로는 그렇지 않았던 실험들도 있어서요, 성공과 실패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군요.

모레티: 실패한 실험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희에게는 1년, 2년, 3년이 되어가는 프로젝트들이 몇 개 있는데 이 작업은 이야깃거리도 흥미롭고, 상당히 근거 있는 결과도 어느 정도 도출되어 있죠. 그렇지만 아직 기술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사례는 어떤 면에서는 성공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입니다. 보통 저희가 실험하는 각각의 프로젝트는-이것은 왜 기술적(記述的) 요소가 중요한가 하는 부분이기도 한데-성공과 실패를 섞어놓은 과정입니다. 여러 변곡점을 지나지만 결국 어디도 아닌 길을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비율이요? 아마 50대 50 정도 아닐까요?

G.K.: 연구하시는 텍스트는 선생님 그룹에 있는 분들이 모두 수집하고 스캔한 것입니까? 아니면 이미 디지털 형태로 있었던 텍스트를 쓰신 것인지요.

모레티: 텍스트 대부분은 이미 디지털 형식으로 있는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 저희가 만든 팸플릿에서는 한 절(節)의 전체를, 아카이브에서 무작위로 좋은 표본을 얻는 작업의 어려움에 관해 썼습니다.10 간단히 말해 결론은 모든 것을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신화라는 것이죠. 또한, 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공짜라는 것은 또 다른 신화입니다. 1790년 출간된, 세상에 단 한 권 남아 있는 어떤 소설을 소장한 도서관은 그 책을 디지털로 만드는 데에 1만 5천에서 2만 불의 돈을 요구합니다. 디지털화함으로써 그 책을 없애 버리려 했는지도 모르지요. 귀중본 도서관들에 연민을 느낍니다. 그리고 프로퀘스트(Proquest)나 센게이지(Cengage) 등과 같은 상업적 기관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포식자들이고, 도서관과는 다른 이야기이지요.

G.K.: 선생님께서는 표본이 실제로 얼마나 편향되었는지 측정할 수 있습니까?

모레티: 예, 구체적인 수치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가 만든 무작위 샘플을 살펴보면, 소설 표본의 1/3은 이미 기존의 자료가 있는 것들이고, 1/3은 저희가 찾아서 추가한 소설들이고, 그리고 나머지 1/3 정도는 빠져있지요. 그런데 이 누락된 1/3이 더 빨리 잊혔던 소설이지요. 어떤 면에서는 이 1/3의 소설이 저희가 정말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입니다. 정전화는 매우 편향적인 것이니까요.

R.H.: 이 질문은 더 일찍 드렸었어야 했는데요, 언제부터 컴퓨터로 작업을 시작하셨습니까? 선생님은 아날학파의 성과에 매료되었다고 하셨죠. 그런데 컴퓨터를 문학 분야에서 주된 연구 도구로 사용하는 일은 조금 다른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만.

모레티: 90년대 중반 『유럽 소설의 지도』를 쓰고 있을 때 컴퓨터로 작업을 시작했지요.11 그렇지만 그때는 매우 단순한 통계 테이블이나 다이어그램 정도였고, 제가 엑셀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만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2002/2003년경으로, 그때 매튜 쟈커스(Matt Jockers)가 스탠포드로 왔지요. 쟈커스와 저는 2004년, “디지털 데이터와 문학이론”(Digital Data and Literary Theory)이라는 대학원 과목을 개설했습니다. 그 수업의 학생이 몇 명이었는지 아세요?

G.K.: 두세 명 정도요?

모레티: 한 명이었습니다. 개강 하루 이틀 전에 미국에 온 독일 학생이었는데 들을 만한 강의를 찾고 있었던 학생이었죠. 그리고 순전히 호기심 차원에서 몇 명이 왔었고요.

R.H.: 컴퓨터 산업의 영향은 없었습니까? 선생님은 실리콘 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의 베이 지역(Bay Area)에서 일하고 계시니까 제 생각에는 주변에 있는 더 큰 컴퓨터 회사들과 협업할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은데요.

모레티: 저희는, 제 기억이 맞다면, 외부에서 연구비를 받은 적도 없고 신청한 적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희가 베이 지역에 있는 것이 재앙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프로그래머를 고용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개발자 실력이 괜찮다면 컴퓨터 업계 쪽에서 20배는 더 받겠지요. 그런 대형 컴퓨터 회사와 관계를 맺은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그 프로그래머는 애플의 연구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저희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희도 선생님의 랩에서 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와 유사한 것을 작업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회의에 참석해도 될까요?”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물론이죠, 저희 쪽에서도 한 명이 애플의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면요.” 저쪽에서는 이 대답을 무례하고 모욕적인 언사로 받아들였습니다. 어찌 감히, 하면서 말이지요. 큰 회사들의 태도가 그렇더군요. 그들은 정말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들은 회의에 들어올 수 있는 권리가 있고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대단하죠?

R.H.: 그럼 이런 면에서 스탠퍼드는 섬 같은 존재군요.

모레티: 아뇨, 이번에 임기를 마치는 스탠퍼드의 총장님은 구글의 이사로 가십니다.12 스탠퍼드는 산업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만 저희는 아니죠.

G.K.: 선생님께서는 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미디어, 예를 들면 필름에도 관심 두고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2001년에 “할리우드 행성 Planet Hollywood”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셨는데, 그 논문에서 미국의 서부 영화의 세계시장 수출을 다루시면서 문학연구에서 사용하신 것과 비슷한 방법론을 사용하셨습니다. 영화에 대한 선생님의 관심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요. 어떤 계기로 그런 연구를 시작하고, 그 논문을 쓰셨는지요. 선생님께서 문학연구에서 사용하신 방법을 다른 분야에 적용할 수 있습니까?

모레티: 그 논문은 제가 연구하고 있던 이동식 도서관의 등가물처럼 생각난 것입니다. 아마 다른 곳에서 비슷한 쓰인 사례를 발견했을 수도 있는데, 솔직히 지금은 생각이 안 나는군요. 요즘엔 비디오 대여점은 사라졌습니다만 그 대여점은 정말 이동식 도서관과 같은 기능을 했었지요. 비디오는 사기에는 너무 비싸고 빌려주기에는 충분히 쌌지요. 장르로 분류되어 있고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제가 문학연구에서 사용한 방식은 특히 소설과 허구 기반의 영화(fiction film)와 가깝게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 시리즈는 또 다른 연재물이고요. 그간 예술에 관한 연구, 예술 시장의 중심적 권력에 관한 연구들이 있었습니다만, 예술 내부에서 본 시각은 좀 달랐습니다. 개별 작가와 그의 작품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고 또 작품에 지급하는 엄청난 비용이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지요.

약간의 수정을 거친 진화론적인 방법이-옳건 그르건 간에-다른 분야에서도 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적 영역을 벗어나는 일은 좀 복잡한 문제를 수반하는 것이죠. 사회학자인 도미니크 페스터(Dominique Pestre)와 함께 세계은행에 관한 논문을 출간하긴 했습니다만.13 텍스트는 언어로 되어있고 저는 사용된 용어를 분석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니까요, 전산적인 방식의 도움으로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G.K.: 더 구체적으로 문학과 영화에 관해 여쭤보아야겠군요. 이 두 분야의 중요한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필름의 진화는 문학의 그것과는 다르게 기능한다고, 아직도 그렇게 보고 계시는지요.

모레티: 제 생각에는 사용 언어와 참여 조직이 다릅니다. 언어적 차이를 말씀드리면, 필름은 문학보다 더 복잡한 언어를 통해서 소통합니다. 필름은 시각적이고 언어적인 두 층위의 시스템이니까요. 그 위에 프레임과 샷 등등이 있죠. 줄거리 구조에 관해서는 이 두 종류의 언어를 쉽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만, 스타일을 보면 훨씬 더 복잡합니다.

영화사 연구에서 앞으로 더 연구해 볼 있는 지점은 영화 제작의 집단적 성격입니다. 영화는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일련의 문서들을 남기기 때문에 어떻게 그 형식이 만들어졌는지 우리가 알 수 있거든요. 문학에서는 추측만 가능합니다만. 하지만 그러한 연구들이 있었는지, 흥미로운 성과를 냈는지 잘 알지는 못하고요.

G.K.: 또 물론 두 영역에서 비슷한 점도 많지요. 정전의 반열에 오른 걸작들도 있고, 사람들에게 잊혔지만 아직 데이터상으로 존재하는 작품들도 있고요. 그럼, 선생님은 여기서 적게나마 영화에 관한 일반적인 정보를 아직 얻을 수 있다고 보시는 거죠?

모레티: 예, 그렇습니다. 요컨대 저는 존 웨인이 등장하는 서부 영화 중에 제가 못 들어본 영화의 수가 그렇게 많은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G.K.: 선생님은 그 영화들을 어떤 목적을 가지고 보시나요? 존 웨인의 서부 영화에 관한 분석이 곧 발표되나요?

모레티: 아뇨, 그렇지는 않고요. 하지만 학부생들에게는 185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영미문학 입문 수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850년대 문학으로 디킨스를 다룹니다만 1940년대는, 문학보다는 영화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물론 좀 복잡해지지요. 한 강의에서 서부 영화와 느와르 영화를 상반되는 장르로 가르치게 됩니다. 두 장르는 거의 동시대에 존재했고 아주 성공적이었지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기능했습니다. 이 둘을 비교해보면 문화적 시스템을 흥미로운 시점에서 보게 됩니다. 서부 영화와 느와르 영화 모두를 동시에 생산했던, 같은 문화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정말 무엇인가를 시사하는가? 관련된 장르는 서부 영화와 느와르 영화이지 서부 영화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Antonioni) 영화는 아닌데, 이것은 문학에서도 그런 것처럼 어떤 관점(positions)이라는 문제와 훨씬 더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두 장르는 같은 ‘장소’(place)에 있죠, 피에르 부르디외의 예술장(artistic field)을 따르면 말이죠.14

G.K.: 선생님은 더 일반적인 영화이론이나 영화연구에 관심을 두고 계시는지요.

모레티: 그래야만 하는데, 요즘의 연구를 따라잡고 싶은데 솔직히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읽은 연구는 대단히 흥미로웠고 제가 생각하는 방식과 상당히 겹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영화 쪽 전문가는 아니지요.

R.H.: 스탠퍼드의 영화학자들은, 선생님이나 선생님의 랩의 다른 동료들과 일하고 싶어하나요?

모레티: 스탠퍼드는 매우 넓은 곳이어서 다른 분야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자기 있는 곳에서 반평생을 보내기 쉬운 곳입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그리고 앞으로는, 형식과 수량화에 관한 학제간 대화가 더 있어야 하겠지요.

G.K.: 그럼 다시 돌아가서, 통(通)학제적(transdisciplinary) 관점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선생님의 경험으로 볼 때, 수량화와 디지털 도구의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레티: 제 생각에는 두 가지 중요한 가능성이 있는데 이것이 현실이 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가능성은 아카이브에 관한 것입니다. 수량화의 커다란 장점은, 여러 가지 실질적인 이유로 이미 사라졌던 수백만의 텍스트를 순식간에 연구에 사용할 수 있는 자료로 바꿔놓은 것이죠. 그렇지만, 이러한 아카이브를 탐색하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텍스트는 항상 저희에게 말을 걸지만 아카이브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거기 있지만 우리에게 좋은 연구 질문이 있습니까? 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군요. 그것은 디지털 인문학에서 연구하는 분들의 잘못은 아닙니다. 이것은 문학사의 잘못이죠. 지난 30년 혹은 40년 동안 문학사는 정말 시시한 학문이 되었습니다. 방법론에서든 내용에서든 흥미로운 논쟁을 만들어내지도 못했지요. 그런데 이 상황에서 갑자기 몇백만 권의 책과 맞닥뜨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더는 알지 못하게 된 것이지요.

디지털 인문학의 낙관을 바라보는 두 번째 이유는 아카이브를 작동시키는 알고리즘과 관계있습니다. 알고리즘은 데이터를 종종 매우 놀라운 방식으로 조직합니다. 이것은 저와 함께 많은 팸플릿을 만든 대학원생 라이언 호이저(Ryan Heuser)와 같은 젊은 동료들과 같이 일한 경험에서 말씀드리는 것이고요.15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을 저희가 상상할 때, 그는 매우 독창적인 생각을 제시합니다. 그 생각들이 독창적인 이유는, 프로그램을 디자인하고 알고리즘을 인식하는 방식에, 반은 개념이고 반은 두 가지 개념을 연결하는 다리가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직관이라고 불러왔던 어떤 것은 언어로서는 명징하게 진술할 수 없지만, 알고리즘의 작동을 통해서는 확실하게 표현되더군요. 이 새로운 개념을 내어놓는 방식이 제가 디지털 인문학에서 발견한 가장 유망한 측면입니다. 이 방식은 종종 지저분하거나 감춰진 모습을 띱니다만.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느냐고요?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것은 개념을 만들 새로운 기회죠.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G.K.: 그러면 선생님이 보시기에 무엇이 디지털 인문학의 한계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레티: 그것은 우선 요즘의 문학사와 문학 이론의 한계와 문제라고 봐야지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문학은 자신의 학문적 중요성에 관한 감을 잃어가는 분야입니다. 한편 디지털 인문학에 특정된 한계와 문제들도 있지요. 그 문제는, 디지털 인문학이 엄청나게 풍부한 정보를 사용하여 많은 것들을 시각적으로 매혹적인 방식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음에도 무엇을 생산할 수 있을지 분석하는 일에 아주 적은 시간을 쓴다는 것입니다. 전형적인 디지털 인문학 발표는 20개, 30개, 40개, 50개의 도표와 다이어그램, 그래프, 추세선(trend-lines)을 보여줍니다만, 단지 몇 초 동안에 각 그림을 설명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잘못되었어요. 이 방법을 쓰는 목적이 연구 대상인 텍스트나 인용문을 도표나 그래프로 대체하기 위함이었다면, 연구의 새로운 대상도 옛날 방식과 같은 정도로 주의를 기울여서 분석해야겠지요. 똑같은 수준으로 살피지는 못하더라도 비슷한 정도로는요. 제 바람은 우리가 한 시간은 분석하고 탐색할 수 있을 정도로 흥미로운 다이어그램 (예컨대 부르디외의 ‘장’과 비슷한) 하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얻었냐고요? 아뇨. 얻을 수 있을 것 같냐고요? 네. 확실히 얻게 될 것이냐고요? 그건 아무도 모르지요.

R.H.: 데이터 안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죠. 저는 그것이 이 모든 작업을 위태롭게 만드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모레티: 그리고 결과의 발표에 있어서 매우 선동적인 요소도 있죠. 가령 이런 식인데요, “여기 데이터가 있다. 나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니 누구든 그 의미를 찾기 바란다.” 개방형 접근을 바란다고요? 좋지요. 저희도 몇 번 흥미로운 결과를 가지고 그렇게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연구 뒤에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려주세요. 또 그 연구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알려주세요,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맡기기 위해 연구를 했다고 말하지는 마시고요. 세상 사람들은 데이터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연구자의 아이디어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중요한 것은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야” 라고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아뇨,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말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적어도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그림 3.

장 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가 그린 프랑스 저널리스트 루이-프랑수아 베르텡(Louis-François Bertin, 1766–1814)의 초상화. 이 그림은 프랑코 모레티의 책 『부르주아』(2013)의 표지로 사용되었음.

그림3.png

3. 사회비평으로서의 문학연구?

G.K.: 이 세 번째 섹션에서는 사회, 사회 권력, 그리고 사회비평에 관한 질문들에 더 초점을 맞춰볼까 합니다. 『멀리서 읽기 Distant Reading』의 “진화, 세계체제, 세계문학 Evolution, World Systems, Weltlitratur”의 도입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진화론과 세계체재론에서는 개념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다고요. 예를 들면 사회를 대규모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갈등에 관한 사고 같은 것이 빠져있다고요.16 이 문제를 해결할 방식을 찾으셨습니까?

모레티: 아뇨, 그 문제는 해결이 안 된 채로 있습니다. 저는 낙관적으로 생각했고, 갈등의 장르로서 비극을 연구하려고 계획했습니다만 2~3년을 또 랩에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결정해버렸군요. 비극 연구는 생각하다 말다 하고 있습니다. 비극에 관한 연구서는 사회 변화를 다루기에 이상적인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비극은 비단 갈등의 장르일 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투쟁, 화해할 수 없는 투쟁의 장르이지요. 동시에, 비극이라는 형식은 네트워크 이론을 통해 수행할 수 있는 분석의 유형에 적합한 장르이기도 합니다. 갈등의 장르와 갈등을 수용하지 않을 것 같은 이론을 연결하는 것이 제가 연구하고 싶은 방식이지요.

여기에 저는 인류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전형적인 투쟁의 종류를 더 구체적으로 분류하고 싶어요. 진화론을 보면, 전 시스템의 재편은 동물의 왕국에서도 일어나지요. 그렇지만 자기 정당화의 요소, 상징적 요소들은 전적으로 또한 확실히 인간에게만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명명하는 일은 항상 다툼의 소지가 있지요, 생존을 위한 투쟁뿐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쟁을 말할 때, 사실 보통 생존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표현은 어떤 특정한 유형의 생존을 의미하지요.

G.K.: 그럼, 자원의 배분-부, 권력, 그리고 다른 것들-은요?

모레티: 맞아요. 그것도 생각해야 하지만, 또한 분배가 어떻게 조직되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저는 비극을 정말 연구하고 싶은데요, 이 장르가 매우 엄정한-시 연구에서 볼 수 있는 것을 빼고, 문학에서 가장 엄격한-형식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비극적 갈등이 사회적 갈등과 같지 않다는 점 때문이지요. 관계는 있습니다만 확실히 같지는 않습니다. 비극은 어떤 유형의 사회적 갈등에 밀접한 관계가 있지요, 아마 사회적인 것보다는 정치적인 유형의 갈등에 더 관계가 있겠고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가능하게 만드는 형식이라는 연구주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R.H.: 이러한 맥락에서, 문학과 사회와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최근 출간하신 『부르주아 The Bourgeois』에서는 19세기 프랑스, 영국, 독일의 산문이 어떻게 부르주아 가치에 흠뻑 빠지게 되었는지를 다루셨습니다만 선생님의 발견을 당시의 사회적 맥락에 연결하는 데에 크게 애쓰시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문학과 사회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시나요? 문학은 사회를 비추는 일종의 “거울”입니까?

모레티: 거울이라는 비유는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군요. 대신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문학은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에 있어서 하나의 도구라고요. 특히 『부르주아』 같은 책에서 루카치를 종종 언급하면서 저는 여러 문학적 형식들-문학 텍스트, 기제, 등등-이 어떤 지각적인, 문화적인 모순을 풀 수 있는 방식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문학 형식들이 문화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었기에, 이 형식들은 즐거움을 만들어내고 또 동시에 당시의 지배적인 문화, 지배적인 이념을 명확하게 표현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고요.

G.K.: 구체적인 사례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모레티: 『부르주아』에서 분석한 자유간접화법(free indirect style)을 생각해 볼까요?17 19세기에는, 개인 의견을 제시하기 위한 자율성이 훨씬 증대되었고 동시에 일반 여론(輿論)을 형성해야 할 필요성도 늘어났습니다. 하여 사람들은 그 둘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했지요. 자유간접화법은, 개개인의 소리의 어떤 요소를 아직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소리를 직접화법보다는 더 객관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문법에 둘 수 있는 형식이었습니다.

G.K.: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는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형식을 흥미롭게 보고 계신 지점은 잘 알겠습니다만, 내용도, 예를 들어 어떤 고정관념(stereotype) 등등에 관해서도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모레티: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앞서 말씀드린 문학적 형식, 특히 이념적 관점에서 흥미로운 이 형식-자유간접화법이나 교양소설 내지는 추리소설과 같은 장르들-을 볼 때마다, 형식의 구조화가 성공의 열쇠가 아닐까 하고 느낍니다. 예컨대, 자유간접화법은 처음에, 그러니까 1800년으로 잡고 말하자면, 많은 작가가 써 보려고 노력했었습니다만 결국 온갖 종류의 이상한 조합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자유간접화법이 이념적 무기로 강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많은 미시적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지요. 한 세대 정도가 지나서야 비로소 “실수들”이 사라졌습니다.

R.H.: 자유간접화법의 사례는 매우 매력적입니다만, 이것만으로 비평문학에서 형식을 다루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될까요? 선생님께서는 여러 양식의 문장에 관심을 두고 계시지만, 사회 그룹으로서의 작가들이나 출판인들 혹은 글쓰기 훈련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고 계시지는 않지요. 아마 그람시라면, 19세기 문학에 제시된 부르주아 가치는 지배적 이념의 한 부분이라고 보고 문학장에 있는 어떤 작가들이나 어떤 주체들이 그러한 이념을 퍼뜨리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였다고 주장할 것 같습니다.

모레티: 흠, 이 주제는 진화론 토론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왜 진화론에 매료되었느냐고요? 계획적인 설계도 없는 상황에서, 처음에는 방향도 없고 무작위였던 변화의 단순한 축적을 통해 어떻게 매우 복잡한 구조가 탄생했는가를 설명해주는 이론이기 때문이지요, 창조자들은 만들고, 작가들은 쓰고, 음악가는 작곡하고,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청중들의 압력이 어떤 해결책들에 보답했고 그러자 그 해법들은 지배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제가 역사를 보는 관점에 있어서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만든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요. 그리고 그 방향성을 부여한 사람들은 그것을 창조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G.K.: 선생님께서는 인간 사회의 부와 권력의 분배는 정당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념의 주된 기능이 정말 그러한 정당화입니까? 그러면 의문이 생기는데요, 그 이념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요. 독자들이 그러한 이념을 만들어냅니까, 그들이 읽고 싶은 작품을 선별하는 것으로요?

모레티: 아뇨, 작품의 출판은 항상 작가의 편에 있습니다. 청중은 그 출판의 방향을 어떤 쪽으로 살짝 바꾸는 정도지요. 이념의 최종적 형성은, 이를테면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의견이 일치된 결과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또한, 이것은 왜 이념이 작동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념이라는 것이 위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된다고 봐야지요.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두 가지 다른 역할이 있습니다. 한 그룹은 만들고 다른 그룹은 선별하는 것이지요. 청중이 수동적이거나 뭔가 만들어내지 않는 상황에서도 미약하게나마 활동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R.H.: 그럼 선생님은 청중이 이념을 요구한다고 보시는 거죠?

모레티: 맞습니다. 청중이 이념을 요구한다고 말할 수 있지요, 확실히요.

G.K.: 선생님은 문학연구의 정치적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미 어떤 의제가 있습니까? 아니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이 보시기에, 자신은 사회의 어떤 부분을 바꿔야 한다고 아직도 막연하게나마 생각하는 맑스주의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레티: 물론입니다, 사적 유물론자로서 말이죠. 하지만 문학연구에 있어 맑스주의에서 어떤 정치적 결과를 도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정치적 설교류(類)로 변질된 문학연구를 좋아한 적이 없군요. 역사학자의 첫 번째 임무는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문학의 주된 기능은-단 하나의 기능은 아니지요-즐거움을 줌으로써 개인들을 기존사회에 묶는 것입니다. 문학은, 하나의 연구대상으로서, 그러한 대상 중 가장 이념적인 것입니다. 그러한 대상을 다루고 그러한 대상들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분석하는 일은, 적어도 『부르주아』의 경우에, 거의 그 자체로 어떤 종류의 비평으로 움직여 가는 일이지요. 제게 있어서 이것은 문화적 비평과 일반적 의미의 디지털 인문학 사이의 큰 차이, 또한 저 자신의 연구에 있어서 하나의 방식과 다른 방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부르주아』에서 사용한 사회비평은 멀리서 읽기나 팸플릿에서는 정말 잘 드러나지 않는 유형이거든요.

왜냐고요? 책이나 한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세상의 모델과 유사하기 때문이지요. 이 모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 책이 어떻게 세상을 형식화했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이 형식화에는 항상 규범적인 요소, 그러니까 실제 폭력은 아닌, 개입(intervention)과 같은 요소가 있습니다. 분석하는 자는 형식 뒤에 있는 형식화의 힘을 알아야만 형식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은 사회적 힘이죠, 어떤 식으로 매개되든 말이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말뭉치(corpus)를 가지고 연구자가 수량분석을 하게 되면 심각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누구도 쓰지 않은 말뭉치는 메시지도 없고, 어떤 면에서는 의미도 없습니다. 이 말뭉치와 사회적 현실과의 관계는 매우 불투명하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좇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 말뭉치를 가지고 어떻게 정교한 사회비평을 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G.K.: 그 말은, 연구자로서 선생님의 다른 두 인격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고 계시다는 말로 들립니다.

모레티: 바라건대, 그것은 비극에 관한 연구서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H.: 선생님은 어떤 종류의 비평을 하시는지요. 부르주아 가치에 관한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을 더 이해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것이 비평의 중요한 점이다는 것과 같은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아니면 선생님 책에 있는 비평의 유형에 관해 어떻게 표현하시겠습니까?

모레티: 『부르주아』 책에서 예를 몇 개 들어보죠. 저는 빅토리아주의(Victorianism)을 현재 미국 문화를 부분적으로 참조하여 논합니다. 자본주의 시대의 지배계급인 부르주아는 자본주의의 사회적 형성을 위한 헤게모니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면에서 그들의 가치를 버렸습니다. 대신, 그들은 귀족적이고 기독교적인 가치들을 다시 고취하였지요. 이것은 단순히 역사적인 언술인 것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또한 사회적 안정의 이름으로 가치를 포기하거나 가치를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지요.

또 다른 사례는-로빈슨 크루소에 관한 챕터와 입센에 관한 챕터, 그리고 이런저런 챕터에 있습니다만-부르주아 가치와 즐거움 사이 절충의 어려움에 관한 것입니다. 미학적 입장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고, 일반적 의미에서 즐거움의 영역에서도 그러하지요. 저는 연구자가 어느 정도까지 비평을 비평으로 고려하고 좇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문화에서 행복감을 위한 자리가 없음을 확인한다는 것은 상당히 무거운 언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여기서 저는 다른 계급 사이의 갈등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모든 갈등은 내재하는 것이죠. 『부르주아』에서는 온전히 한 계급의 내부적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 책은 부르주아 계급을 타협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두 인물로 묘사한 챕터로 시작해서, 부르주아의 삶을 필연적이고도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의 결과로 보여준 입센에 관한 챕터로 끝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문물을 선보였던 부르주아 문화가 결국 파멸을 피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R.H.: 부르주아의 그와 같은 결말이 현재를 분석하는 주제가 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그것은 역사적 관찰이라고 보십니까?

모레티: 제 생각에 그건 단지 과거의 관찰 정도지요. 제 책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현재에는 진정한 부르주아 문화라는 것이 남아 있지 않으니까요.

R.H.: 선생님이 하신 것과 같이, 일관성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은 이념에 대한 비판 같습니다. 이념이 작동하는 한 방식은 세계가 완전하게 구성된 것처럼,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구는 것이죠. 이것은 비관적인 메시지를 줍니다. 네가 반항할지라도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은 항상 존재한다는 식으로요. 이러한 세계관이 적절하지 않다고 보여주는 것은 이념에 대한 비판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본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레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루시오 코렐레티가 출간한 『매니페스토 Manifesto』 속 짧은 에세이를 생각하게 됩니다. “맑시즘-과학인가 혁명인가? Marxism: Science or Revolution?"이라는 글인데,18 여기서 그는 기본적으로 과학자들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다른 대안이 없음을 보여주는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그와 반대로 혁명은 세계를 완전히 변화시키려 합니다. 이러한 이분법이 제 저작의 핵심입니다. 저는 현재를 알고 싶은 욕심이 있고, 이 욕심은 과거가 어떻게 현재에 다른 것이 될 수 있었을까를 상상하는 일보다 더 강합니다. 이런 점에서 실증적인 지식은 정치적 비판보다 저에게 더 중요하지요. 그렇지만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저는 종종 지금의 저와 좀 달랐으면 하거든요.

Acknowledgement

원문은 Hackler, Ruben, and Guido Kirsten. "Distant Reading, Computational Criticism, and Social Critique: An Interview with Franco Moretti." Le foucaldien 2, no. 1 (2016): 1–17. DOI: https://doi.org/10.16995/lefou.22

1. 본 인터뷰는 2016년 3월14일 취리히에서 진행되었다. 인터뷰를 전사(轉寫)한 베쓰 가드너(Beth Gharrity Gardner), 원고를 교열한 버나드 하이스(Bernard Heise)에게 감사드린다.

2. 루시오 코렐레티(Lucio Colletti, 1924-2001)는 로마의 사피엔자 대학(Sapienza University)의 철학사 교수였다. 1960년대 중반까지 그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당원이었으나 그 이후 좀더 유연한 입장을 견지하였다. 1990년대에 그는 Silvio Berlusconi’s Forza Italia의 멤버가 되었다. 그의 간단한 이력은, 가디언(Guardian) 지(紙)의“Obituary: Lucio Colletti” 참조.

3. Franco Moretti, Signs for Taken for Wonders: Essays in the Sociology of Literary Forms, trans. Susan Fischer, David Forgacs, and David Miller (London: NLB, Verso editions, 1983). 한국어 번역본은 조형준, 『공포의 변증법-경이로움의 징후들』, 새물결, 2014.

4. Franco Moretti, Il romanzo di formazione (Milan: Garzanti, 1986), translated by Albert Sbragia as The Way of the World: The Bildungsroman in European Culture (London: Verso, 1987).

5. Jonathan Goodwin & John Holbo, ed., Reading Graphs, Maps, Trees: Responses to Franco Moretti (Anderson, SC: Parlor Press, 2011)를 참조할 것.

6. Franco Moretti, "Conjectures on World Literature," New Left Review 1 (January-February 2000): 54-68; also in Franco Moretti, Distant Reading (London: Verso, 2013), 43-62.

7. Pierre Chaunu, "Un nouveau champ pour l'histoire sérielle: le quantitatif au troisième niveau," in Mélanges en l'honneur de Fernand Braudel II: Méthodologie de l'histoire et des sciences humaines (Paris: Privat, 1973), 105-125.

8. 모레티는 “reverse engineering"이라는 용어를, 주어진 형식을 (시적 혹은 재현의) 문제에 대한 해결로 다루는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 문제라는 것은, 다시 얽어서 짜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과거의 어떤 측면을 드러내기 위해, 주어진 작업으로부터 재구조화 할 수 있는 문제를 말한다. 모레티의 The Bourgeois, 14쪽 참조. 모레티의 “reverse engineering" 개념에 관한 토의는, Patrick Kilian "Of Trees and Genealogies: A Foucauldian Commentary on Franco Moretti", in foucaultblog (2016)을 또한 참조할 것. [역자 주: 역설계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회사의 상품을 분해하여 그 생산 방식을 알아낸 뒤 복제하는 것“이다. 네이버 사전] http://endic.naver.com/search.nhn?sLn=kr&searchOption=all&query=engineering

9. Pamphlets of the Stanford Literary Lab.

10. Mark Algee-Hewitt, Sarah Allison, Marissa Gemma, Ryan Heuser, Franco Moretti, and Hannah Walser, "Canon/Archive: Large-scale Dynamics in the Literary Field" (Literary Lab Pamphlet 11, January 2016).

11. Franco Moretti, Atlante del romanzo europeo, 1800-1900 (Torino: G. Einaudi, 1997), 영어로는 Atlas of the European novel, 1800-1900 (London/New York: Verso, 1998).

12. Franco Moretti, "Planet Hollywood," New Left Review 9 (May-June 2001): 90-101; 또한 Distant Reading, 91–105.

13. Franco Moretti and Dominique Pestre, "Bankspeak: The Language of World Bank Reports," New Left Review 92 (March-April 2015): 75-99.

14. Pierre Bourdieu, Rules of Art: Genesis and Structure of the Literary Field (Cambridge: Polity Press, 2009).

15. 예를 들어, 다음을 참조. Sarah Allison, Ryan Heuser, Matthew Jockers, Franco Moretti, and Michael Witmore, "Quantitative Formalism: an Experiment" (Pamphlet 1; January 2011); Ryan Heuser and Long Le-Khac, "A Quantitative Literary History of 2,958 Nineteenth-Century British Novels: The Semantic Cohort Method" (Pamphlet 4; May 2012); Sarah Allison, Marissa Gemma, Ryan Heuser, Franco Moretti, Amir Tevel and Irena Yamboliev, "Style at the Scale of the Sentence" (Pamphlet 5; June 2013); Mark Algee-Hewitt, Ryan Heuser, and Franco Moretti, "On Paragraphs. Scale, Themes, and Narrative Form" (Pamphlet 10; October 2015).

16. Franco Moretti, "Evolution, World Systems, Weltliteratur," in Distant Reading, 121-135, 여기서는 122.

17. Moretti, The Bourgeois, 94-100.

18. Lucio Colletti, "Marxism: Science or Revolution?" in Ideology in Social Science: Readings in Critical Social Theory, ed. Robin Blackburn (London: Fontana, 1972), 369-377.


Received
2024-04-30
Revised
2024-05-10
Accepted
2024-05-13
Published
2024-05-31

Korean Journal of Digital Humanit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