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게임(이하 게임)은 지난 20여 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문화·산업 영역 가운데 하나였으며, 한국 사회에서도 청소년과 청년층의 일상 여가, 또래문화, 자기표현, 정체성 형성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한국콘텐츠진흥원, 2024). 그러나 일부 개인에게서는 게임 이용이 학업·직업 기능 저하, 가족갈등, 수면 문제, 정서적 어려움과 결합해 나타난다는 임상적·사회적 우려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King & Delfabbro, 2019). 이러한 우려는 ‘문제적 게임 이용’을 하나의 정신질환으로 분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 논쟁의 핵심은 동일한 현상에 대한 국제 분류체계의 판단이 서로 다르다는 데 있다. DSM-5는 2013년 Internet Gaming Disorder(IGD)를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태(condition for further study)’로 제안하였고, 2022년의 DSM-5-TR에서도 이를 여전히 Section III에 유지하고 있다(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2022). 반면 세계보건기구(WHO)는 2018년 ICD-11에 Gaming Disorder(GD)를 정식 수록하였다(WHO, 2019; Reed et al., 2019).

한 체계는 잠정적 후보 진단으로 남겨 두고, 다른 체계는 정식 질환으로 등재했다는 사실은 게임이용장애를 둘러싼 국제적 합의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Borges et al., 2021). 이러한 불일치는 국제 분류체계 간 차이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내 연구에서도 심리학 전문가의 청소년 게임이용에 대한 태도는 연령, 게임 경험 및 개방성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조현섭, 조성민, 신성만, 이장주, 2020). 이는 현행 논쟁에서 명시적 판단 규칙이 부재할 경우 동일한 자료를 두고도 서로 다른 결론이 도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하에서 ‘유지·재분류·철회’는 ICD-11처럼 이미 게임이용장애를 등재한 분류체계에서 그 지위를 재평가하는 선택지를 의미하며, ‘도입’은 게임이용장애 코드를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반영하는 국내 분류정책의 선택지를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상대적으로 덜 다루어진, 그러나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그것은 어떤 경험적 결과가 축적되면 현행 질병코드화를 유지해야 하고, 어떤 결과가 반복되면 재분류하거나 철회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과학철학의 전통에서 이는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의 문제이며(Popper, 1959/2002), 진단 분류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Zachar & Kendler, 2017). 정신장애 분류의 역사가 보여주듯, 한 번 질병 범주로 제도화된 분류는 훗날 수정이나 철회가 필요해지더라도 이미 누적된 낙인과 제도적 손실을 쉽게 되돌릴 수 없다(Drescher, 2015; Reed et al., 2016).

이 문제는 심리학의 관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게임이용장애를 둘러싼 현재의 논의는 종종 게임 행동 자체를 문제의 원인으로 전제하지만, 심리학적 개입 현장에서 게임 문제만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다(Hygen et al., 2020; 송영수 등, 2019). 발달정신병리학(developmental psychopathology)의 관점에서 보면 청소년기의 일시적 게임과몰입은 만성적 장애와 질적으로 구분되어야 하며(Coyne et al., 2020), 자기결정성이론(Ryan & Deci, 2000, 2017)에 따르면 게임은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한 자율성(autonomy), 유능감(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의 기본 심리욕구를 보상하는 기능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게임 행동은 단순한 ‘조절 실패’라기보다 심리적 욕구 좌절에 대한 보상적 대처(compensatory coping)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Kardefelt-Winther, 2014). 그럼에도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가 임상·교육·정책 현장의 우선적인 해석 틀로 작동할 경우, 게임 관련 어려움은 발달단계, 우울·불안과 같은 공존 문제, 가족·학교·또래관계 및 심리적 욕구 좌절과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되기보다, 게임 행동 자체의 통제 실패와 진단기준 충족 여부로 축소되어 해석될 위험이 있다(Billieux et al., 2015; Hygen et al., 2020). 또한 해킹(Hacking, 1995)의 루핑 효과(looping effect)가 시사하듯, 진단명은 개인의 자기이해와 행동을 재구성할 수 있다(Hacking, 1999).

이러한 맥락에서 본 논문은 현 단계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병리화의 근거가 아직 충분히 안정적이지 않고(Aarseth et al., 2017; van Rooij et al., 2018), 게임 특화 개입의 추가적 치료 이득을 판단할 비교 근거도 충분하지 않으며(King et al., 2017), 발달·가족·학교·지역사회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심리사회적 개입의 가능성이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안재경, 2023; 유창석 등, 2021). 이에 본 논문은 이러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반증가능성의 관점으로 재구성하고,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의 유지·재분류·철회를 판단하기 위한 의사결정 나무(decision tree)를 제안한다.

본 논문은 체계적 문헌고찰이나 메타분석이 아니라, 주요 국제 분류체계와 핵심 논쟁 문헌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판단 규칙을 제안하는 개념적 논문이다. 게임이용장애 관련 문헌은 DSM-5가 발표된 2013년 이후부터 2025년까지의 연구를 중심으로 검토하되, 정신장애 분류와 비병리화에 관한 논의에는 고전적 문헌을 포함하였다. 문헌의 포함 우선순위는 ① WHO와 APA의 공식 분류 문서, ② 진단 타당성·유병률·인과관계·질환 경과·치료 효과·낙인을 직접 다룬 리뷰 논문과 메타분석, ③ 질병코드화의 필요성을 제시하거나 비판적으로 검토한 대표 문헌, ④ 국내의 실증·정책 연구 순으로 설정하였다. 본 논문이 제안하는 판단 조건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문헌은 분석에서 제외하였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첫째, 정신장애 분류체계의 역사와 비병리화 사례를 검토한다. 둘째, DSM-5/DSM-5-TR과 ICD-11의 상이한 분류 전략, 그리고 질병코드화의 주요 근거와 미해결 쟁점을 검증 가능한 명제로 재구성한다. 셋째, 독립 질환 실체성, 측정 타당성, 인과관계, 질환 경과, 임상적 유용성, 사회적 비용·편익이라는 여섯 개의 핵심 판단 조건을 도출하고, 이를 위계적으로 결합한 의사결정 나무를 제안한다.

이론적 배경 및 쟁점 검토

정신장애 분류의 역사와 비병리화의 교훈

정신장애 분류체계의 역사는 어떤 경험이나 정체성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것을 정신질환으로 규정하는 판단이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보여준다(Kendell & Jablensky, 2003). 과거 DSM과 ICD에서는 동성애와 성전환증이 모두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었으나, 이후 연구와 임상적 재검토, 인권 규범의 변화는 이러한 분류가 당시의 도덕 규범과 사회적 불안, 병리화의 관습이 강하게 개입한 산물이었음을 드러냈다(Drescher, 2015; Reed et al., 2016; Robles et al., 2021).

다만 동성애나 성별불일치(gender incongruence) 사례를 참조하는 것은 이를 게임이용장애와 범주적으로 동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본 논문이 주목하는 바는 특정 경험을 정신질환으로 분류하는 결정이 낙인과 제도적 손실을 수반할 수 있으며, 일단 도입된 진단의 철회에는 과학적 검토 이상의 비용이 따른다는 분류정책의 일반 원리이다. 이 원리는 게임이용장애를 포함한 새로운 진단 범주의 도입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동성애의 경우,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DSM-II에서 동성애를 삭제하기로 결정하였다(Drescher, 2015). 이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제기된 문제는, 기존 진단이 ‘개인의 고통’을 질병의 근거로 제시했으나 실제로 그 고통의 상당 부분이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낙인과 차별, 강제적 규범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었다(Drescher, 2015). 성별불일치 역시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 ICD-11은 이를 더 이상 ‘정신 및 행동장애’ 장에 포함하지 않고 ‘성 건강 관련 상태’로 재배치함으로써, 고통의 실재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곧바로 정신질환으로 환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분류체계를 수정하였다(Drescher et al., 2016; Reed et al., 2016).

병리화의 오류는 이론적 오판에 그치지 않는다. 성적 지향에 대한 병리화는 전환치료(conversion therapy)와 같은 유해한 개입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기능해 왔으며, 이후의 연구와 역사적 검토는 이러한 개입이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우울, 불안, 자살사고 증가 등 심각한 해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고하였다(Shidlo & Schroeder, 2002; Drescher, 2015).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게임이용장애 논의에도 간과해서는 안 될 시사점을 제공한다. 즉, 게임 관련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곧 그것을 독립된 정신질환으로 코드화할 근거가 되지는 않으며, 앞선 사례들이 보여주듯 병리화는 문제 해결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해를 키우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진단 범주를 도입할 때 특히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진단이 일단 제도화되면 이후 수정이나 철회가 과학적 검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Kendler, 2009; Kendler & First, 2010). 진단은 분류체계 내부에 머물지 않고 임상, 교육, 행정, 보험, 사법, 언론, 대중 담론으로 확산된다. 정신장애 영역에서 이러한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은 특히 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Kendler, 2009; Zachar & Kendler, 2017).

이 문제는 게임이용장애에서 더욱 민감하게 나타난다. 게임은 도박이나 물질 사용과 달리 이미 한국 사회에서 여가, 문화, 또래 상호작용, 자기표현의 공간이 되고 있다(한국콘텐츠진흥원, 2024). 따라서 게임 문제를 독립 질환으로 규정하는 것은 ‘게임을 하는 청소년’과 ‘게임을 많이 하는 이용자’ 일반에 대한 사회적 해석까지 바꿀 수 있다(유창석 등, 2021; 김석환 등, 2020). 이처럼 분류의 파급 범위가 넓은 경우일수록 질병코드화의 근거는 더욱 엄격해야 하며, 유지뿐 아니라 재분류·철회의 조건까지 함께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논의는 게임 관련 문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것을 독립된 정신질환으로 질병코드화하는 것이 타당한지가 동일한 판단이 아님을 보여준다. 정신장애 분류의 역사는 문제의 실재가 곧 질병의 실재를 의미하지 않으며, 잘못된 병리화는 심각한 낙인과 제도적 손실을 남길 수 있음을 시사한다(Drescher, 2015; Zachar & Kendler, 2017). 이러한 점은 게임이용장애 논의에서도 ‘문제의 존재’와 ‘독립 질환으로서의 정당성’을 구분하여 검토해야 함을 뜻하며, 다음 절에서 살펴볼 DSM-5/DSM-5-TR과 ICD-11의 상이한 결정이 왜 중요한 쟁점인지를 이해하는 이론적 출발점이 된다.

게임이용장애 논의의 현황: DSM-5와 ICD-11은 왜 다른 결정을 내렸는가

DSM-5는 2013년 IGD를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태’로 제안하였고, 도박장애와 물질사용장애의 진단 논리를 부분적으로 차용하여 9개 기준을 제시하였다(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Petry & O’Brien, 2013; Petry et al., 2014). DSM-5-TR에서도 IGD는 Section III에 유지되어 있다(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22). 이는 미국정신의학회가 IGD를 정식 진단 범주로 전환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반면 ICD-11은 GD를 ‘중독성 행동장애’ 장에 정식 등재하였다(World Health Organization, 2019; Reed et al., 2019, 2022). GD는 통제 손상, 우선순위 변화, 부정적 결과에도 지속이라는 세 가지 핵심 기준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DSM-5의 내성, 금단, 도피, 기만 등은 핵심 기준에서 제외되었다(Saunders et al., 2017; Billieux et al., 2021). 또한 ICD-11은 ‘위험한 게임 행동(hazardous gaming)’이라는 비질병 범주를 별도로 두어, 질환 수준에 이르지 않은 위험 행동과 정식 장애를 구분하는 구조를 채택하였다(World Health Organization, 2019; Reed et al., 2022).

이러한 차이를 ICD의 임상적·공중보건적 역할과 실용적 유용성으로 설명하는 견해도 있다(Saunders et al., 2017; Billieux et al., 2021). 그러나 비판적 입장에서 보면, 동일한 현상을 두고 한 체계는 추가 연구 대상으로 남겨 두고 다른 체계는 정식 질환으로 등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안정된 합의의 부재를 보여준다(Aarseth et al., 2017; van Rooij et al., 2018). 유병률 연구에서 나타나는 큰 변동성과 도구 간 불일치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Darvesh et al., 2020; Kim et al., 2022; Stevens et al., 2021). 독립된 질환 실체가 존재한다면 측정도구와 분류체계가 달라도 ‘누가 고위험군인가’에 대한 판단은 어느 정도 수렴해야 한다. 두 진단체계의 타당성과 일치도를 지지하는 결과(Yen et al., 2023)와 포착되는 집단의 범위에 차이가 있다는 결과(Jo et al., 2019)가 함께 보고된다. 높은 게임 관여와 장애의 경계, 다른 장애와의 구분을 추가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 심리학계의 비판적 문제의식

2019년 조현섭 당시 한국심리학회장은 한 언론 인터뷰1)에서 “한국심리학회뿐 아니라 산하 15개 분과학회 중 한국중독심리학회를 비롯한 14개 학회 역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에 반대하고 있으며, 나머지 1곳인 한국임상심리학회도 찬성이 아닌 보류 입장”이라고 밝혔다. 한국심리학계에서 제기된 비판의 핵심은 게임이용 문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데 있다기보다, 현재의 분류 방식이 그 문제를 설명하고 개입하는 가장 타당한 방식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 있었다(송영수 등, 2019; 이승모 등, 2020). 게임 관련 문제는 우울, 불안, 주의집중 곤란 및 가족갈등과 함께 나타날 수 있다(Hygen et al., 2020; 송영수 등, 2019). 앞서 살펴본 국내 연구 역시 전문가의 게임 경험과 태도를 판단 과정에서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조현섭 등, 2020).

질병코드화에 대한 비판은 직능집단의 이해관계와 구분하여 그 근거를 검토해야 한다. 질병코드화가 먼저 제도화되면, 발달, 가족, 학교, 또래, 지역사회 맥락을 다루는 심리사회적 접근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안재경, 2023). 이 우려는 직능집단의 이해관계라기보다, 복합적인 문제를 좁은 의료 모형으로 설명할 때 놓칠 수 있는 지원과 개입에 관한 문제제기이다(van Rooij et al., 2018).

주요 근거와 미해결 쟁점의 검증 가능한 재구성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를 둘러싼 주요 논거는 단순한 가치판단이 아니라 일정한 경험적 함의를 포함한다. 질병코드화를 지지하는 논거는 임상적 필요성(Saunders et al., 2017), 중독 모형과의 연속성(Brand et al., 2019), 공중보건 및 정책적 유용성(Billieux et al., 2021)을 강조한다. 반면 아직 해소되지 않은 쟁점으로는 개념과 측정의 불안정성(Jo et al., 2019; King et al., 2020; Yen et al., 2023), 공존질환과 공통 취약성(Han et al., 2017; Hygen et al., 2020; Kardefelt-Winther, 2014), 낙인과 과잉 병리화(Aarseth et al., 2017)가 제기된다. 이하에서는 질병코드화의 주요 근거와 미해결 쟁점을 검증 가능한 명제로 재구성하고, 각 쟁점을 판정하기 위해 필요한 경험적 조건을 표 1과 같이 정리하였다.

표 1.
질병코드화의 주요 근거, 미해결 쟁점 및 판정 조건
쟁점 축 질병코드화의 근거 미해결 쟁점 판정 조건
임상적 필요성 심각한 기능손상 집단이 존재하며 공식 진단이 필요 (Saunders et al., 2017) 해당 집단이 공존질환 및
공통 취약성으로 설명될 가능성 (Hygen et al., 2020)
→ 조건 1: 공통 취약성 통제 후 독립 설명력
중독 모형 및
신경생물학적
수렴성
도박장애·물질사용장애와 일부 심리·신경생물학적
특징 공유(Brand et al., 2019;
Kim et al., 2015)
보고된 신경생물학적 소견이 IGD에 고유한지, 장시간
게임 경험·기존 취약성·공존질환과 관련된 것인지 불분명함(Han et al., 2017; Starcevic, 2017)
→ 조건 1의 하위 기준: 신경생물학적 수렴성 및 판별 타당성
측정 타당성 ICD-11이 기능손상을 중심으로 진단 범위를 좁힘(Saunders et al., 2017; Billieux et al., 2021) 기준 간 유병률과 분류 불일치가 여전히 큼
(Stevens et al., 2021)
→ 조건 2: 기준 간 일치도, 양성예측도
인과 방향 게임이용의 조절 실패가 기능손상에 기여
(Brand et al., 2019)
학업스트레스·부모관계·
자기통제 등 심리사회적 경로가 게임 문제를 설명할 가능성(Jeong et al., 2019; Kardefelt-Winther, 2014)
→ 조건 3: 교차지연 패널에서 경로 방향
질환 경과 일부 집단에서 지속적인
증상 궤적이 관찰됨
(Coyne et al., 2020)
증상 경과의 이질성이
존재함
(Coyne et al., 2020)
→ 조건 4: 3-5년
지속률, 자연회복 비율
임상적 유용성 정식 분류가 조기 발견과 치료체계 구축에 기여
(Billieux et al., 2021)
게임 특화 개입의 추가적 효과를 판단할 비교 근거가 충분하지 않음
(King et al., 2017)
→ 조건 5: 비교 개입의 장기 성과
사회적 비용
·편익
공중보건 자원 동원과
가시성 확보
(Billieux et al., 2021)
불필요한 치료비용 발생 가능성과 실제 비용 규모의 불확실성(유창석 등, 2021) → 조건 6: 낙인·자원 배분 추적

표 1이 보여주듯, 질병코드화의 주요 근거와 미해결 쟁점은 결국 여섯 가지 판단 조건으로 수렴한다. 이 조건들이 어떻게 검증되는가에 따라 질병코드화의 유지·재분류·철회라는 서로 다른 결론이 도출된다. 다음 장에서는 이 조건들을 위계적으로 배열하고 각 조건의 판정 기준을 구체화한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의 반증조건과 의사결정 나무

의사결정 나무를 판단 틀로 채택한 이유는, 이 도구가 임상 의사결정 분석(clinical decision analysis)의 전통에서 발전하여 복수의 판단 조건을 위계적으로 배열하고 각 분기점의 충족 여부에 따라 서로 다른 결론을 도출하기 때문이다(Sox et al., 1988). DSM 체계 역시 감별진단에서 위계적 의사결정 구조를 활용해 왔다(First et al., 2002). 이 접근은 단일 기준의 충족 여부에 더해, 서로 다른 차원의 증거를 어떤 순서로 평가하고 어떻게 종합할지 보여준다.

게임이용장애 논쟁은 독립 질환 실체성, 측정 타당성, 인과관계, 질환의 경과, 임상적 유용성, 사회적 비용·편익이라는 이질적 차원의 증거를 함께 평가해야 하므로, 모든 조건을 동등하게 나열하는 체크리스트보다 선행 조건의 충족 여부가 후속 판단의 의미를 바꾸는 위계적 분기 구조가 더 적합하다. 본 논문의 의사결정 나무는 개별 환자의 진단·치료 절차가 아니라, 게임이용장애를 독립된 질병코드로 유지·재분류·철회할 근거가 충분한지를 평가하는 분류정책 수준의 판단 틀이다.

본 논문의 여섯 가지 조건은 임의적으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다음의 세 단계에 따라 도출하였다. 첫째, Robins와 Guze(1970)가 제시한 정신질환 진단 타당성 기준과 Kendell과 Jablensky(2003)의 타당성(validity)-유용성(utility) 구분에서 질병 분류를 평가하기 위한 상위 차원을 추출하였다. 둘째, 표 1에서 정리한 질병코드화의 주요 근거와 미해결 쟁점을 검증 가능한 명제로 전환하고, 이를 각각의 평가 차원에 대응시켰다. 셋째, 내용상 중복되는 논점을 통합하고, 진단 분류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정책적·규범적 결과를 포괄하기 위해 사회적 비용·편익 차원을 추가하였다. 이에 따라 독립 질환 실체성은 다른 장애와의 경계 및 독립적 설명력을, 측정 타당성은 진단 일치도와 예측 정확성을, 인과관계와 질환 경과는 종단적 선후관계와 지속성을, 임상적 유용성은 치료 및 서비스의 추가 이득을, 사회적 비용·편익은 분류가 초래하는 정책적·사회적 결과를 평가하도록 구성하였다. 연구가 부족하거나 결과가 불확실한 경우는 미충족과 구분하여 판정을 유보한다. 근거 부족이나 통계적 비유의성만으로 해당 조건이 반증되었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진단 범주 도입에서는 두 종류의 오류가 가능하다. 실제로 독립 질환이 아닌데 질병코드화하는 과포함 오류(false inclusion)와, 실제로 독립 질환임에도 코드화하지 않는 과배제 오류(false exclusion)이다. 그러나 이 두 오류의 사회적 비용은 동등하지 않을 수 있다.

과배제 오류의 경우, 공식 진단명이 없더라도 우울·불안·가족갈등 등 공존 문제를 다루는 기존 심리사회적 개입 경로를 통한 지원 가능성은 남아 있다. 반면 과포함 오류의 경우, 일단 제도화된 진단은 낙인, 루핑 효과(Hacking, 1995), 의료 자원의 재배분, 심리사회적 개입 공간의 위축이라는 되돌리기 어려운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 경로 의존성(Zachar & Kendler, 2017)으로 인해 잘못 도입된 진단 범주를 철회하는 것은 단순한 과학적 수정을 넘어 막대한 제도적·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Kendler & First, 2010).

이러한 오류 비용의 비대칭성은 판단 틀의 ‘중립성’과는 다른 차원의 논리다. 이는 잘못된 결정으로 인한 불이익을 감당할 수도, 감당할 필요도 없는 집단(예를 들면, 낙인과 과잉 분류에 노출될 수 있는 게임 이용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예방적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의 적용이다(Billieux et al., 2015; Kardefelt-Winther, 2014). 따라서 본 논문의 의사결정 나무는 오류 비용의 비대칭성을 반영하여, 근거가 경계적이거나 불충분할 때는 정식 독립 코드의 유지·확대보다 잠정적 유지 또는 재분류 방향으로 수렴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신중한 판단이 게임이용장애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각 조건의 판정 기준이 충족되는 수준으로 증거가 축적된다면, 동일한 의사결정 나무는 코드화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것이다.

이 조건들은 동등한 항목의 나열이 아니다. 조건 1∼4는 질병 범주의 타당성을, 조건 5는 독립 코드의 임상적 유용성을 검토하며, 조건 6은 과학적·임상적 근거의 검토에 더하여 사회적 비용과 편익을 종합하는 규범적 기준이다(Kendell & Jablensky, 2003; Zachar & Kendler, 2017).

Untitled Section

위계 적용의 예외

분류 타당성에 관한 불확실성이 어려움을 겪는 개인 대한 지원을 유보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측정 타당성·인과관계·질환 경과가 아직 불명확하더라도 중대한 기능손상과 주관적 고통을 보이는 개인에게는 증상, 공존질환 및 심리사회적 어려움을 중심으로 적절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의 필요성이나 특정 개입의 효과만으로 게임이용장애를 독립된 질병코드로 정당화할 수는 없다. 따라서 조건 2∼4가 불확실하나 조건 5의 임상적 유용성이 높게 나타나는 경우, 분류 수준에서는 독립 질병코드의 지위를 확정하기보다 잠정 범주로 유지하며 근거를 추가로 축적하고, 어려움을 겪는 개인에 대한 임상적 지원은 이와 별도로 제공하는 것이 타당하다.

양적·질적 근거의 결합

표 2에서 제시한 수치 기준은 질병코드의 지위를 자동으로 결정하는 절대적 절단점이 아니라, 집단 수준의 증거를 비교하기 위한 잠정적 참고선이다. 양적 자료는 독립 설명력, 진단 일치도, 인과 방향, 지속성 및 치료 효과의 재현성을 평가하며, 질적 자료는 기능손상의 구체적 양상과 사회문화적 맥락, 진단 범주 내부의 이질성을 해석하는 보완 근거가 된다. 두 자료가 상충할 경우에는 특정 중증 사례를 범주 전체의 타당성으로 곧바로 일반화하기보다, 서로 다른 표본과 방법에서 동일한 결과가 반복되는지를 우선 검토해야 한다. 양적 지표가 경계선에 있더라도 중증의 다영역 기능손상과 독립 질병코드의 추가적 임상 이득이 다수 연구에서 일관되게 확인된다면 잠정적 분류를 유지할 수 있으나, 개별 사례 수준의 편익만으로 정식 질병코드의 유지 또는 확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표 2.
각 조건별 판정 기준 예시
조건 충족 판정 기준 미충족 판정 기준 필요 연구 설계
1. 독립 질환 실체 공존질환 통제 후
ΔR² > .02 (잠정),
다수 표본에서 안정적 재현
추가 설명력이
미미하거나 표본·모형에 따라 불안정함
대규모 종단 패널,
메타분석
2. 측정 타당성 기준 간 κ > .60,
검사-재검사 안정성,
양성예측도 적정
도구별 유병률 추정치
큰 변동성, 경계선 집단
진단 변동성 높음
동일 표본 다중
기준 적용 연구
3. 인과관계 교차지연 모형에서 게임→기능손상 경로가 역방향보다 안정적 역방향 경로 우세 3시점 이상 종단연구, 자연실험, 개입 연구
4. 질환 경과 3-5년 추적에서 기능손상을 동반한 지속·재발 경과가 반복 확인됨 일시적 과몰입과
임상적 장애의 경과가
구분되지 않음
청소년→
성인 장기 패널
5. 임상적 유용성 독립 코드 기반 지원이
기존 지원체계보다
추가 이득을 보임
일반 심리서비스 대비
추가 효과가 일관되게
확인되지 않음
비교 개입 RCT,
준실험 설계
6. 비용·편익 서비스 접근성 향상,
낙인 최소, 심리사회적
개입 유지
낙인 증가, 의료 자원 편중,
루핑 효과에 따른
자기개념 손상
시계열, 질적 연구,
국가 간 비교

독립 질환 실체 조건

가장 먼저 검토해야 할 것은 게임이용장애가 다른 정신건강 문제나 사회·환경적 위험 요인으로 환원되지 않는 독립된 질환 실체인가라는 질문이다. 독립 질환 실체성이 충분히 지지되지 않는다면, 이후의 측정, 인과, 경과, 임상적 유용성에 관한 논의는 ‘무엇을 진단하는가’ 자체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Kardefelt-Winther, 2014; Hygen et al., 2020).

공통 원인 통제 후 추가 설명력

심각한 기능손상을 보이는 집단의 존재가 독립 진단의 근거로 제시되지만(Saunders et al., 2017; Reed et al., 2022), 이 집단을 공존질환이나 공통 취약성으로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Hygen et al., 2020; Kardefelt-Winther, 2014). 이 쟁점의 경험적 판정은 우울, 불안, ADHD, 충동성, 가족갈등, 학교부적응 등을 함께 포함한 모형에서 게임이용장애 분류가 학업, 대인관계, 수면, 주관적 안녕감에 대해 의미 있는 증분 설명력(ΔR²)을 제공하는지에 달려 있다.

본 논문은 Cohen(1988)의 소효과(small effect) 논의를 참고하여 ΔR²가 .02 내외를 지속적으로 넘는지를 잠정적 참고 기준으로 제안한다. 다만 f² = ΔR²/(1 − R²_full)이므로 같은 ΔR²라도 모형의 설명력에 따라 f²가 달라진다. 이 기준은 독립 질환 여부를 자동 판정하는 절단점이 아니며, 후속 메타분석을 통해 정교화하되 수치 자체보다 효과의 방향성·일관성·재현성·임상적 의미를 중시해야 한다. 이는 독립 질환 범주의 정당성에 높은 장벽이 아니라 최소한의 문턱을 제시한 것으로, 이 수준의 추가 설명력조차 안정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면 독립 질환 실체 조건의 충족 여부를 추가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신경생물학적 수렴성 및 판별 타당성

질병코드화를 지지하는 논거는 게임이용장애가 도박장애나 물질사용장애와 일부 심리·신경생물학적 기제를 공유한다는 점을 강조한다(Brand et al., 2019). 국내 임상표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IGD와 알코올사용장애 집단이 일부 휴지상태 뇌영상 특징을 공유하고, IGD 집단을 구분하는 후보 신경생물학적 특징이 보고되었다(Kim et al., 2015). 그러나 국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뇌 연결성 연구는 IGD 관련 기능적 연결성 차이를 보고하면서도, 이러한 소견이 장시간 게임 경험에 따른 훈련 효과, 기존의 위험 소인 또는 정신과적 공존질환과 관련될 가능성을 함께 제시하였다(Han et al., 2017). 또한 보상 민감성이나 억제 통제와 같은 특징이 게임이용장애에 고유하지 않고 일반적 정서조절 곤란이나 충동성으로 설명될 가능성도 제기된다(Aarseth et al., 2017; Starcevic, 2017; van Rooij et al., 2018). 따라서 핵심 질문은 고유한 단일 생물학적 표지자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관련 소견이 공존질환과 일반적 취약성을 통제한 뒤에도 독립된 판별 정보를 일관되게 제공하는가이다.

측정 타당성 조건

독립 질환 실체 가능성이 일부 인정되더라도, 현재의 진단 기준과 척도가 그 실체를 안정적으로 포착하고 있는지를 추가로 검토해야 한다. 이 조건은 세 측면에서 평가된다. 첫째, DSM-5 IGD, ICD-11 GD, 자기보고 척도 및 구조화 면담 사이의 진단 일치도이다(Jo et al., 2019; King et al., 2020; Yen et al., 2023). 둘째, 검사-재검사 신뢰도이다. 셋째, 양성예측도이다(King et al., 2020; Yen et al., 2023). 국내에서도 DSM-5 기준에 기초한 한국판 인터넷 게임장애 척도의 타당화 연구가 이루어진 바 있으나(조성훈, 권정혜, 2017), 개별 척도의 타당화와 서로 다른 진단체계 간 분류 일치도는 구분하여 평가할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보고된 유병률의 큰 변동성과 도구 간 불일치는 이 조건을 중요하게 만든다(Darvesh et al., 2020; Kim et al., 2022; Stevens et al., 2021).

참고로 표 2에서 제안한 κ > .60은 Landis와 Koch(1977)의 일치도 해석 기준에서 ‘중등도 합의(moderate agreement)’와 ‘상당한 합의(substantial agreement)’의 경계에 해당한다. 독립 질환 범주라면 적어도 ‘상당한 합의’ 수준의 진단 일치도는 확보해야 한다는 요구이므로, 이 기준 역시 잠정적 참고 기준으로 볼 수 있다.

인과관계 조건

세 번째 조건은 게임 이용이 기능손상의 원인인가, 아니면 이미 존재하는 심리적·환경적 취약성의 결과인가이다. 아동·청소년 추적 연구에서 인터넷게임장애(IGD) 증상 수와 다른 정신건강 증상 수는 정적 상관을 보였으나, 같은 사람에게서 한쪽 증상이 증가한 뒤 다른 쪽도 증가하는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개인의 안정적인 특성이나 환경이 두 문제에 함께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Hygen et al., 2020). 국내 청소년 968명의 4년 패널자료에서는 부모의 과도한 간섭과 낮은 부모-자녀 의사소통이 학업스트레스와 관련되고, 학업스트레스와 자기통제를 거쳐 병리적 게임 이용으로 연결되는 종단적 경로가 관찰되었다. 특히 자기통제는 게임 이용시간보다 병리적 게임 이용과 더 강하게 관련되었다(Jeong et al., 2019). 이러한 결과는 게임 행동만을 독립적인 원인으로 가정하기보다 발달적·관계적·심리사회적 선행요인을 함께 비교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최소 3시점 이상의 종단자료와 교차지연 패널모형 등 시간적 선후를 검토할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 인과성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질병코드화가 먼저 제도화되면, 개입이 게임 이용의 배경에 있는 문제를 다루기보다 이용시간을 줄이거나 게임을 제한하는 데 치우칠 수 있다(Kardefelt-Winther, 2014).

질환 경과 조건

네 번째 조건은 게임이용장애가 일정한 지속성을 보이는 질환 경과를 가지는가이다. 청소년기는 또래관계와 자기개념 및 정체성 형성 등 발달적·맥락적 영향이 두드러지는 시기이며(Steinberg & Morris, 2001), 이 시기에 나타나는 특정 행동에 대한 높은 몰입이 모두 지속적인 장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Coyne et al., 2020). 따라서 대표성 있는 표본을 장기 추적했을 때 초기 고위험군의 상당수가 자연스럽게 호전된다면, 이를 만성적 독립 질환 범주로 이해하는 것은 과도할 수 있다. 실제 장기 종단자료에서는 낮은 증상 수준을 유지하는 집단과 증상이 지속되거나 증가하는 집단이 함께 관찰된다(Coyne et al., 2020). 여기서 3-5년은 연구의 추적기간이며, 진단에 필요한 최소 지속기간을 뜻하지 않는다.

임상적 유용성 조건

다섯 번째 조건은 게임 관련 어려움에 치료가 필요한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용장애를 독립된 질병코드로 운영하는 것이 기존의 증상 또는 공존질환 중심 접근에 비해 추가적인 회복 이득을 제공하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게임 특화 개입의 효과와 독립 질병코드 운영의 추가 이득은 구분하여 평가한다.

행동활성화 접근(behavioral activation approach)은 본래 우울 치료에서 발전했지만,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의 임상적 유용성을 평가할 때 회복을 특정 행동의 감소가 아니라 삶의 기능과 의미 있는 활동의 회복으로 판단하는 관점을 제공한다(Jacobson et al., 2001; Dimidjian et al., 2011). 이 관점에서 회복은 개인이 삶 속에서 의미 있는 강화, 성취감, 즐거움 및 관계 경험에 다시 접촉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게임이용장애 개입의 효과를 평가할 때도 게임 이용시간 감소나 증상 점수 하락만을 주요 성과로 삼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만약 게임을 줄였지만 삶의 만족, 자기효능감, 정서조절, 대인관계, 학업·직업 기능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이는 임상적으로 성공한 개입이라 보기 어렵다. 반대로 게임 이용이 일정 수준 유지되더라도 삶의 활성화와 기능 회복이 동반된다면, 이를 단순히 치료 실패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점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게임을 줄일 수 있는가’가 아니라 ‘게임을 포함한 삶 전체의 기능과 만족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가’를 검증해야 함을 시사한다.

사회적 비용·편익 조건

마지막 조건은 앞선 다섯 조건의 검토에 더하여, 질병코드화가 사회 전체에 가져오는 비용과 편익의 균형을 따지는 규범적 조건이다. 진단명은 단순히 기존 현상을 분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Hacking, 1995, 1999). 진단을 받은 개인은 그 분류의 언어를 통해 자신의 행동과 정체성을 재구성한다. ‘게임이용장애’라는 명칭이 제도적으로 정착될 경우, 게임을 통한 스트레스 대처, 또래 연결, 성취 경험은 ‘조절 실패의 증상’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수정 낙인 이론은 진단과 관련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이 개인의 적응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제시한다(Link et al., 1989). 다만 게임 문제를 중독으로 설명한 실험에서는 공적 낙인에 미친 영향이 미미했고, 비난과 책임 귀인은 오히려 낮아졌다(Galanis et al., 2023). 따라서 질병코드화가 자기낙인과 실제 적응에 미치는 영향은 별도로 검증해야 한다. 특히 한국적 맥락에서 게임이 또래 상호작용, 자기효능감, 성취 경험의 장으로 기능해 왔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한국콘텐츠진흥원, 2024; 유창석 등, 2021). 삶의 만족이 낮은 일부 집단에게 게임이 주요한 통제감의 원천으로 작동한다면, 질병코드화는 고통을 겪는 소수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과 동시에 정상 범위의 보상적 게임 이용까지 잠재적 병리로 규정함으로써 회복 경로를 좁히는 효과를 함께 가질 수 있다(안재경, 2023).

위계적 의사결정 규칙과 의사결정 나무

이상에서 제안한 여섯 조건은 원칙적으로 위계적 의사결정 규칙으로 작동한다. 첫째, 독립 질환 실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독립 진단을 유지하기보다 하위 특성(specifier)이나 위험요인으로 재분류하는 편이 타당하다. 둘째, 독립 질환 실체성이 일정 부분 인정되더라도 측정 타당성, 인과관계, 질환 경과 조건 가운데 두 개 이상에서 미충족 판정이 반복되면, 진단은 잠정 범주 수준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다만 조건 2∼4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임상적 유용성이 높게 확인되더라도, 이는 독립 질병코드의 지위를 확정하는 근거라기보다 잠정 범주를 유지하면서 추가 증거를 축적할 근거로 해석한다. 어려움을 겪는 개인에 대한 지원은 이러한 분류 판단과 별도로 제공할 수 있다. 셋째, 조건 1∼4가 비교적 충족되더라도 임상적 유용성이 지지되지 않으면 서비스는 심리사회적 개입 중심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넷째, 앞선 다섯 조건이 상당 부분 충족되더라도 사회적 비용이 편익을 반복적으로 상회하면, 질병코드화의 정책적 사용 범위는 엄격한 임상 조건에 국한되어야 한다. 이 위계적 판단 구조를 시각적으로 통합한 것이 그림 1의 의사결정 나무다.

그림 1.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 의사결정 나무

주. 본 의사결정 나무는 질병코드 범주의 정당성을 평가하는 분류정책 수준의 틀이며, 어려움을 겪는 개인의 치료 필요성을 판단하는 임상 알고리즘이 아니다. 조건 2∼4가 불확실하더라도 필요한 임상적 지원은 제공할 수 있으나, 그 필요성만으로 독립 질병코드의 유지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연구가 부족하거나 결과가 불확실한 경우에는 판정을 유보하며, 이를 미충족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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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및 논의

본 논문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 논의를 기존의 찬반 구도에서 반증가능성에 기반한 판단 규칙의 문제로 전환하였다. 본 논문의 핵심은 게임 관련 문제의 존재나 치료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필요성과 게임이용장애를 독립된 질병코드로 규정하는 판단을 구분하는 데 있다. 본 논문에서 검토한 문헌을 여섯 가지 판단 조건에 비추어 살펴본 결과, 현 단계에서 게임이용장애를 독립된 질환 범주로 코드화할 근거와 그 실천적 이득은 아직 충분히 안정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이러한 평가는 확정적 결론이라기보다, 향후 어떤 증거가 보강되어야 하며 어떤 조건에서 기존 분류를 수정해야 하는지를 드러내는 잠정적 판단이다.

해킹의 루핑 효과(Hacking, 1995, 1999)가 시사하듯, 진단명은 단순히 기존 현상을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의 자기이해와 행동을 재구성한다. 수정 낙인 이론(modified labeling theory)은 진단명이 자기범주화와 자기낙인을 강화하고 회복 기대를 낮춤으로써 실제 적응 행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제시한다(Link et al., 1989).

실천적 측면에서 본 논문의 의사결정 나무는 세 가지 수준에서 활용될 수 있다. 첫째, KCD 개정이나 국내 진단체계 검토 과정에서 명시적 판단 규칙의 기준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 둘째, 연구자들에게 어떤 자료를 축적해야 논쟁이 실제로 진전되는지를 분명히 제시한다. 셋째, 분류정책과 개별 임상지원의 판단 수준을 구분함으로써, 질병코드의 타당성이 불확실한 경우에도 필요한 지원은 제공하되 이를 독립 질병 범주의 정당성으로 과도하게 일반화하지 않도록 한다. 특히 일부 개인에게 게임이 중요한 성취감과 통제감의 자원으로 기능한다면(Kardefelt-Winther, 2014; Ryan & Deci, 2000, 2017), ‘게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포함한 삶의 구조를 어떻게 더 건강하게 재조정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개입을 설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본 논문에서 제안한 틀은 잠정적 성격을 지닌다. 각 조건의 임계값은 개념적·규범적 기준일 뿐, 메타분석을 통해 확정된 수치가 아니다. 또한 사회적 비용·편익 조건은 시계열 자료, 질적 연구, 국가 간 비교를 결합해야 비로소 정교하게 평가할 수 있다. 향후에는 독립 질환 실체성과 인과성을 검토하기 위한 대규모 종단 연구(Zhuang et al., 2023; 한국콘텐츠진흥원, 2025), 동일 표본에 다중 기준을 적용하는 측정 연구(Jo et al., 2019; Yen et al., 2023), 게임 특화 개입과 일반 심리서비스의 장기 비교 연구(King et al., 2017), 그리고 질병코드화 이후 낙인과 자원 배분 변화를 추적하는 연구(Galanis et al., 2023)가 필요하다.

본 논문이 제안한 의사결정 나무와 여섯 가지 판단 조건은 향후 게임이용자 패널 종단연구를 설계하는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다. 분류 논쟁의 실증적 진전을 위해서는 어떤 변수를 측정하고 어떤 분석 구조를 확보해야 하는지가 연구 설계 단계에서 명료하게 특정되어야 하는데, 앞서 제시한 판단 조건은 이러한 연구 설계를 구체화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독립 질환 실체성 조건(조건 1)을 향후 패널 연구에서 검토하려면 우울·불안·가족갈등 등 공통 취약성 변수를 기본 측정 항목에 포함하고, 이를 통제한 뒤 증분 설명력을 추정할 수 있도록 연구를 설계해야 한다. 인과관계 조건(조건 3)을 검토하려면 동일 구성 개념을 복수 시점에서 반복 측정하는 패널 설계를 전제해야 교차지연 패널 모형(CLPM)을 통한 방향성 검증이 가능해진다. 질환 경과 조건(조건 4)과 관련해서는, 기존 5개년 패널 자료가 과몰입 집단의 2년 이상 지속 사례를 아동·청소년과 성인 모두에서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이 하나의 선행 참조 자료가 되며(한국콘텐츠진흥원, 2025), 이는 해당 패널에서 정의한 과몰입군의 분류 지속성에 관한 결과이며, 임상적으로 진단된 게임이용장애의 지속 여부와는 구분된다.

본 논문의 논의는 게임이용장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AI 과의존, 숏폼 미디어 과사용 등 새로운 행동 양식이 잇따라 병리화의 후보로 떠오르는 상황에서는, 사회적 불안이 높아질수록 질병코드화의 근거를 더 꼼꼼하고 엄격하게 검토하는 절차적 신중함이 요구된다.

심리학계는 개인의 심리적 건강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정신건강 담론을 형성하는 학문 공동체로서, 새로운 행동 양식을 둘러싼 병리화 논쟁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전개될 수 있도록 공론장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본 논문이 제안한 의사결정 나무가 그러한 참여의 방법론적 토대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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