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좌초되었다. 304명의 승객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방송에 따랐고 해경도 출동하였지만 끝내 구조되지 못하였다. 어떤 사회공동체에 재난과 참사가 발생하는 것은 그 사회공동체가 가진 취약성과 문제점이 드러난 하나의 증후라고 볼 수 있다(Hilgartner, 2007). 세월호 참사 역시 위험 해결을 위해 펼쳐온 한국 사회의 대응들이 얼마나 허술하였는지가 들어난 명백한 증후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적 재난과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실행하였다. 여러 조사 위원회들에서 보고서를 내놓았으며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및 『국민안전처』가 신설되었다. 재난과 참사를 줄이기 위한 심리학적 측면의 노력들도 진행되었다. 피해 관련자 회복을 위한 심리상담 지원과 사고경향성이나 실수 및 일탈행동 발생원인, 지․감각적 오류 등과 같은 접근들이 이루어졌다. 또한 위험감수성과 안전리더십 및 행위기반 안전관리(Behavior Based Safety: BBS)와 정치성향 및 행동 의도에 이르기까지 다각적인 접근들이 이루어졌다(이순열, 2015a, 2015b, 2016, 이순열, 이순철, 박길수, 2018).
그러나 안타깝게도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할로윈 축제를 즐기러 나온 인파가 몰리며 159명이 사망하고 196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하였다(경찰청, 2022a). 이태원 참사 발생은 세월호 참사 이후 실행해 온 한국 사회의 여러 조치들이 사회공동체 위험 해결에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였음이 드러난 또 하나의 증후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부터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까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재난들은 한국 사회가 재난과 참사를 막기 위해 펼쳐온 다양한 노력들이 관행적 답습에 머물러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은 한국 사회가 재난 예방과 대비 그리고 대응과 복구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서 책임을 전가하거나 비난을 회피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금전적 보상으로 무마하려는 관성적인 대응에 고착되어 있음을 호소하는 증인들이기도 하다(이순열, 2015a, 2015b, 2016; 박상은, 2023).
재난과 참사는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재난과 참사는 그 자체로 사회공동체의 여러 결함들이 분출된 결과물이다. 때문에 모양과 장소만 바뀌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재난과 참사는 해당 공동체의 대응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알리는 이정표(里程標)이기도 하다. 따라서 발생한 재난과 참사를 이정표 삼아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과 대응을 한다면 사회공동체는 위험을 제대로 개선하고 극복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재난과 참사로 나타난 문제점들에 대해서 책임과 비난을 회피하는 방향으로만 대응한다면 장소와 형태만 바뀌어 재난과 참사가 반복될 수 있다.
특히 발생된 사회적 권한과 책임이 큰 권력층이 재난과 참사를 기득권을 흔드는 위협이라고만 인식한다면 책임을 모면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법령제정과 조직개편, 조사위원회 보고서 등의 관행적인 조치들로 재난과 참사의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것은 “가만히 있어라!”는 잘못된 신호로 사회구성원들이 위험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기회마저 놓치도록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기만적인 신호로 인해 위험을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시도를 유보하게 될 때 권력층에게도 다른 형태로 변모된 위험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정은경, 2014; 이순열, 김만배, 2021; 박영대, 2023).
2016년 10월 최순실 국정논단 스캔들로 촉발된 대국민 정권 퇴진 요구는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을 만장일치로 이끌어 내었다. 비록 소수의견이었지만 세월호 참사도 박근혜 대통령직 파면을 결정하는 이유로 인정되었다. 이것은 대한민국 공동체 구성원들이 겪는 재난과 참사에 대해서 최고 권력층이 가지는 책임과 권한의 엄중함을 재판을 통해 인정한 최초의 사례이다.
이상과 같이 사회공동체에 발생한 재난과 참사는 그것을 경험하고 관찰하는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동시에 구성원들이 경험하는 위험 해결과 안전 충족으로 인한 만족과 안정 혹은 위험 미해결과 안전 불충족으로 인한 불안과 분노 등은 책임 있는 리더들이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사고 및 재난에 대응하는가와 상호작용하여 또 다른 형태로 변모된 위험을 발생시킬 것인지 아니면 적절한 개선과 극복을 통해서 위험을 해소시켜 나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즉, 권력층과 구성원들의 안전의식은 상호작용을 통해 위험의 불씨를 바꾸거나 키울 수도 있고 조절하고 극복할 수도 있다(Choi, Liu, Mari, & Garber, 2023).
따라서 한국 사회가 재난과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위원회 출범이나 법령제정 및 조직개편과 같은 이전 방식의 답습을 넘어서는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재난과 참사에 대한 정치․사회적 접근뿐만 아니라 인간의식 심연의 작용 기제를 조망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자는 사회공동체 구성원들과 권력층이 가지고 있는 안전의식 양상과 상호작용 및 조절 원리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은 요구 수용이나 자원 제공, 배제 혹은 처벌을 통해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된다(Keltner, Gruenfeld, & Anderson, 2003). 최고위 권력층은 이러한 권력을 사용하는 계층으로 민주공화정에서는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관료들이다. 대한민국 헌법 서문에는 국가 존재 이유로 국민의 안전 확보를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안전에 관한 권한과 책무에 관해서는 헌법 제66조 제2항에서 대한민국 최상위 통치권자로서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다.
국가 및 국민 안전에 관한 책무는 법률(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총리와 장관 등에게로 위임된다. 하지만 재난 및 위기상황에 대한 보고체계를 통해서 대통령에게 최종적으로 전달된다. 즉, 대한민국의 경우 국가조직 최상위 리더인 대통령에 의해서 재난에 대한 예방 및 대비, 대응 및 복구 방향성과 정책적․정무적 결정 및 자원 배분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이 내려진다(그림 1).
따라서 한국 사회 구성원들과 대통령을 필두로 한 권력층의 심리 내적 변인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를 탐구함으로써 재난과 참사가 반복되는 원인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사회공동체가 재난과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 살펴보아야 하는 범위가 어떠한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할지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세월호 참사부터 이태원 참사까지 한국 사회 구성원들과 권력층의 안전의식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를 이순열(2015a, 2016)이 제안한 주제상태조절이론(Theme Condition Adjustment Theory: TCAT)을 적용하여 장기간 전 국민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국가 단위에서 대응하였던 재난들에 대해서 사안별[세월호 참사, 메르스(MERS) 감염병 사태, 코로나-19(COVID-19) 감염병 사태, 이태원 참사 등]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한국 사회 권력층이 세월호 참사부터 이태원 참사까지 재난 및 참사에 대해서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대응해 왔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와 동시에 권력층의 안전의식 양상에 대해서 구성원들의 안전의식이 어떻게 반응하고 상호작용하였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이태원 참사 이후 대한민국 사회공동체 안전의식과 안전문화가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할지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안전의식과 안전문화가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기 위해서 어떠한 조절적 작용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논의해 볼 것이다.
본 논문을 통해서 대한민국 사회공동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다양한 모습의 위험들을 보다 근원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응책을 제안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안전의식과 주제상태조절이론(TCAT)
이순열(2015a)은 안전의식을 위험에 대한 인식인 감수성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위험(risk)을 도전과 실패라는 손익적 관점이 아니라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실존적 위험(danger)으로 파악하여야지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안전의식(safety consciousness)을 위험감수성(danger sensitivity)으로 규정하면서 “안전에 의해 상쇄되지 못한 위험에 대한 주관적 인식”이라고 정의하였다. 안전의식은 경험과 정보를 통해서 변화되고 조절된다. 안전의식을 변화시키고 조절하는 경험과 정보는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체험 및 관찰적 경험과 정보이다. 둘째는 인지적 경험과 정보이다. 셋째는 지․감각적 경험과 정보이다. 넷째는 정서적 경험과 정보이다. 이러한 개별 구성원들의 안전의식들이 모여 사회공동체에서 발현되는 것이 안전문화이다(이순열, 2015b).
이순열(2016)은 개인과 사회가 위험을 제대로 극복하고 안전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안전의식이 위험이나 안전에 과도하게 민감하거나 둔감한 어느 한쪽 상태로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유연하게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위험에 과도하게 민감하면 위험 해결에만 집착하여 이기적인 선택에 몰두하기 쉽기 때문이다. 반대로 위험에 과도하게 둔감하게 되면 방심하다가 닥쳐오는 위험에 안일하게 대응하기 쉽다. 안전에 민감한 것도 마냥 이로운 것은 아니다. 안전 충족에만 집중하게 되면 성취한 안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불필요하게 고조된 불안에 머뭇거리거나 오히려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반면에 안전 충족에 둔감하게 되면 성취된 안전에 도취되어 위험 해결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적절한 안전의식이란 고정되어 경화된 상태가 아니라 긴장 속에서 느슨함을 조율하는 세심한 균형과 지치지 않고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실천 용기와 같은 수학(修學) 능력 이상의 실존적 역량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이순열, 2016).
이순열 등(2018)은 안전의식의 적절성 여부는 발현되는 현재 상태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안전의식이 문제적 양상에 고착되면 현상적인 신호로서 개인적으로는 사고나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공동체적으로는 재난과 참사가 발생하게 된다. 즉, 사고와 사건 그리고 재난과 참사 발생은 개인 및 사회공동체 안전의식의 문제적 양상이 실체적 현상으로 드러난 것이다(Hilgartner, 2007).
발생한 재난과 참사는 대응을 통해서 다시 개인과 사회공동체 안전의식에 영향을 준다. 이때 국가적 재난과 참사에 책임 있는 주체인 권력층과 구성원들의 안전의식은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하게 된다(강민재, 최훈석, 2025).
이순열(2015b, 2016)은 안전의식의 문제적 양상을 조절하고 적절한 안전의식을 획득하는 방법으로 대칭적인 경험과 정보를 공급하는 주제상태조절이론(Theme Condition Adjustment Theory: TCAT)을 제안하였다(그림 2).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에 따르면 개인 및 사회공동체가 위험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문제 양상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 가지 문제 양상은 안전의식을 조절하는 방법인 경험과 정보의 속성인 주관성(主觀性, subjectivity)과 역투성(力投性, value estimate)으로 인해 발생한다(이순열, 2015a; 이순열 2015b; 이순열, 2016; 이순열 등, 2018).
첫 번째 문제 양상은 경험과 정보가 감수성이라는 개체적 차원의 주관성(主觀性, subjectivity)에 기반하는 속성을 가지기 때문에 발생한다. 주관성이라는 문제 양상을 극복하지 못하면 위험을 자기 범위로만 한정하고 타자의 위험은 배제하게 된다. 혹은 타자를 자신의 위험 해결을 방해하는 경쟁자로 인식하면서 자신의 위험 해결에만 몰두하고 타자는 오히려 위험에 처하도록 만드는 이기적인 행동을 선택하기도 한다(이순열, 2016).
두 번째 문제 양상은 경험과 정보가 가지는 에너지로서의 속성 때문에 발생한다. 자연계에서 쓸모있는 에너지는 감소하는데[열역학 제2법칙]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에너지의 공급이 필요하다(Schrödinger, 2007). 이순열(2016)은 이것을 역투성(力投性, value estimate)이라고 표현하였다.
개인 및 공동체가 위험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 및 비용투자, 관심과 노력 등과 같은 여러 형태의 경험과 정보 에너지가 적절히 공급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개인이나 공동체의 사용 가능한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치판단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 어떤 위험에 얼만큼의 에너지를 몇 번째로 투입할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Ulrich, 2014). 이때 에너지 투입의 우선순위를 자신에게 두면 이기적인 결정과 권력 남용, 타자 배제 등의 역기능적 선택들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역투성의 문제 양상을 극복하지 못하는 개인과 사회공동체에서는 위험 해결을 위한 에너지 투입을 이기적인 방향으로만 하거나 자신의 위험 해결에 타자의 에너지를 대신 투입하도록 하는 기만적인 행태들이 나타나게 된다(이순열, 2016).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은 개인 및 사회공동체에 나타나는 현상을 통해서 안전의식과 안전문화의 적절성을 평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재난과 참사가 모양과 장소만 바뀌어 반복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볼 때 대한민국 사회공동체의 안전의식이 주관성과 역투성이라는 문제 양상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순열, 2015a, 2016; 임정훈, 이형용, 2023).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에서는 이러한 주관성의 문제 양상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위험에 대한 평가 기준을 자신(self)으로 한정 짓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위험한 타자(혹은 상대적 약자) 기준으로 위험을 평가하는 방법을 제안하였다. 위험에 처한 타자를 자기화(自己化, selfing)함으로써 안전의식이 가지고 있는 주관성의 한계상황을 극복하고 보다 객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위험에 처한 약자에 대한 자기화는 자아의 확장이며 위험에 직면한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조망 수용(perspective-taking)이라고도 볼 수 있다. 조망 수용은 어떠한 상황에 처한 사람의 마음 상태를 상상함으로써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을 말한다.
이하연과 최훈석(2025)은 조망 수용이 자기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자기초점(self-focused) 방식과 타인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타인초점(other-focused) 방식으로 구분되며 조망 수용의 초점에 따라서 공감 양상 역시 달라질 수 있다고 보았다. 구체적으로 타인을 중심으로 한 타인초점 조망수용이 자기중심의 자기초점 조망 수용보다 더욱 인지적․정서적 공감을 증진시킨다고 보고하였다. 이것은 위험 상황에 처한 공동체 구성원들을 자기화함으로써 제대로 위험을 해결하도록 하는 긍정적 행동 의도가 증가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에서는 역투성의 문제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타자의 위험을 우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투입하는 안전의식의 고양(高揚)을 제안하였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결핍 해소와 욕구 충족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더 위험한 타자(상대적 약자)의 위험 해결과 안전 충족을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는 의식의 고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타자의 위험을 해결함으로써 자신과 공동체의 위험이 줄어들 수 있음을 인식하는 성숙된 안전의식을 말한다.
서미와 이수원(1996)은 타인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정보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외집단으로 규정하고 배타적인 범주화로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공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하였다. 이것은 위험에 처한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을 자기화하지 못할 때 위험 해결을 위해서 제대로 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역투성의 문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역투성의 문제 양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주관성을 극복할 때와 마찬가지로 위험에 처한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자기화, 즉 자아의 확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안신호, 1999; 이순열, 2016).
사회정체성이론에 따르면 자신과 동일하게 범주화 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에 대해서는 차별적 반응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한다(Tajfel & Turner, 1986). 자기범주화이론에서도 어떤 집단을 동일시하느냐에 따라서 집단과 일치하려는 동기가 고양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상황에 대한 이해와 상호작용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제가 된다(Turner & Oakes, 1989; Turner & Onorato, 1999).
이상의 여러 심리학적 이론들과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개인과 사회공동체 위험 해결을 위한 안전의식 조절 원리의 핵심은 위험에 처한 타자(상대적 약자)를 자기화함으로써 주관성과 역투성의 문제적 양상을 극복하는 것이다.
개인으로서의 자신(self)이나 자기편이라고 인식하는 범위에 대해서만 자기화하고 타자에 대해서는 배제하는 방향으로 위험에 대응하면 현재의 당면한 위험은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머지않아 다른 형태로 변화된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이순열, 2016). 따라서 위험에 처한 타자를 자기화할 수 있을 때 제한된 에너지를 적절히 투입하여 위험을 극복할 수 있고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는 위험들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상의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을 한국 사회에 적용시켜 본다면 권력층들의 안전의식이 주관성의 문제 양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타자화(他者化, otherization)하고 배제하는 방향으로 대응하는 것이 반복적인 재난과 참사의 발생 이유가 됨을 알 수 있다. 사회공동체에서 구성원들보다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권력층들이 자신들의 위험 해결에만 몰두하고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등한시하는 안전의식 양상을 보인다면 사회공동체는 제대로 된 안전획득에 도달할 수 없다(이순열, 2016).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은 한국 사회가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자기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만히 있으라!”는 기만적인 속임수로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마저 놓치도록 만드는 문제적 양상에 고착되어 있음을 죽음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신호로 알리고 있다.
한국 사회 재난과 참사에 대한 권력층과 구성원들의 안전의식 상호작용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의 안전의식은 국가 안전 정책과 실행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층의 안전의식과 밀접한 영향을 주고 받는다(위국환, 방원석, 김선화, 장성록, 2021).
Barad(2007)는 사고나 사건, 재난과 참사는 선후의 인과관계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심리에 내재 된 안전욕구와 상호작용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보았다. 같은 맥락에서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은 재난과 참사를 통해 사회공동체 권력층과 구성원들의 안전의식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적 관계를 가진다고 보았다(그림 3).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에 따르면 구성원들의 안전의식은 발생한 사고나 재난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과 관찰 그리고 언론 보도나 소문과 같은 정보를 선택하는 형태로 조절된다. 그리고 입법부와 사법부 및 행정부로 구성되는 국가조직 권력층의 안전의식은 재난이나 참사에 대한 성격 규정 및 원인 규명과 대응 그리고 관련자들에 대한 평가 및 조치를 결정하는 형태로 조절된다. 따라서 사회공동체에서 권력층은 재난이나 참사에 관련한 경험과 정보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이동훈, 김지윤, 강현숙, 2016).
Xue, Fan과 Xie(2020)은 사회공동체에서 더 많은 결정 권한을 가진 권력층이 구성원들의 안전행동 및 안전분위기 그리고 안전문화 등에 영향을 준다고 하였다. 또 이규득, 박창권과 장길상(2024)은 최고 경영진의 리더십이 관리감독자에 대한 권한과 책임부여 및 성과평가를 매개로 조직공동체 전체의 안전의식과 안전문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이상의 연구들과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사회공동체 권력층이 재난이나 참사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자기화하여 주관성의 문제 양상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가 됨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역투성의 문제 양상을 극복하고 제한된 에너지를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결핍을 채우는 방향으로 제대로 투입하여야 할 것이다(이순열, 2015b, 2016; 위국환, 2022).
사회공동체 권력층이 자신들이 관리해야 하는 위험의 범위를 혈연이나 학연, 지연이라는 인맥으로 제한하여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는데만 몰두하게 되면 구성원들의 안전의식과 상호작용해서 변모하는 위험에는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사회공동체 권력층이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타자화하여 배제하면 재난 및 참사의 직․간접적인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그들과 동질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위험에 처한 사람을 자기화한 사람들] 역시 사회공동체 권력층을 타자화하는 상호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이규정, 이성우, 신재혁, 2017; Ko, Ma, Bartnik, Hancy, & Kang, 2018; Diener, Thapa, & Tay, 2020; Zhao, Yang, Liu, Nkrumah, 2022; Quansah, Zhu, & Guo, 2023; 정구현, 2024; 김강초롱, 문광수, 오세진, 임성준, 2024).
안전의식의 문제 양상을 극복하지 못한 공동체 권력층은 발생한 재난과 참사에 대해서 경제성장이나 규제 완화 논리를 앞세워 예방과 대비, 대응과 복구에 소홀할 수 있다. 나아가 권력층의 안위를 위해서 정보를 은폐․왜곡하거나 원인 규명에 필요한 권한과 재정 배분을 거부하고 오히려 폭력적인 탄압을 시도할 수도 있다(이나빈, 주혜선, 안현의, 2017).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한국에서는 국무총리실 산하 안전관리기획단을 출범시켜 안전의식과 안전문화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삼풍백화점 참사 이후에도 반복된 여러 재난과 참사 발생은 대한민국 권력층의 안전의식 양상이 구성원들의 안전의식과 공동체 안전문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 참사(508명 사망 및 실종), 이후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213명 사망 및 실종), 2014년 세월호 참사(304명 사망 및 실종), 2022년 이태원 참사(159명 사망)까지 반복되는 재난과 참사들은 한국 사회 권력층이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타자화하고 그들이 보내는 결핍과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문제적 양상에 고착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들이다(정구현, 2024).
국민주권을 표방하는 민주공화정 국가도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국민을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위한 소모품으로 인식하면서 재난과 참사에 대해서는 경제적으로 보상해 주거나 무마해 버리면 되는 ‘남의 일’로 타자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 사회의 경우 김영삼 정권까지를 권위주의 정권으로 볼 때 발생한 여러 가지 재난과 참사에 대해서 산업화를 위한 희생 논리를 앞세워 권력층의 책임과 의무는 면피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김대중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국민주권 의식이 고양되었고 국민 참여가 실질적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국민에 대한 봉사를 실행하는 권력층과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서 구성원들이 선거를 통해서 평가하는 활발하고 강력한 상호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저변이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강민재, 최훈석, 2025).
권력층과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이 강력하고 활발해질수록 한국 사회 권력층이 구성원들의 결핍과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할 때 선거나 탄핵 심판 등으로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이것은 권력층이 구성원에게 일방적으로 안전 서비스를 공급하기만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안전의식과 상호작용하면서 위험이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고 조절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이순열, 2016; 최진식, 2021; 위국환, 2022).
사회공동체의 안전의식과 안전문화에 경험과 정보를 제공하는 또 다른 주체로서 언론도 사회적 재난과 참사를 자기화하는지 타자화하는지에 따라 보도형태가 달라진다. 재난과 참사 피해자들을 자기화하는 언론은 재난 및 참사 피해자들의 요구와 결핍에 부응하려는 실질적 비평을 내놓는다. 하지만 언론이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타자화하고 국가 조직체나 기득권을 가진 권력층을 자기화하면 피해자에 대한 수혜적 조치 부각, 경제 논리 전파, 추모 피로 강조와 같은 보도행태를 취하게 된다(조원광, 2021; 강민재, 최훈석, 2025).
이러한 언론보도 행태의 차이는 재난과 참사에 대해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반응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와 동일한 구조를 가진다. 재난과 참사 피해자들을 자기화하는 구성원들은 그들의 결핍과 요구에 부응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반면에 피해자들을 타자화하고 권력층이나 국가 조직체를 자기화하는 구성원들은 재난과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무관심, 조롱과 모욕, 추모 피로 호소 등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이순열, 2016).
조혜자, 방희정, 조숙자, 김현정(2006)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대학생들이 권력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강자와 동일시하는 경향성을 보인다고 밝혔다. 권력자와의 동일시는 권력자의 인정과 이를 통한 자원확보 가능성을 높여준다. 따라서 권력을 가진 강자와의 동일시는 약자와의 동일시보다 자연스러운데 위험하거나 위기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한 경향성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러한 강자 동일시 경향성은 권위주의라는 개인의 의식과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하기도 한다. 권위주의를 수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강자와 비슷한 특성으로 인식하면서 강하게 동일시하는 반면 권위주의를 수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강자와의 동일시가 작았고 오히려 강자와의 동일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였다(조혜자 등, 2006). 즉, 사회구성원들의 권위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권력을 가진 강자와의 동일시가 우세할지 위험에 처한 약자와의 동일시가 우세할지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무조건적으로 권력을 가진 강자와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라는 개인의 의식양상에 따라 강자에 대한 자기화와 타자화 혹은 위험에 처한 약자에 대한 자기화와 타자화를 선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권력층과 구성원들의 안전의식 상호작용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였다. 바다 위에 한동안 보였던 선수마저 가라앉으면서 선내 생존자들을 구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기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기술과 자원을 총동원하였다는 구조는 결국 실패하였고 기원도 끝내 응답되지 않았다.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에 따르면 세월호 승무원과 구조를 위해 출동한 해경은 위험에 처한 승객들을 타자화하면서 안전 조치를 실행할 책임을 방기하였다.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 선내방송을 따랐던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승객들을 대피시켜야 했던 선원들은 먼저 빠져 나왔다. 구조실패와 원인 규명 등 참사 책임은 대통령과 정부 고위 관계자 누구도 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전문은 세월호 승객들을 가만히 있도록 만들었던 안내방송처럼 기만적인 구호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배제하는 사회공동체 권력층의 타자화는 또 다른 위험의 불씨를 만들어 내었다(416연대, 2024; 이순열, 2016).
국가적 재난과 참사의 복잡성은 결국 여러 조직과 행위자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의 책임인가를 명확히 알 수 없도록 만든다. 때문에 국가 조직체에 대한 명령권을 가지고 있는 권력층의 결정과 책임은 더욱 중요하다. 2003년 미국 컬럼비아호 폭발사고 조사보고서에서는 백악관에도 참사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술적 사고 혹은 NASA라는 하부 조직으로 국한될 수 있었던 사고 책임을 최고 권력층에게까지 물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안전의식과 안전문화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것 또한 사회공동체 권력층의 책임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CAIB, 2003).
반면에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였다. 정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진상규명 방해는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합의되지 못한 여러 조사보고서로 귀결되었다(박상은, 2021).
세월호 참사에 대해 한국 사회 권력층이 공급한 이러한 경험과 정보들은 구성원들의 안전의식․안전문화와 상호작용하였다. 그것은 한국 사회 권력층과 구성원들 상호 간의 타자화이다.
세월호 참사 발생에 대해서 한국 사회 권력층이 공급한 경험과 정보는 형식적인 사과와 법률정비 그리고 조직개편이라는 관행적인 조치들뿐이었다. 해경이 해체되고 국민안전처가 신설 되었지만 이는 정권이 바뀌고 다시 해경이 복구되고 행정안전부로 돌아오는 되돌이표 조치에 불과하였다. 여러 조사위원회들이 설립되고 활동이 이루어졌지만 해경 지휘부와 청와대 등의 최상위 권력층에 대한 수사와 처벌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일부 언론들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타자화(他者化, otherization) 함으로써 ‘세금도둑, 시체팔이’ 같은 2차 가해를 저지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태는 참사 희생자들과 심리적 동질감을 형성하고 있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언론을 불신하고 사회를 불안하게 인식하도록 만들었다(이순열, 2016.; 김근세, 장사무엘, 윤남기, 2021; 박상은 2021; 안혜림, 서용석, 2023; 신하연, 박채림, 민영, 2024).
이상의 세월호 참사 발생과 대응에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을 적용하여 살펴보면 한국 사회 권력층의 안전의식이 주관성과 역투성의 문제 양상을 극복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필두로 한 권력층은 이전 권위주의 정부의 대응을 답습하면서 참사 피해자들을 타자화하였다. 이러한 대응이 일어난 이유는 권력층이 위험에 처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요구와 결핍을 자기화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권력층은 세월호 참사를 운 없는 사람들이 겪는 ‘남의 일’로 인식하면서 피해자들의 안전 충족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였다(이순열, 2015a, 2016). 한국 사회 권력층이 보인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에 대한 타자화(他者化, otherization)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 및 그들과 동질감을 가지고 있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권력층에 대해서도 타자화하는 상호작용을 발생시켰다.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에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저항적 대응이 나타났다(박상은, 2023).
구성원들은 위험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위험에 민감한 안전의식 양상을 가지게 된다. 인식된 위험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다고 느끼면 불안은 가중된다. Berkowitz, Troccoli, & Monteith(1994)은 욕구 좌절을 분노를 발생시키는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욕구 충족을 방해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적대감을 가지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세월호 참사 책임을 모면 하는데만 급급한 권력층의 대응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권력층을 분노와 공격의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또 다른 위험을 만들어 내었다(김인영, 2008; 김재신, 2011).
메르스(MERS) 감염병 사태에 대한 권력층과 구성원들의 안전의식 상호작용
2014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권력층과 구성원 간의 안전의식 상호작용은 2015년 5월 발생한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 사태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나타내었다. 박근혜 정부는 메르스(MERS) 감염병에 대해서 정보를 숨기거나 구성원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소통 부재로 사회적 혼란과 불안을 가중시켰다. 세월호 승객들을 향한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이 메르스(MERS) 사태에서는 ‘조치를 따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메르스(MERS) 감염병 사태는 갑자기 발생한 별개의 재난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 이후 권력층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상태에서 감염병이라는 형태로 위험의 모습이 바뀐 연속적 재난 발생 상황이었다.
2015년 메르스(MERS) 감염병 사태는 발병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발생시켰다. 2015년 5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 발생 후 2015년 12월 23일 메르스(MERS) 종식 선언까지 185명의 확진자와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더욱이 메르스(MERS) 감염병 사태 당시 정부 신뢰도는 28.2%에 불과하였다. 사회구성원들은 국가 권력층에 대한 불신과 함께 부유하는 감염병 바이러스의 공포 속으로 빠져들어 간 것이다. 신뢰는 서로 간의 믿음에 기반하는데 정부와 권력층에 대한 불신은 누구도 믿지 못하게 만드는 타자화를 확산시켰다(이재은, 2015).
박근혜 대통령을 필두로 한 한국 사회 권력층의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에 대한 배제와 타자화는 결국 2016년 최순실 국정 논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되는 형태로 정권의 파국을 불러왔다. 권력층이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타자화하는 경험과 정보가 제공되는 순간 구성원들 역시 권력층을 타자화 하였다. 박근혜 정권과 권력층은 국정 논단과 탄핵이라는 변모된 위험에 무너졌다(이재은, 2015).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에 따르면 안전 충족의 기본 원리는 주관성과 역투성의 극복이다. 하지만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타자화하는 것은 발생한 위험을 ‘남의 일’로 만들어서 갈등과 분노와 같은 역기능적 반응들을 표출시킨다(이순열, 2016).
2003년 중국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로 전파된 사스(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SARS)는 8,096명의 감염자와 774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지만 한국에서는 3명의 감염자만 발생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대한민국이 사스(SARS) 예방 모범국이라는 평가를 받도록 하였다. 당시 노무현 정권은 국가안보에 국민 생활 안전을 목표로 제시하면서 국민 개인의 안전문제에 국가의 적극적 책임과 대응을 천명하고 실천하였다(문광수, 2018; 서현정, 홍아정, 2020). 이처럼 권력층이 재난을 겪는 구성원들의 결핍과 요구를 자기화하여 대응할 때 구성원들 역시 정부를 신뢰하고 조치에 협조하는 긍정적 상호작용을 발생시킨다.
이에 반해 메르스(MERS) 발생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대응은 정부 책임과 대응을 안보 수준에서 행정부 산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진행하였다(이재은, 2015; 변성수, 신우리, 조성, 2018). 국가적 재난이나 참사를 단순한 사고로 취급하면서 국가나 정권의 존망에 연결된 안보라는 개념을 삭제시킨 것이다. 또한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에 대한 축소된 대응은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로 합리화시켰다.
하지만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의 관점에서는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권력층이 타자화할 때 주관성이라는 문제 양상에 고착되는 또 다른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지적하게 된다(이순열, 2016). 한국 사회 권력층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MERS) 사태에서 복잡한 재난 복구 매커니즘으로써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협조하여야 하는 정부 대응 책임을 행정부 산하 안전관리본부로 축소시키며 위험관리 범위를 제한하였다(정윤진, 최선, 2017).
이동훈 등(2016)이 실시한 연구에서는 메르스(MERS) 사태에 대해서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문항에 95.6%가 그렇다고 응답하였다. 이것은 사회공동체 권력층이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타자화하는 것에 대한 상호작용으로 구성원들 역시 정권과 권력층을 타자화하여 불신하게 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메르스(MERS) 사태까지 한국 사회 권력층과 구성원 상호 간의 타자화 양상은 결국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권력층이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타자화함으로써 정권 붕괴라는 또 다른 위험이 발생한 것이다(주성수, 2019; 강명제, 2023).
박근혜 정권 탄핵 이후 한국 사회 권력층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재난과 참사에 대한 대응은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었다. 이것은 권력층이 발생한 재난과 참사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해서 구성원들이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결과 2017년 5월 10일 557만 표라는 역대 최대 표 차이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였다(홍찬숙, 2019; 임기홍, 2024).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도 사회적 재난과 참사 대응 및 복구를 통해서 사회적 안전의식과 문화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세밀한 접근에는 실패하였다. 문재인 정부 역시 사회적 참사 관련 자료를 완전히 공개하지 않았고 참사 해결을 위해 이전 정권과는 다른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오히려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은 참사 관련 문건들을 파쇄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관련한 직권남용 수사에서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정권교체와 함께 재난과 참사에 대한 정부와 권력층의 책임도 교체된 것처럼 대응한 것이다(주성수, 2019; 강명제, 2023; 임기홍, 2024).
박근혜 탄핵 이후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에 재대로 부응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견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회공동체 권력층에 대한 구성원의 요구와 저항이 어느 정도 수용되는 효능감의 확인은 시민참여와 적극적 의사 개진, 갑질 저항, 미투 운동 등의 새로운 시대적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박영대, 2023). 이것은 권력층과 구성원들의 안전의식이 보다 활발하고 강력하게 상호작용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코로나-19 감염병 사태에 대한 권력층과 구성원들의 안전의식 상호작용
2020년 2월 한국에서 최초로 코로나-19 (COVID-19) 감염자가 발생하였다. 코로나-19는 강력한 전파력으로 전 세계적인 유행병(pandemic)이 되었다. 이전 재난들이 단기간에 발생했던 것에 비해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긴 시간 동안 사회공동체를 위험에 상시 대응하도록 만들었다.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는 국가와 국민들이 안전을 위해서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또 어디까지 그러한 조치들을 허용하고 감내하여야 하는지 등의 다양한 사회적 담론들을 발생시켰다(이건영, 조영래, 2024).
코로나-19는 감염병 예방과 확산 방지 및 치료를 위한 국가의 책임과 의무뿐만 아니라 구성원들 또한 자신과 이웃들의 안전을 위해서 감내하고 실행 및 실천하여야 하는 각자의 노력과 역할이 있음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Jeong, 2020; 강철, 2021).
전 세계가 산업․경제적으로 급변하고 민주화를 통해 시민의식이 성장하는 가운데 코로나-19 감염병 사태에 대한 한국 사회 권력층과 구성원들의 대응은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여겨지며 ‘K-방역’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코로나-19 감염병이 시작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세계 인구의 10%가 감염되고 7백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에 비해 한국은 전체 인구대비 2%대의 감염율과 0.9%의 사망율을 나타내었다. 이것은 특정 지역 완전 봉쇄나 외출 금지령 등의 극단적 조치 없이도 이루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훌륭한 대응이라는 평가를 받게 했다(안혜림, 서용석, 2023).
메르스(MERS) 감염병 사태에 대한 정부 대응과 코로나-19 감염병 사태에 대한 정부 대응의 가장 큰 차이는 정보 불균형을 없애고 구성원들에게 감염병 위험에 관련한 정보를 완전히 제공한 것이었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감염병 예방 및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고 코로나-19 포털을 운영하면서 예방접종 및 치료 가능 병원 등에 대한 정보 접근성을 높였다(이슬기, 이혁규, 유나리, 2021; 안혜림, 서용석, 2023).
코로나-19 감염병 전파가 완화되었다가 확산되는 몇 번의 변곡점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사회적 격리 및 감염자 관리가 과잉되어 있다는 불만과 대응 피로 호소, 예방접종에 대한 불신과 정부 조치 불이행 같은 구성원들의 공격적 방역 조치 거부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현저히 적었다(김강초롱 등, 2024).
이러한 결과에 대해서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을 적용하여 살펴보면 한국 사회 권력층이 감염병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자기화하면서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결핍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국가의 총력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감염병 사태에 대해서 한국 사회 권력층은 전폭적인 정보공개와 신속한 백신 접종 같이 구성원들의 요구와 결핍에 부응하려는 실질적 대책들을 수립하고 시행하였다. 이러한 정부 대응에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접촉 제한, 마스크 착용 같은 의무적 조치들에 수용적 협조로 상호작용하였다.
또한 한국 사회 권력층이 코로나-19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실시한 조치들에 대해서 구성원들은 시의적절한 경험과 정보라고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다.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은 정부 조치들이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선의의 노력이라고 신뢰하면서 협조적 방향으로 상호작용해 나간 것이다(이순열, 2015a, 2015b, 2016; Jeong, 2020; 이슬기, 이혁규, 유나리, 2021; 안혜림, 서용석, 2023).
이태원 참사에 대한 권력층과 구성원들의 안전의식 상호작용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밤 서울 용산 이태원에서 158명이 군중 압착(crowd crush)으로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하였다. 밀집된 군중이 8명/m2 이상이 되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파도에 부유하듯 떠밀려 이동하는 유체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10명/m2 이상이 되면 압사 등 군중 인파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사고 당시 이태원 참사 발생지점 인파 밀집도는 16명/m2 이상으로 추정된다(경찰청, 2022a).
코로나-19로 인한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제한되었던 답답함을 풀어 버리고 3년 만에 맞이하는 축제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참사였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경찰 및 소방 당국은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로 억눌려 있었던 군중 활동이 증가하리란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파 관리에 대한 안전 조치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다(임기홍, 2024).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 현재까지도 길거리 응원이나 군중 집회는 대규모 인파가 밀집되는 행사이다. 하지만 대단위 군중 압사 참극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부와 지자체 단위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였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질서의식을 발휘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로윈 축제는 주최자 없는 임의행사로 규정되면서 시민안전을 책임져야 할 여러 관계 기관들은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다. 이태원 일대에서 112로 인파 안전사고 신고가 최초로 접수된 18시경 이후에도 관계 당국의 적절한 조치는 없었다. 그야말로 인파가 이태원의 좁은 골목길로 몰리는 위험을 ‘남의 일’로 타자화 하였고 방임과 방치 속에서 비극적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경찰청, 2022a, 2022b).
이태원 참사 이후 피해자들을 향한 조롱과 익명화된 애도 그리고 아무도 사과하거나 책임지지 않는 권력층의 행태는 이른바 “재난 이후의 재난(disaster after disaster)”을 발생시켰다(이재은, 2015; Bazzoli & Cureuruto, 2021; Boatca, Draghici, & Gaureanu, 2021). 윤석렬 대통령을 필두로 한 권력층들은 현장 수습이 끝나기도 전에 국가 애도 기간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사진도 없는 분양소를 설치하였다. 유가족들의 동의 없이 사망자에 대한 부검이 실시되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는 참사를 사고로 규정하였고 희생자를 사망자로 명명하면서 근조 없는 검정 리본을 달도록 지시하였다. 이러한 조치들은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규정하고 구조실패와 원인 규명 및 사회적 애도를 방해했던 박근혜 정부의 행태와 너무나 닮아있다(임기홍, 2024).
국가 주도의 인권 침해와 참사에 대한 은폐, 망각, 부인 등 윤석렬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층들은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방치하고 모욕하는 상황까지 용인하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정치사회학자들은 이태원 참사가 사회적 재난이라는 측면에서 행정 권력의 집중화와 정치 양극화 등을 원인으로 제시하기도 한다(이건영, 조정래, 2024).
이러한 견해에 더하여 심리학적 측면의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을 적용하여 살펴보면 사회공동체 권력층과 구성원들의 안전의식이 상호 간에 타자화하는 양상으로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이순열, 2016).
윤석렬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현장을 방문하여 ‘뇌진탕’이라는 실제 원인과 동떨어진 발언을 하기도 하였고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음모론까지 제기하였다. 참사 책임을 지고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는 요구를 거부하였고 오히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인사를 나온 장관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였다(변덕호, 2022).
이러한 권력층의 대응에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을 적용하여 살펴보면 이태원 참사에 대한 권력층의 안전의식이 대통령과 참사 책임자들만을 자기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을 필두로 한 권력층들이 혈연과 학연, 지연에 기반한 사적 인연만을 자기화하는 문제적 양상에 고착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행정체계에서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견제와 균형, 권력분립, 입헌주의를 지탱하는 최고 권력자이다. 동시에 민주공화정을 구성하는 제도와 관습을 변경, 폐지, 수정,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이것은 사회공동체에 발생한 재난이나 참사에 대해서도 물적․인적 자원 동원과 피해복구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책임을 회피할 권력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장후석, 한주희, 2023).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에 따르면 재난과 참사에 대해 책임 있는 권력층들로부터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지도 않았고 희생자들을 제대로 애도하지도 못하게 하는 경험과 정보를 가진 구성원들은 권력층에 저항하는 형태로 상호작용하게 된다(김지호, 이준수, 2019). 민주공화정에서는 선거라는 주권자의 권리행사가 이러한 상호작용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 및 그들과 심리적 동질감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은 권력층으로부터 타자화 되었다. 이것은 구성원들 또한 권력층을 타자화하는 상호작용을 발생시킨다(임기홍, 2024). 이태원 참사에 대해 한국 사회 권력층은 어떠한 사과나 책임자 처벌 없이 무마시키려 하였다. 일방적인 추모기한 선포와 이름 없는 추모 공간 마련 등으로 희쟁자들을 익명의 사망자로 추상화시켰다. 참사 희생자들을 타자화하여 배제함으로써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층의 이태원 참사 책임을 희석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위험에 처한 국민들을 배제하면 그들이 보내는 위험신호에 반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 또 다른 형태의 위험이 발생하게 된다(이순열, 2016).
2024년 4월 치러진 총선에서 윤석렬 정권을 지탱하고 있던 권력층은 참패하였다. 정부와 여당에 우호적인 의석으로 108석을 얻는데 그쳤다. 대통령과 권력을 공유하던 권력층은 그들을 타자화하고 외면하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서 국정 운영의 동력을 잃는 또 다른 위험 속으로 빠져든 것이다(Kim, 2024).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에 따르면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윤석렬 대통령과 권력층에게 200석 가까운 야당 의석을 통해 저항하는 형태로 상호작용하였다. 이러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대응에 윤석렬 정부와 권력층은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형태로 상호작용 기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맥을 필두로 한 제한된 자기화로 구성원들을 배재하는 타자화를 유지하였다. 동시에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의 결핍을 충족시키는 자기화는 유보하였다. 대통령과 권력층의 기득권이 공격받고 있다고 여기면서 자신들의 위험만을 인식하는 주관성과 혈연과 학연 및 지연에 국한된 내 편만을 위해 권력(에너지)을 사용하려는 역투성의 문제 양상이 더욱 고착되어 간 것이다(이순열, 2016).
2024년 12월 3일 10시 27분 윤석렬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반국가 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들었지만 동력을 읽은 국정 운영의 난맥상을 친위 쿠테타 형태의 내란으로 돌파해보려 했던 것이다. 계엄령이 발동되면 군대는 추가적인 권한을 부여받고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더 많은 권력을 가진다. 이와 동시에 국민들의 권리와 권익은 위축되고 국가로부터 제공 받을 수 있는 법적 보호도 축소된다(Mao & Kwon, 2024).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의 관점에서 윤석렬 대통령을 필두로 한 한국 사회 권력층은 이태원 참사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안전을 충족시켜야 하는 책무를 방기하였다. 오히려 계엄령을 통한 내란을 실행함으로써 구성원들의 인권과 법적 보호 기준을 축소시키는 타자화를 강화시켰다. 권력 안위와 기득권 유지에 함몰되어 혈연과 학연, 지연에 기반한 배타적인 자기화 양상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논 의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을까?, 죽은 자가 산자를 도울 수 있을까?” 한강 작가는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과거의 죽은 자가 현재의 산자를 돕고 있음을 물음으로 웅변하였다.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의 관점에서도 과거에 발생한 재난과 참사 희생자들은 경험과 정보를 통해 오늘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재난과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돕고 있다.
1894년 우금치를 넘지 못했던 “백성이 주인!”이라는 민중들의 횃불은 130년 동안 멈추지 않은 발걸음으로 2024년 남태령에 다다랐다. 130년 전 죽은 자들이 들었던 횃불이 오늘날 산자들의 응원봉이 되어 남태령을 넘어 대한민국 최고 권력층이 있는 곳까지 끝내 다다른 것이다.
1961년과 5월 16일 쿠테타와 1979년 12월 12일 쿠테타는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는 기만술을 펼친 권력과 기득권을 향한 자기화였다. 주권을 국민으로부터 찬탈하여 자기화한 몇몇의 무리들과만 권력을 나누었던 세력에 대해서 국민들은 죽음으로 항거했다.
민주공화정의 주권자인 국민들은 권력층의 타자화에 대항하여 권력층을 또한 타자화 한다는 것이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이 제시하는 상호작용 원리이다. 주권자인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의 결핍과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권력층은 구성원들의 타자화를 통해 ‘독재자’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박재되는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또한 사회구성원들을 기만하고 배제하려는 권력층의 폭압에 죽어간 희생자들이 2024년 12월 3일 44년 만에 재발된 윤석렬 정권의 친위 쿠테타 내란 행위를 6시간 만에 멈춰 세웠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참사로 이어질 뻔한 정치적 재난을 멈춰 세운 것과는 다르게 사고와 재난의 형태로 발생하는 참사는 아직도 과거가 현재를 돕는 데까지 도달하지 못하였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의 책임과 원인을 명명백백히 밝히기 위한 촛불들은 아직도 소임을 마치지 못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과거의 재난과 참사들이 사회공동체 권력층과 구성원들의 안전의식에 주관성(主觀性, subjectivity)과 역투성(力投性, value estimate)의 문제 양상을 극복하도록 돕는 경험과 정보를 아직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2025년 출범한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권력층이 참사 책임을 제대로 지도록 하는 경험과 정보를 공급할 소임이 더욱 커진다. 또한 아직도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책임자 처벌은 반드시 완성되어야만 할 것이다. 동시에 이태원 축제를 즐기러 나왔다가 인파에 쏠려 사망하게 된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제대로 밝히는 경험과 정보를 공급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참사의 희생자들로 하여금 유사한 사고와 재난이 대한민국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돕게 하여야 한다.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에 따르면 사회공동체의 위험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권력층이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자기화하여 그들의 요구를 경청하고 결핍을 채우려는 진심 어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법령개정이나 제도개선, 물적 투입에만 집중하는 대응은 악의를 가진 리더를 제한하기도 하지만 선의를 가진 리더의 진심 어린 부응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에서는 권력층이 제도와 규칙에 따르는가를 위험 해결을 위한 중요한 덕목이라고 본다. 또한 동시에 권력층이 구성원들의 요구와 결핍에 제대로 부응하려는 선의를 가지고 소통하고 경청하는가를 더욱 핵심적인 사항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한국 사회 권력층과 구성원들의 안전의식이 어떠한 상호작용적 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해서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을 적용해 살펴보았다.
연구결과 세월호 참사, 메르스(MERS) 감염병 사태, 코로나-19 감염병 사태, 이태원 참사까지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여러 재난과 참사들에 대해서 권력층이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안전의식을 보일 때 위험이 모습을 바꾸어 또 다른 형태로 발생함을 알 수 있었다.
한국 사회와 공동체 구성원들이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양한 제도적․정책적․기술적 대응을 하고 있지만 사회적 재난과 참사가 반복되는 이유가 위험에 처한 타자의 위험 해결을 자신의 안전으로 통합하지 못하는 안전의식의 한계상황 때문임을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을 적용한 고찰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었다. 당면한 위험만 모면하려 하고 위험의 실체를 숨겨서 구성원들을 가만 있도록 만드는 한국 사회 권력층의 장두노미(藏頭露尾)적 선택으로는 변화무쌍한 위험을 제대로 극복할 수 없음을 반복되는 재난과 참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상의 주제상태조절이론(TCAT)과 권력층과 구성원들의 안전의식 상호작용에 관한 고찰을 통해서 한국 사회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위험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한 핵심적인 방법은 다음의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한국 사회 권력층이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의 결핍을 충족시키고 요구에 부응하려는 진정성 있는 경청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사회공동체가 가진 불신을 해소하고 신뢰 결핍과 진실 요구에 책임 있는 권력층이 제대로 부응하는 경험과 정보를 구성원들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셋째, 권력층과 구성원들의 안전의식이 기득권 유지나 정권 안정보다 재난과 참사의 슬픔과 아픔을 회복하려는 진심 어린 경험과 정보들로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민주공화정이 자리 잡은 이후에도 박근혜 정권과 윤석렬 정권 등 자신과 사적 인연이 있는 범위만을 자기화하고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타자화하는 권력층이 자리 잡는 시기에 유독 재난과 참사가 반복적으로 발생하였다.
이것은 한국 사회 권력층을 비롯한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실제하는 위험을 수용 가능한 위험으로 받아들이면서 일탈의 정상화(normalization of deviance)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배제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고리’ 권력처럼 인맥에 기반한 제한된 자기편만을 위해 권력(에너지)를 사용하는 주관성과 역투성의 문제 양상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물이다.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의 요구를 경청하고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조치와 명령으로 군림하고 다스리기만 하려는 수구적 리더십은 민주공화정 사회에서는 사고와 재난의 또 다른 이름이자 원인 그 자체이다.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에 따르면 권력층이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안전분위기와 안전 목소리(안전에 대한 우려) 그리고 안전 경청(안전 목소리에 대한 경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안전에 대해서 권력층의 냉소적 태도는 주저하거나 조용한 안전 목소리와 안전 침묵(안전 정보에 침묵함)을 강화시킨다. 권력층이 보여주는 안전의식은 구성원들의 안전행동 특히 안전 의사소통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긍정적․부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Collins, 2021; 임정훈, 이형용, 2023; Chen, 2017).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권력층은 국가적 재난과 참사에 적절히 대응하기 보다는 오히려 재난과 참사 발생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승만 정권부터 김영삼 정권까지 권위주의 정부는 발생하는 참사와 사태, 사건 혹은 위험들을 예방하고 대비하기 보다는 사고 실무자 차원에서의 처벌과 제도를 정비하는 형태로만 대응하면서 구성원들의 안전의식과 공동체 안전문화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논리를 펼치지만 실제로는 정권 안정이나 권력층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서만 정책을 운영했던 이명박, 박근혜, 윤석렬 정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세월호 참사의 여러 가지 원인 중에는 노후 된 일본 선박을 들여와서 개조하여 좌초에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 지적받는다. 기업활동이 안전관리로 위축되는 것을 풀어주고 이윤 창출이 안전보다 더 중요하다는 지향점을 가졌던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세월호 참사 발생까지 이어지는 첫 번째 도미노가 되었다. 김영삼 정권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폭발사고 등 잇따른 참사가 발생한 것 역시 이전 권위주의 정권에서 경제적 성장과 유익을 앞세운 결과가 마침내 연쇄적 참사 발생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김상겸, 2020).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권 안위 차원에서 접근하면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는 기만적 대응으로 일관하였다. 유가족들을 사찰하고 민간기업에 모든 참사 책임을 떠넘겼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은 오히려 정권이 붕괴되는 또 다른 형태의 상호작용을 발생시켰다. 윤석열 정권 역시 행안부 장관의 이태원 참사 책임 부정과 회피 및 자신에게 우호적인 인맥에만 근거한 정치 행위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권위주의적 리더들이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던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2025년 5월까지 한국 사회의 수구적 권력층은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타자화 하면서 기만적 대처 혹은 위험 해결에 유보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의 분노와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이순열(2018)은 대통령 사면 권한 행사가 그 자체로 국민들의 준법의지와 법 집행 공정성을 훼손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책임을 면해주는 권력층의 권한 행사는 그 자체로 공동체 안전의식과 안전문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맥락에서 권력층이 재난과 참사에서 면죄부를 받거나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감싸는 대응을 하는 경우 공동체 구성원들의 안전의식은 공감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 안전욕구를 채우지 못한 좌절감에 불만과 공격 같은 강력한 분출과정을 겪게 된다.
각종 사건․사고가 연달아 발생했던 김영삼 정권은 국가 부도라는 경제적 측면으로 변모된 위험으로 인해 1998년 정권을 야당에게 넘겨주었다. 이것은 1948년 제1공화국 출범 이후 50년만에 처음으로 정권이 야당에게 이양된 것이었다. 군사정권이 문민정권으로 바뀌면서 국민들의 선거와 투표를 통한 의사표현도 보다 과감해지고 정권이 국민을 타자화하는지 자기화하는지에 대해 보다 강력한 상호작용을 발생시키게 되었다. 국가와 권력층이라는 강자에 자신을 등치 시키던 구성원들이 관성적인 자기화을 깨트리고 권력층에 대항하는 강력한 상호작용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공감을 통해서 자신을 타자화 할 수 있다. 하지만 타자화하는 대상이 강자일 때와 위험에 처한 약자를 타자화 할 때의 대응은 달라진다. 공감을 통해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과 동일시하게 되면 참여적 연대를 형성한다. 그리고 안전한 사회일수록 국가와 구성원들은 협력적 일체화를 이룩한다(박은하, 박민지, 2018).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근혜 정부 대응과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윤석렬 정부 대응은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권력층의 타자화는 구성원들이 정권에 저항하고 배격하는 상호작용적 타자화를 발생시켰다.
민주공화정 국가에서 권력층이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을 타자화 할 때 구성원들 역시 그러한 권력층을 타자화하여 공격하고 배제하는 형태로 상호작용하게 된다. 반면에 권력층이 재난과 참사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위험을 자신의 위험으로 통합하여 자기화할 때 비로써 위험을 제대로 극복하고 사회적 혼란과 피해를 회복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이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의 핵심이자 위험을 해결하고 안전을 충족시키는 심리학적 적용 원리라고 본 연구자는 주장한다.
본 연구를 통해 민주공화정 국가는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닥친 위험을 정권 안보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안전의식의 결을 구성원들과 맞추어야 함을 밝힌다. 또한 사회공동체 권력층이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의 요구를 경청하고 결핍을 채우려는 진심 어린 자기화를 통해서만이 위험을 제대로 해결하고 공동체 안전문화를 성숙시킬 수 있을 것이다.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을 적용하여 재난과 참사 발생 원인 및 조절방법에 대해서 살펴본 것은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다양한 형태의 위험들에 대해서 근원적으로 접근하여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자의 고심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안전의식에 대한 심리학적 선행 연구들이 부족함으로 인해 연구자의 숙고를 뒷받침해주는 관련 근거가 부족하다는 제한점이 있었다. 또한 연구자가 이론에 부합하도록 사회현상을 편향적으로 인식했을 위험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제한점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에서 위험과 안전에 대한 계량적인 접근뿐만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 심연에 흐르는 의식과 문화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밝히려는 정성적인 시도가 제외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본 연구를 갈무리하였다.
향후에는 주제상태조절이론(TCAT)을 위험상태조절이론(Danger Condition Adjustment Theory: DCAT)으로 변경하여 사고와 재난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을 이어가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중대재해사고(SPC그룹 공장 사망사고, 아리셀 공장화재,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등)와 같이 노동과 생활 현장에서 발생하는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심리학적 연구들도 보다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재난과 참사 피해자들의 희생에 본 연구의 내용이 미력이나마 보태어져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의 비극적인 재난과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변덕호 (2022.11.16.). 이상민 어깨 토닥인 尹... 여도 ‘책임론’ 관망. 매일경제. http://www.mk.co.kr/news/politics/10534196
416연대 (2024). “[진상규명]세월호참사 책임자는 어떤 처벌을 받았나?”. http://416act.net/35/?bmode=view&idx=18723846
Kim, R. (2024.4.11.). 집권당 역대급 참패 원인과 앞으로의 전망. BBC. https://bbc.com/korean/articles/crgyxz146x30
Mao, P., Kwon, J. (2024.12.4.). 윤석렬 대통령은 왜 갑작스럽게 비상계엄을 선포했을까?. BBC. https://bbc.com/korean/articles/c75w6m5kw0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