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738-3188
이 글은 저자가 개념화하는 ‘에로방화’가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에로방화’로 호명되고 있는 영화들은 어떤 다양한 결을 지니고 있는지를 확인하며, 그 결과로서 ‘에로방화’라는 용어가 1980년대 한국영화의 위치를 재구축하는 데에 얼마나 유용한 개념인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1980년대 한국영화에 대한 지배적인 인상 중 하나는 그 시대가 <애마부인>으로 대표되는 에로영화의 시대였다는 것이다. <애마부인>이 환기하는 것은 단순히 에로영화라는 장르뿐 아니라 그 시대의 영화나 영화문화 그 자체에 대한 인상이다. 시민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폭압으로 시작된 신군부 정권의 시대, 아무리 유화 국면이 있었다고는 하나 강압과 위압, 폭력의 트라우마가 도사리는 시대였고, 컬러TV의 대대적인 가정 보급이 이뤄지는 가운데 사상 최악의 불황을 맞이했던 한국영화는 소극장과 비디오 대여점을 통해 그 목숨을 연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작되고 상영되던 한국영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옹색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런 연유로 이 시기를 지배하던 에로영화는 흔히 3S 정책의 산물인 것처럼 취급되어 왔다. 이윤종의 저서 『에로방화의 은밀한 매력: 1980년대 한국 대중영화의 진보적 양면성』은 1980년대 한국영화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이고 단순한 이해에 균열을 내고 1980년대에 생산된 상업영화들, 특히 ‘에로방화’로 부를 수 있는 당시 극장 상영용 에로영화들의 위치를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는 진보적 가치를 지닌 텍스트로 재구축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본 연구에서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전면에 내세운 1980년대의 대표적인 에로방화인 <애마부인>과 <무릎과 무릎사이>를 저자가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 리뷰한다. 두 영화는 주인공 여성의 성적 욕망과 그 해소의 과정이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매우 사회적인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80년대의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그들의 성적 모험은 ‘당연히’ 좌절되거나 실패한다. 그러나 이미지적으로는 적어도 마지막 장면에서 이 두 주인공의 모험이 또 다른 시작을 암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러한 진보성과 퇴행성의 교차가 바로 저자가 주장하는 에로방화의 전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애마부인>으로 시작되는 에로방화가 198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대중문화의 대대적인 시각적 전환처럼, 한국에서도 ‘영상적 전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종의 스펙터클영화의 계보를 미력하나마 시작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었는데, 이는 1980년대의 한국영화들에 대한 더 많은 연구의 필요성을 도출하는 이 책의 최대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