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봄, 네 개의 심리사법1)이 발의되었고 1년 6개월이 지난 2023년 9월 다시 한 개의 법률안2)이 추가로 발의되었다. 비록 다섯 번째 법률안은 아직 상정되지 않아 논하기는 이르지만, 적어도 이 법률안들은 심리서비스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이 다섯 개의 법률안은 필요성 측면에서는 대동소이 하지만 ‘누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 차이는 매우 크다. 다섯 개의 법률안이 발의되었다는 사실에서 심리사법과 관련된 단체가 무수히 많음을 유추할 수 있듯이 심리사법은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을 당위성으로 내세운 직역 간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심리학회 역시 그중 하나의 법률안을 제안한 주체로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진흙탕 싸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이 정치적인 대립을 어떻게 현명하게 극복하고,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법안의 핵심을 고수할 것인가에 대한 혜안이 필요한 시기이다. 다섯 개의 법률안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서로 다르다. 첫째는 심리서비스 제공자의 전공과 관련된 것이다. 이 이슈에 대한 대립은 한국심리학회와 다른 직역 간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심리학회 내에서도 가장 첨예하다. 먼저 학회 내에서의 대립을 살펴보면 일부는 심리서비스 제공자의 전공을 ‘심리학’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일부에서는 ‘심리학 관련 학문’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발의된 법률안에는 심리학 관련 학문으로 제안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심리학회에서 발의된 법률안에 심리학 학문을 그 근거로 제시하는 데 이견이 있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학문이 다른 학문과 접점이 생기고 점차 확대되면서 발전해 나감을 감안하면 이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다만, 이 주장은 두 가지 의문점에 대한 정당화가 필요하다. 먼저, ‘심리학 관련 학문’으로의 확대 주장이 학문적 확대라는 큰 철학이 아닌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 나온 것은 아닌지에 대한 정당화이다. 심리사법 발의 시 나왔던 의견 중 하나는 이미 심리학회의 민간 자격증을 받은 전문가 중에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으므로, 법률안에서 전공을 심리학으로 제한하면 이미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이 제외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학회 차원에서 회원의 권익을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은 학회가 기본으로 추구하는 학문적 방향과는 별개의 문제로 다르게 풀어야 하는 고민이다. 더욱이 심리사법은 이미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위한 법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교육을 받은 사람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느냐와 관련된 미래 방향을 결정하는 고민이어야 한다. 두 번째 의문점은 ‘심리학 관련 학문’의 정의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한 결정은 어떤 이론적 근거하에 심리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과 관련된 것으로, 관련 전문가들의 고민과 타협이 필요해 보인다. 비록 최종 의사결정은 쉽지 않겠으나,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적 학문”이라는 심리학의 기반은 적어도 방향을 제시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심리서비스 제공자의 학문적 배경에 대한 의견 차이는 타 직역과 더 큰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타 직역에서는 아예 ‘상담학’으로 전공 영역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심리학회 내에서 확대하여 정의한 ‘심리학 관련 학문’과도 사뭇 다르다. 타 직역의 법률안을 발의한 주체를 살펴보면 교육학, 신학 등 전통적인 학문 분야뿐만 아니라 놀이치료, 예술치료, 미술치료, 음악치료 등 현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실무를 담당해 온 실질적인 기법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상담학은 국어사전에 의하면 “아동, 청소년, 가족, 직업, 종교 등 다양한 분야와 관련된 상담 이론과 기법 및 기능 따위에 대하여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3). 이 정의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 상담학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발전해 온 학문이므로 그 주제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양한 이론 및 접근 방법이 있고, 따라서 당연히 그 범위가 넓을 수밖에 없다. 상담학과 심리학은 근본이 다른 학문이고(Norcross, 2000; Watkins, 1983), 심리사법에 어떤 학문을 넣을 것이냐는 심리사법이 어떤 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슈는 자연스럽게 두 번째 의견 차이를 설명해 준다.
둘째, 현재 발의된 모든 법률안은 공통적으로 국민의 정신건강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건강전문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적하에 보건복지부를 담당 부서로 지정하고 있다. 여기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보건복지부를 담당 부서로 하는 이 법률안들이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를 보이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서비스를 포함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해당 법률안에서 규정하는 서비스 제공자는 정신장애에 대한 이론 및 실무를 포함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심리학회의 심리서비스법을 제외한 나머지 4개의 법률안은 서비스 내용을 ‘상담’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정의상 심각한 정신건강문제를 보이는 집단을 포함한다고 보기 어렵다. 심리학의 경우 교육 과정에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부터 정신병리와 평가 및 개입에 대한 해당 교육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나, 상담학은 다양한 주제에 대한 폭넓은 상담 이론 및 기능에 중점을 두는 학문이므로 심각한 정신장애 대한 교육이나 훈련이 제한적이다. 게다가 이미 국내에는 여성가족부에서 청소년 상담사, 교육부에서 전문 상담교사, 그리고 고용노동부에서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발부하여 상담과 관련된 자격증을 특화하였다. 따라서 심리학회의 심리사법을 제외한 4개의 ‘상담학’기반의 법률안은 보건복지부가 아닌 다른 부서에서 다루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문가의 교육 및 수련 연한에 대한 의견 차이다. 한국심리학회에서는 유럽식 석사 전문가 양성 제도를 채택하여 심리학 관련 학·석사 교육과 3000시간 이상의 수련 시간을 필수화하고 있다. 발의된 다른 어떤 법률안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과 수련을 강조하는 이 법률안은 정신장애 문제를 효과적으로 개선하는 데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더불어 효과적인 개입 적용을 위한 상당한 시간과 체계적인 감독 하 수련이 요구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실제로 다양한 정신장애에 대한 근거기반치료 문헌들은 적어도 내담자가 임상적으로 유의한 개선을 보이기 위해서는 석사나 박사 수준의 전문가가 회기당 50분가량의 1:1 전문 서비스를 적어도 12~16회 동안 진행해야 함을 보여준다(Hansen et al., 2002; Saunders et al., 2019). 더군다나 이런 집중적인 서비스로 향상을 보이는 내담자는 약 70~80% 정도에 그치고 있어(Lambert et al., 2002) 정신건강문제의 개선이 결코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 국민의 정신건강을 담보로 전문가의 교육 및 수련 연한 차이에 의한 개선 정도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정보는 간접적인 결과에 의해 유추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국가 차원에서 인지행동치료라는 심리학적 이론에 근거한 근거기반치료를 도입하고 체계적인 서비스 제공자 교육 및 서비스 시스템(Improving Access to Psychological Therapies, IAPT)을 구축한 영국을 살펴보면, 국민의 정신건강 향상은 물론 이전까지는 기대할 수 없었던 큰 폭의 정신건강 관련 비용 절감 효과가 보고되었다(Toffolutti et al., 2021). 이는 체계적인 서비스 제공자 양성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국 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2단계로 구성된 서비스 제공자와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필수 교육 제공으로, 1단계 서비스 제공자는 학사 수준의 교육을 받은 이들로 스크리닝과 사례 관리 역할을 하는 일종의 게이트 키퍼이고, 석사 수준의 심리학 전공자로 구성된 2단계 서비스 제공자가 실제 심리개입을 제공하는 주체이다. 이들에게 필수적으로 부과되는 근거기반치료에 대한 1년간의 대학 교육은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심리학 교육의 효과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국 사례의 면밀한 분석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보다 명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상기 세 가지 이슈는 심리사법이 학문적, 정치적, 경제적인 측면의 고려와 함께 직역 간 그리고 담당 부서 간 타협과 협업을 요하는 매우 복잡한 법률안이며, 통과되기가 쉽지 않음을 극명히 보여준다. 법률안의 통과를 위한 노력과 역할은 학문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이 이제까지 해보지 못한 난제로,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의견 교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고려하는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심리학 내에서 심리사법에 대한 관심은 실제 현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몇몇 분과에 국한되어 있다. 심리사법에서 주장하는 전문가 교육에는 생리, 발달, 사회, 지각, 인지 등 기본적인 심리학 지식과 이론뿐만 아니라 실험 설계, 통계 등의 심리학 연구 방법론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심리사법은 심리학 전 영역의 전폭적인 참여와 지지를 필요로 한다. 사람에 대한 학문이 사람을 돕는 데 잘 이용되도록 노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현재의 과제는 한국에서 심리학의 고유한 정체성이 확립되고 다져지기 위한 과정에서 겪는 하나의 성장통으로도 볼 수 있다. 심리사의 자격과 활동에 대한 타 직역의 반대와 방해는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 여러 국가에서도 심리사의 자격이나 면허를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직역의 반발이 있었으며, 법제화 이후에도 심리학자들은 지속적인 도전을 받고 있다. 이러한 난제를 잘 풀어나간다면, 심리학이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과학적으로 다루는 학문으로서 유사 학문과 보다 명확하게 구분되고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지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심리학회지 일반 편집위원회에서는 심리사법과 관련해 지난해 특별호에 이어 올해는 특별 주제로 관련 논문을 지속적으로 발표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는 심리학자가 가장 잘하는 방법, 즉 객관적인 연구 방법론을 이용한 과학적인 방식으로 주장을 펼치는 것이 한국심리학회가 주장하는 심리사법의 정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본 편집위원회에서는 심리사법 특별 시리즈를 통해 한국심리학회에서 발의한 심리사법이 직역 이기주의에 의한 주장이 아닌, 지금까지 130여 년 동안 축적된 심리학적 연구 결과와 사실에 의한 과학적인 주장임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1) 심리상담사법안(2022년 3월 28일, 의안 번호 14984, 최종윤 의원 대표 발의), 국민 마음건강증진 및 심리상담지원에 관한 법률안(2022년 3월 31일, 의안 번호 15039, 전봉민 의원 대표 발의), 심리사법안(2022년 4월 29일, 의안 번호 15453, 서정숙 의원 대표 발의), 상담사법안(2022년 7월 14일, 의안 번호 16456, 심상정 의원 대표 발의)
3) 네이버 국어사전 ( ko.dict.naver.com)
참고문헌
Toffolutti, V., Stuckler, D., McKee, M., Wolsey, I., Chapman, J., J Pimm, T., ... & Clark, D. M. (2021). The employment and mental health impact of integrated Improving Access to Psychological Therapies: Evidence on secondary health care utilization from a pragmatic trial in three English counties. Journal of Health Services Research & Policy, 26(4), 224-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