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평균에 비해 국민이 평가한 삶의 만족도 수준이 낮고, 자살률은 장기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어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국가적 대응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통계개발원, 2025). 특히 코로나19 팬데믹과 세월호 및 이태원 참사 등 국가적 재난과 사회적 위기를 거치며 우울, 불안, 스트레스 등 심리적 어려움이 전 연령층에서 광범위하게 보고되었고(보건복지부, 2022; 이은환, 2020), 이에 따라 심리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수요 또한 급격히 증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심리서비스 전달체계는 전문인력의 자격 기준과 관리체계가 일부 국가자격과 다수의 민간자격으로 분절되어 있어, 서비스의 질 관리와 공공적 책임을 제도적으로 담보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비의료 심리상담 영역이 공적 관리·감독 체계 밖에서 모호한 역할 및 직업적 정체성을 가지도록 만들었으며, 이러한 자격 기준의 불명확성과 관리체계의 부재는 서비스의 질 편차와 내담자 권익 침해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여러 연구가 반복적으로 지적해 왔다(이만우, 2021; 최정아, 2021). 특히 심리학을 기반으로 전문적인 심리서비스를 제공하는 핵심 인력인 ‘심리사(psychologist)’를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독립적인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박중규 외, 2022;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9).

심리사는 심리학적 지식과 과학적 방법론에 기반하여 인간의 행동과 심리적 과정을 이해하고 이를 실천 영역에 적용하는 전문인력으로 정의될 수 있다(원성두, 장은진, 2022). 이러한 정의는 심리사를 단순한 상담 제공자나 특정 영역의 실무자로 한정하기보다, 심리서비스 전반을 지탱하는 기본 전문직으로 이해하는 국제적인 관점에 기초한다. 기존 연구들은 주로 심리사의 교육과 수련 기준을 중심으로 국제적 기준과의 적합성을 검토하며 전문직으로서의 요건을 논의해 왔다.

실제로 OECD 주요 국가들은 심리사를 정신건강 영역의 주요 전문직으로 제도화하고 있으며, 일정 수준 이상의 전공 교육과 지도 감독을 필수로 하는 실무수련, 국가시험 또는 공적 인증을 통해 전문성을 검증하는 체계로서 운영하고 있다(성현모 외, 2022; 손보영 외, 2024). 이는 심리사 제도가 단순히 국내 직역 간 이해조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확립된 교육 및 수련 기준에 부합하는 전문직 체계를 구축하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한국심리학회(2020)의 「심리서비스 입법 연구」는 국내외 문헌검토, OECD 회원국 제도 비교, 해외 심리전문가 설문조사, 미국·영국 전문가 화상 자문, 국내 전문가 설문조사 및 인접 직역 자문 등을 종합하여 심리사법안 모델을 도출하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OECD 회원국의 93.9%가 심리사 관련 면허 또는 자격법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수 국가가 석사 이상 전공 교육, 최소 2~3년(약 3,000시간)의 지도감독 하 수련, 국가시험, 의무 등록 및 윤리 규율 체계를 공통 요소로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후속 논의에서도 미국의 Examination for Professional Practice in Psychology (EPPP)와 유럽의 European Certificate in Psychology (EuroPsy) 기준을 비교 분석하여, 석사 이상 전공 교육, 엄격한 지도감독 하 실무수련, 국가시험, 지속적 보수교육을 포함하는 자격체계를 제안한 바 있다. 특히 교육과정은 EPPP 및 EuroPsy 교과 기준에 상응하는 학점과 내용 구성을 갖출 것을 강조하였으며, 수련 역시 석사 후 3,000시간(또는 박사 후 1,000시간) 수준의 감독 하 실무수련을 통해 전문 역량을 검증해야 함을 제시하였다. 이는 국제심리연맹(International Union of Psychological Science: IUPsyS) 및 유럽심리사협회연맹(European Federation of Psychologists’ Associations: EFPA)이 제시하는 역량 기반 전문직 모델과 정합성을 확보하려는 방향과 맥을 같이한다(박중규 외, 2022; 한국심리학회, 2020).

이러한 국제적 전문직 기준은 실제 각국의 입법 구조에서도 구체적으로 확인된다(표 1). 미국, 영국, 독일, 호주, 대만,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입법 형식에는 차이가 있으나, 공통적으로 심리전문직을 공적 면허 또는 등록관리 체계 하에 두고, 자격요건 설정, 국가시험 또는 공적 인증, 등록·면허 관리, 윤리 규율 및 징계 체계를 통해 전문성을 관리하고 있다. 대륙법 체계 국가(독일, 대만, 일본)는 개별 심리사법을 통해 자격 요건과 업무 범위를 법률에 명시하고 국가시험 중심으로 운영하는 반면, 영미법 체계 국가(미국, 영국, 호주)는 보건의료인 등록관리 체계 내에서 면허를 관리한다. 한편, 양 체계 모두 공적 감독기구에 의한 등록·징계 및 무자격 행위에 대한 제재를 핵심 요소로 한다는 점에서 구조적 공통성을 지닌다(보건복지부, 2020).

표 1.

주요 국가별 심리사법 입법 구조

법령 / 자격명 내용
대륙법 체계 일본 공인심리사법(公認心理師)1) 공인심리사의 정의, 업무 범위, 자격요건 및 국가시험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
대만 심리사법(Psychologists’ Act)2) 임상심리사와 상담심리사의 자격요건, 업무 범위 및 서비스 제공에 관한 사항을 규정
독일 심리치료사 직업법(Gesetz über den Beruf der Psychotherapeutin und des Psychotherapeuten, PsychThG)3) 심리치료사의 직업명 사용 요건과 면허, 국가시험 및 교육·실습 요건을 규정하고, 심리치료 제공을 위한 전문적 권한과 직업명 무단 사용 등 법 위반 시 제재에 관한 사항
영미법 체계 미국 심리사(Licensed Psychologist)4) 심리사의 면허요건, 직역 범위, 무면허 사용 제한 등을 규정
상담사(Licensed Professional Counselor)5) 정신건강상담의 정의, 서비스 범위, 학위·수련·시험 요건, 보호칭호 사용을 규정
호주 일반심리학자(General Psychologist)6) psychologist 명칭 사용과 일반 등록 요건, 최소 교육·훈련 기준을 규정
전문영역 심리학자(Specialist)7) 일반 등록 심리사 중 승인된 전문영역에 대해 추가 자격을 부여하며, 임상·상담·법정·건강·교육 및 발달 등 승인 영역을 규정
영국 공인심리사 (Chartered Psychologist)8) 심리실무 인력의 보호칭호와 등록기준을 규정하며, 상담심리사 등 보호칭호 사용에는 HCPC 등록이 필요함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심리서비스 제공 인력의 자격 명칭과 수준, 전문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재하여, 일반 국민 입장에서 과학적 근거와 전문성을 갖춘 심리서비스 제공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어 왔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국정감사, 정책토론회, 정부 연구용역 등을 통해 지적되어 왔으며, 심리서비스의 공공성과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한 법제화의 필요성 역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왔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한국심리학회는 2019년을 기점으로 심리사법 제정을 위한 집중 워크숍과 회원 공청회를 개최하며, 심리서비스 자격체계의 구조적 문제와 법제화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정책토론회와 국제포럼을 통해 심리서비스의 핵심역량, 교육 및 수련 기준, 국제적 정합성에 대한 논의가 확장되었고, 심리사 제도 도입의 필요성은 점차 정책 의제로 공론화되었다. 이러한 논의의 축적을 바탕으로 2022년 4월, 서정숙 의원 등이 「심리사법안」(의안번호 2115453)을 국회에 발의하였으며, 이 과정은 심리사 제도를 단순한 자격 신설이 아닌 심리서비스 전달체계 전반을 재구조화하기 위한 정책 과제로 위치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심리사법안은 심리사를 일정한 교육과 수련을 이수한 후 국가시험을 통해 검증된 전문인력으로 규정하고, 심리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제도적으로 관리함으로써 국민의 심리적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 특히 심리사의 교육과 수련, 자격 관리에 관한 기본 틀을 법률로 제시하고, 세부적인 사항은 향후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하위 법령을 통해 구체화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제도적 전환의 출발점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나아가 심리사법안은 우리나라 심리서비스 제도의 구조적 문제와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적 선택이 집약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반면, 지금까지의 관련 논의는 주로 심리사 자격요건이나 교육·수련 기준의 적절성에 초점을 맞추어 왔으며, 법안 발의에 이르기까지의 논의 축적 과정과 정책적 맥락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검토한 연구는 제한적이었다. 이에 본 연구는 심리사법안의 발의 과정을 중심으로, 한국심리학회가 축적해 온 학문적 성과와 제도화 요구가 어떠한 역사적, 상황적 맥락 속에서 입법 논의로 연결되었는지를 회고적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특히 올해는 한국심리학회 창립 8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심리학이 학문적 발전과 국민을 위한 심리서비스 제공, 그리고 전문인력 양성에 기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차원의 법체계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향후 국가 차원의 기본 법체계 마련이라는 과제가 어떻게 논의되어 왔는지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심리사법안 발의가 갖는 제도적 의미를 조명함으로써 향후 심리서비스 법제화 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정책적·학문적 시사점을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정책 의제의 형성과 논의의 축적 과정

문제 제기의 단계: 2019년

한국심리학회 제49대 임기(회장: 조현섭)에 해당하는 2019년은 심리서비스 관련 논의가 개별적 문제 제기를 넘어 정책 의제로 본격화된 전환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같은 해 4월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국민의 행복을 위한 심리서비스 활성화 방안」 세미나는 심리서비스의 제도적 공백을 공식적으로 공론화한 첫 정책 행사로, 심리서비스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전문인력을 규율하는 법적 체계가 부재하다는 점이 핵심적으로 제기되었다. 이 세미나는 심리서비스를 특정 직역의 이해관계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정신건강과 직결된 공공 정책 영역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같은 해 10월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는 심리·상담 관련 민간자격의 난립 문제가 직접적으로 지적되었다. 국회의원 질의 과정에서는 선진국과 비교할 때 심리·상담서비스 인력의 자격 기준과 관리체계가 현저히 미흡하다는 점이 강조되었고,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심리서비스 전문인력 관리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이는 정부 차원에서 심리서비스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초기 사례로, 이후 정책 논의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이와 같은 문제 인식은 이후 실시된 대국민 설문조사를 통해 구체적 수치로 확인되었다(윈지코리아컨설팅, 2018). 설문조사는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으며, ‘정신적이거나 심리적인 문제를 겪었을 때 주로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전문가의 치료와 상담이 도움이 되었습니까?’ 등 문항을 포함하며, 심리서비스 이용 경험, 전문가에 대한 인식, 자격기준 및 법률 제정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조사하였다. 해당 설문조사에 따르면, 심리적, 정신적 문제를 경험한 10명 중 9명은 전문가를 찾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전문가를 찾지 않은 이유 중 14.7%는 ‘어디서 도움을 받을지 몰라서’라고 보고하였다. 심리상담을 비롯한 심리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인지하더라도 적절한 기관이나 전문가를 찾기 어렵고, 경제적 비용 부담 때문에 필요한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기 힘든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의 논의는 아직 구체적인 입법안을 전제로 하기보다는 심리서비스 영역 전반에 대한 문제 인식을 공유하고 정책 의제로 설정하는 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 즉, 2019년은 심리사법안 발의를 직접적으로 준비한 시기라기보다는 심리서비스 제도화 필요성이 사회적·정책적으로 가시화된 출발점에 해당한다.

정책 논의의 확장과 근거 축적 단계: 2020~2021년

한국심리학회 제50대 임기(회장: 장은진)에 해당하는 2020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은 심리서비스 정책 논의를 가속화하는 외생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팬데믹 상황에서 우울, 불안, 스트레스, 고립감과 같은 심리적 어려움이 전 연령층에서 광범위하게 보고되었고, 이에 따라 심리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요구 역시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심리서비스 전달체계의 한계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 한국심리학회는 전 국민 대상 무료 전화상담인 대국민 심리지원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국정감사와 정책토론회를 통해 심리서비스 전문인력의 제도적 관리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였다. 특히 2020년 국정감사에서는 심리서비스 제공 인력에 대한 국가 차원의 자격 기준과 관리체계가 미비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민간자격 중심의 운영 구조가 서비스 질 관리와 이용자 보호 측면에서 한계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대정부 질의를 통해 강조되었다. 이와 함께 한국심리학회를 중심으로 심리서비스 제도화를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이 언급되면서, 학계에서 축적되어 온 논의가 정책 검토 단계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논의의 흐름 속에서 2020년 수행된 보건복지부 연구용역 「심리서비스 입법 연구」는 심리서비스 전달체계의 구조적 문제, 국제 기준(OECD)과의 격차, 심리사 제도의 필요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였다. 해당 연구는 심리사 제도를 단순한 직역 보호 장치가 아니라, 심리서비스의 질 관리와 공공적 책임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 위치시키며, 이후 입법 논의의 핵심 근거 자료로 활용되었다. 이 시기는 심리사 제도화 논의가 단순한 문제 제기를 넘어, 정책 설계와 입법 가능성을 검토하는 단계로 발전한 국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책 네트워크의 형성과 심리사법안 발의: 2022년

2022년은 그간 축적된 논의가 입법 단계로 수렴된 시기였다. 한국심리학회는 OECD 기준에 부합하는 심리사 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정책제안서를 제시하고, 국회 심포지엄과 국제포럼을 통해 심리서비스 법제화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공론화하였다. 특히 2022년 3월 24일에 개최된 「대한민국 심리서비스: 핵심역량과 법제화」 국제포럼에서는 심리사를 단순한 상담 제공 인력이 아닌 정신건강 영역의 핵심 전문인력으로 재정의하며, 그에 필요한 교육·수련·자격기준 및 관리체계의 필요성이 중점적으로 논의되었다.

표 2.
심리사법안 발의 과정 개요
일자 주요 내용
2019.04.01. ‘국민의 행복을 위한 심리서비스 활성화 방안’ 국회 세미나 개최
2019.10.21. 국정감사에서 심리·상담 관련 자격 난립 문제 및 제도화 필요성 지적
2020.02.01.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대국민 심리지원 자원봉사 활동 전개
2020.10.07. 국정감사에서 심리지원 강화 및 심리서비스 제도 개선 필요성 언급
2021.11.30. ‘심리서비스 입법 연구’ 정부 용역 연구 결과 보고
2021.12.15. OECD 기준에 부합하는 심리사 제도 도입 정책제안서 제출
2022.02.10. 자살예방 및 심리서비스 활성화 관련 국회 심포지엄 개최
2022.03.24. ‘대한민국 심리서비스: 핵심역량과 법제화’ 국제포럼 개최
2022.04.29. 심리사법안 국회 공식 발의
2022.06.10. 포스트 코로나 정신건강 정책토론회 개최

또한, 2022년 4월 4일부터 4월 8일까지 한국심리학회는 주요 대학 교수와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부적격 심리상담사 법안 발의 반대 및 OECD 수준의 심리서비스법 제정 촉구’ 집회를 국회 앞에서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학회는 그 당시 발의된 심리상담사 법안의 자격요건이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엄격한 교육과 실무수련 요건을 반영한 제도 설계의 필요성을 촉구하였다(파이낸스투데이, 2022). 특히, 학력과 수련 등 전문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관련 기관 근무 경력만을 인정하여 법제화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였다. 이는 국민의 정신건강 및 심리건강과 직결되는 영역에서는 서비스 제공인력의 입장이나 그들의 형식적인 자격 요건 보다는 수요자의 안전과 서비스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전문성이 우선적으로 요청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의사나 변호사 등 다른 전문직 영역에서도 대상자 보호와 공공의 신뢰 확보를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학력과 체계적인 수련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심리사 제도는 복지의 보조 수단이나 단기적 위기 대응 수단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공공 서비스 인프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학회, 국회, 정부 간 상호작용은 정책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심리사법안 발의를 위한 제도적·정치적 조건을 점진적으로 성숙시켰다.

그 결과 2022년 4월, 「심리사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다. 해당 법안은 심리사를 일정한 교육과 수련을 이수한 후 국가시험을 통해 검증된 전문인력으로 규정하고, 자격 관리와 윤리 기준을 법률 차원에서 명시하고자 하였다. 이는 심리서비스를 민간 영역의 자율적 서비스에만 맡기지 않고,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 서비스 영역으로 재정립하려는 정책적 선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심리사법안 발의와 그 정책적 의미

2019년 이후 한국에서의 심리사법 논의는 단일 사건이나 특정 행위자에 의해 촉발된 것이 아니라, 전문가 집단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 정책 토론과 공론화, 정부 연구 용역과 국정감사 발언이 상호 연계되며 점진적으로 축적된 정책 형성 과정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박중규 외, 2022; 이만우, 2021; 최정아, 2021). 이러한 축적은 2022년 심리사법안 발의로 구체화되었으며, 이는 심리서비스를 일시적 대응이나 보조적 복지 서비스가 아닌, 지속가능한 공공 서비스 영역으로 제도화하려는 정책적 전환을 의미한다. 나아가 심리사법의 발의는 심리전문직 제도화 논의를 국회 차원의 공식 정책 의제로 처음 상정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심리상담 관련 여러 법안들이 발의되는 과정에서 한국심리학회의 제안을 바탕으로 서정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심리사법안은 심리사의 교육과 수련, 자격 관리에 관한 기본 틀을 제시하고, 세부 사항은 하위 법령에 위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설계는 심리사 제도의 실질적 성격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한국심리학회지 41권 3호 부록 참고).

특히, 전공 인증제 도입 여부는 중요한 쟁점이다. 심리서비스의 전문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 전공 교육의 최소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학부 및 대학원 교육과정에 대한 인증 체계가 마련될 필요성이 있다. 전공 인증제는 심리사 양성의 기초를 표준화함으로써 교육의 질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단 전공 인증제는 기존 학과 구조 및 유사 전공 분야와의 조정 문제를 가져올 것이므로 상응하는 여러 문제에 관한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수련의 질 관리와 지도·감독 책임의 명확성 역시 중요한 과제이다. 수련 시간이 양적으로 충족되었는지를 넘어, 수련 내용의 질과 지도자의 책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는 심리사 제도의 신뢰성과 직결된다. 이를 위해 수련기관 인증, 수련심리사 지도 기준, 평가 체계 등에 대한 구체적 기준 마련이 요구된다.

전문영역 표시제 역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전문영역 표시는 심리서비스 이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긍정적 기능을 가질 수 있으나, 과도한 세분화는 오히려 전문직 정체성을 분절시키거나 새로운 위계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전문영역 표시제는 기본 자격 위에 제한적으로 운영되는 방식이 바람직할 수 있다.

향후 심리서비스 법제화의 방향성 논의

심리·상담서비스 법제화1)를 위한 정책적·실천적 함의

심리·상담서비스의 법제화 논의는 전국민의 심리건강을 지원하기 위한 공적 체계를 마련하고, 민간자격의 난립과 서비스 질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심리사법안은 입법에 이르지 못하고 종료되었으며, 이는 단순한 입법 실패라기보다 심리서비스 제도화를 둘러싼 현실 상황적·정책적 쟁점이 충분히 조정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향후 입법 논의에서는 기존 법안이 직면했던 한계를 검토하고, 제도 설계 과정에서 보완되어야 할 핵심 요소를 도출하는 작업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심리사법안 발의 과정에서 제기된 핵심 논의를 검토하여 향후 심리·상담서비스 법제화 논의의 주요 과제 및 제도적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심리·상담서비스의 개입 영역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21대 심리사법안 논의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제기된 쟁점 중 하나는 심리서비스가 국가 정신건강 정책 체계 내에서 어떠한 영역을 담당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심리·상담서비스의 법제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과제는 해당 서비스가 국가 정신건강 정책 체계 내에서 어떠한 개입 영역으로 위치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정이다. 심리·상담서비스는 비의료적 개입으로서 의료 서비스와 복지 서비스 사이의 중간적 영역에 위치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의료–비의료–복지 영역 간의 연계를 통해 정신건강 서비스 전달체계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아울러 서비스 전달방식에서도 심리서비스는 일반적인 심리적 지원을 넘어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근거기반실천(Evidence-Based Practice)에 기초함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에 따라 향후 법제화 논의에서는 심리서비스의 기능적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여 의료–복지–교육 영역과의 역할 중복에 대한 우려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심리·상담서비스는 예방 및 조기 개입, 치료 이후의 회복과 일상으로의 적응 지원, 그리고 일상적 스트레스와 정서적 어려움에 대한 공공적 지원을 포괄하는 영역으로 기능적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위치 설정은 자격 제도 논의가 서비스의 사회적 기능과 분리되지 않고, 국민의 심리 및 정신건강 증진이라는 정책 목표와 유기적으로 연계되도록 하기 위한 핵심 전제 조건이다. 또한 앞서 심리사 자격의 국가자격을 운영하는 여러 국가들을 예시하였으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모범 사례를 수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국민의 서비스 수요에 상응하는 직역별 법제화 필요성

기존 법제화 논의는 자격 신설 여부와 직역 간 이해관계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으며, 이는 입법 과정에서 갈등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근거 기반 정책 관점에서 볼 때, 제도의 정당성은 자격 자체보다 해당 서비스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필요한지에 의해 강화된다. 향후에는 제공되어야 할 서비스의 내용과 범위를 중심으로 한 정책 설계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근거 기반 정책 관점에서 볼 때, 서비스 체계의 효과성은 개별 자격체계의 구성보다 서비스가 누구에게, 어떤 수준으로, 어떠한 구조로 제공되는지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심리·상담서비스의 대상 집단(일반 국민, 위험군, 고위험군), 개입 수준(심리교육, 상담·심리치료, 심리평가 등), 그리고 의료·복지·교육 체계와의 연계 구조를 기준으로 서비스 유형을 체계적으로 구분하고, 이에 부합하는 인력 요건과 자격 기준을 역으로 설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서비스 중심의 정책 설계는 자격 제도가 서비스 접근을 제한하는 규제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의 질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제도적 장치로 작동하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명심해야 할 점은 적어도 심리서비스와 그 외 기타 상담서비스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분리되어 규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기존 체제와의 조화와 발전이라는 관점의 필요성

심리·상담서비스의 법제화는 새로운 국가 자격의 도입이라는 의미를 넘어,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자격 및 제도와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과정으로 접근될 필요가 있다. 현재 심리서비스 영역에는 정신건강전문요원, 청소년상담사, 전문상담교사와 같은 국가 자격뿐만 아니라 일정한 교육 기준과 수련 체계를 기반으로 운영되어 온 민간자격이 공존하고 있다. 즉, 각 법령에 의한 여러 자격이 심리·상담서비스 수행 주체로 중첩되어 있어 역할이 충분히 차별화되지 못한 양상이며, 효율적인 역할 수행에 대한 합의와 기준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제도 설계에서는 기존 자격 체계를 단순히 유지하거나 대체하는 이분법적 접근을 지양하고, 각 제도가 각각의 고유 학문적 배경에 따라 축적해 온 전문성과 기능을 토대로 상호 보완적인 역할 구조를 형성하는 방향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특히 심리·상담서비스를 기존의 여러 법령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를 보다 분명히 함으로써 국민에게 제공되는 심리·상담서비스 전달체계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확보하고, 서비스 접근성과 질 관리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정책적 방안으로서 법제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누차 반복되는 얘기지만, 심리서비스 모법이 OECD 대부분의 국가에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에서도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법제화의 필요성을 전제로 하여 기존 자격체계와의 공존 방안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종합하면, 앞서 살펴본 21대 국회의 심리사법 법제화 과정은 심리서비스가 우리 사회의 기존 법체계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구조적 합의가 매우 중요함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따라서 향후의 논의는 제도적 정합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정책의 초점을 ‘자격’에서 ‘서비스’로 옮기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가장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심리서비스를 특정 부처나 개별 법령에 국한하지 않고 부처 간·제도 간 통합적 정의와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자격 체계를 신설하는 기술적 절차를 넘어, 기존의 보건·교육·복지 시스템 속에서 심리서비스가 다른 전문 영역들과 어떻게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할지를 설계하는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틀이 갖추어지지 않을 경우, 직역 간 역할 중복에 따른 조정 과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정책적 교착 상태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학회와 정부는 다음과 같은 상호작용을 통해 제도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첫째, 학회의 전문성은 정책적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기반이 된다.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근거 기반 실천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제도 도입의 정책적 정당성을 뒷받침해야 한다. 이는 타 직역과의 협력을 통한 역할 분점 모델을 구체화함으로써, 공급자 중심의 자격 논의를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 설계로 전환시키는 실질적인 동력이 될 것이다. 둘째, 정부의 공공성은 이를 안정적인 제도로 안착시키는 틀이 된다. 정부는 학회가 제시한 전문적 모델을 바탕으로 이용자 보호를 위한 공적 관리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특히 범부처 차원의 정책 조정을 통해 제도적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이해관계자 간의 사회적 합의가 실질적인 입법 동력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공적인 논의 구조를 제도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결국, 심리서비스 제도화의 실현을 위해서는 기존 제도와의 공존 방식을 정립하는 구조적 토대가 이용자 중심의 정책을 설계하는 전략을 이끌어내고, 이것이 다시 이해관계자 간의 합의를 실현하는 실행으로 이어지는 인과적 선순환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 이러한 선순환 체계 속에서 전문 단체와 정부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면서도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상호 보완적으로 협력할 때, 비로소 심리서비스는 전문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갖춘 지속 가능한 제도로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K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현실에서, 조속한 시일 내에 우리 국민도 OECD 대부분의 국가에서 운영되는 근거기반실천에 기초한 안전하고 전문적인 심리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1) 「마음건강심리사 및 마음건강상담사에 관한 법률안」(의안번호 2211134, 2025. 6. 27. 발의) 등 심리사와 상담사에 관한 최근 법제화 현실을 고려하여 심리․상담서비스 법제화로 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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