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팬데믹 이후 한국문학에서 부동산 서사들의 이면에 오컬트 자본주의라는 현상이 깔려있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지칭하는 ‘부동산 소설’은 단순히 주택의 투기적 보유와 매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서사에 국한되지 않으며, 가상화폐 투기를 비롯한 다양한 자산화 실천 전반을 포괄한다. 본고는 부동산 소설에서 투기적 감각을 체화한 인물들을 통해 타자에 대한 정동과 윤리를 포괄한 인식의 변화를 두루 살피고자 했다. 팬데믹 이후 부동산 소설 속 인물들은 노동을 통한 자본의 축적을 포기하고, 오컬트적이라 할 수 있는 여러 미신적 믿음과 자산화를 통해 투기에 뛰어든다. 전근대적 도박자는 추상화된 금융자본주의 현실에 자구적 대응책을 찾는 새로운 주체의 형상이다. 경제적 박탈감과 불확실한 생존 조건은 이웃에 대한 윤리의 재편으로도 이어진다. 중산층에 대한 자기 동일시가 유지되는 가운데, 박탈감과 능력주의가 만나 이웃에 대한 증오와 적대는 내면에서 격렬하게 촉발된다. 이와 같은 폭력성은 신체로 소급해 들어와, 궁극에는 자기 신체의 훼손이나 죽음마저 자산화의 회로에 편입시키는 ‘고어 부동산’을 탄생시켰다. 이렇게 자본 증식의 불가해한 메커니즘이 신체의 물질성을 지우며 추상화하거나 자산화하는 ‘차가운 폭력성’으로 이어지는 방식이야말로 한국형 오컬트 자본주의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은 금융자본주의 하의 신체들이 점점 추상화되고, 체제의 폭력 역시 신체에 내면화된 감각 속에서 더욱 치밀하게 작동하는 방식을 살폈다. 이를 통해 모든 것이 자산화의 논리 속에 포섭되며, 신체와 생명을 둘러싼 감각과 윤리의 지형이 재편되는 양상에 비판적으로 개입하고자 했다.
본 논문은 1990년대 텔레비전 드라마의 아파트 재현을 통해 주거 환경의 변화와 당대 사회의 욕망을 두루 살펴보고자 한다. 1990년대 이후 부동산 불패의 신화는 한국인들이 ‘내 집 마련’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데 기여했으며 이에 따라 한국인의 생애주기를 설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또한 아파트는 부동산을 향한 한국의 사회적 욕망이 응축된 ‘상품’으로 주거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면서 현대적 삶의 양태를 형성해왔다. 본고는 이 점에 주목하여 1990년대를 전후한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가 부동산과 대단지 아파트를 재현하는 ‘경관’에 집중했다. 위계화된 대단지 아파트는 부동산과 재개발을 둘러싼 동시대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은 입주민들과 동일한 눈높이에서 대단지 아파트 안에서의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한다는 착시를 경험하며 중산층에 대한 욕망을 내면화할 수 있었다. 한편 단지라는 경계는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혼재되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함축적으로 제시한다. 주거 공간의 재편성을 통해 의도적으로 구획된 대단지 아파트는 한국 사회의 관습변화를 실험하는 공간으로 공동체와 주거에 대한 인식 변화를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을 재구성해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파트는 공적 통제의 핵심으로 기능할 수 있었으며 시청자들이 질서와 통제를 내면화하는 유용한 경로를 제공해왔다. 아파트의 대중적 보급은 유년기부터 자기만의 방을 소유한 경험은 이후 청년들의 개별화된 기억과 문화적 취향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주목을 요한다. 2000년대 이후 청년세대가 원룸과 1인 가구로 대표되는 집과 가족에 대한 파편적 감각을 키워가며 새로운 문화적 맥락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아파트를 둘러싼 논의는 공시적・통시적 고찰을 요하고 있다.
본고는 대중문화 속 아파트의 표상을 여성 범죄라는 측면과 관련지어 논의한다. 이때 여성 범죄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비롯해 여성이 주도하는 범죄 모두를 아우른다. 이 과정에서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통시적인 관점에서 아파트를 둘러싼 여성 범죄의 문화사회학을 고찰한다. 앞으로 아파트와 ‘자유’라는 모럴이 여성 대상 혹은 주도 범죄와 어떻게 결부되는지 통시적으로 살펴보며, 아파트를 둘러싼 여성의 범죄가 당대의 어떤 욕망을 보여주는지를 파악할 것이다. 논의 대상은 아파트로의 이동과 금기시되는 관계를 통한 성적 해방을 다룬 <애마부인>(1982)과 <적도의 꽃>(1983), 젠더 폭력의 피해자였던 여성들의 저항을 극화한 <개 같은 날의 오후>(1995), 계층 이동과 엄마들의 교육열을 극화한 <강남 엄마 따라잡기>(2007) 그리고 부동산을 둘러싼 여성 범죄를 다룬 <위대한 방옥숙>(2019-20), <부동산이 없는 자에게 치명적인>(2024) 등이다. 텍스트 분석 과정에서 아파트에 사는 인물들이 갈구하는 자유의 형태를 성적 자유와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경제적 자유라는 측면과 관련지어 논하며 이 과정에서 여성의 범죄가 어떤 식으로 형상화되는지를 살핀다. 앞으로 텍스트가 발표된 시기와 조응하여 여성 혐오라는 측면에서 이 작품들이 가부장제, 자본주의 질서 등 주류 담론에 편승하는 동시에 이를 해체하고 있는지를 파악해간다. 이는 아파트라는 동시대 자본주의의 표상을 배경으로 투자와 투기, 범죄 가해자이자 피해자의 경계에 놓여있는 여성 캐릭터의 불안이 보여주는 시대의 불안을 읽는 작업과 연결될 것이다.
본 논문은 1990년대 한국 여성종합잡지에 수록된 ‘내 집 마련’ 수기와 사례기사들을 분석하여, 주택 금융화 초기 단계에서 여성 금융주체가 어떠한 서사적 경로를 통해 구성되었는지를 분석한다. 여성지는 단순한 경제 정보 제공 매체를 넘어, 독자들에게 금융적 윤리와 성별화된 실천을 학습시키는 일상적 금융문화의 매개장치로 기능하였다. 이 과정에서 ‘내 집 마련’을 향한 여성의 욕망은 가정주부적 책무와 긴밀히 결합되며 승인되었고, 주거 불안을 야기하는 구조적 조건들은 ‘나쁜 집주인과 고통받는 세입자’라는 개인화된 피해 서사로 전환되어 은폐된다. 절약과 대출을 통한 주택 구입 실천은 가족 부양을 담당하는 여성의 도덕적 책무로 정당화되며, 독자들은 이를 통해 금융적 책임성과 성별화된 자기규율을 점진적으로 내면화하게 된다. 1990년대 주택보급 확대와 금융자율화 흐름 속에서 여성들은 주택매매를 경유하여 금융화 과정에 적극적으로 진입하였으며, 이로써 가정이라는 사적영역이 금융시장에 제도적・문화적으로 접속되는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의 여성화 과정에서 여성들이 일상생활과 가계경제 차원에서 금융시장에 통합되는 구체적 양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여성의 금융 실천은 2004년 주택금융공사 설립을 통해 본격화된 국가 주도의 주택금융화에 앞서, 이미 가계경제의 윤리로서 상징적 실천과 일상 담론 속에 내면화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서사적 재구성을 분석함으로써 한국 주택 금융화의 성별화된 경로와 여성 금융주체 형성의 동학을 규명한다.
군정법령 제88호를 가동한 『야담과 실화』 폐간 조치는 1950년대 후반 대중지 검열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돌발적이거나 예외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미 그 이전에도 『실화』, 『흥미』와 같은 잡지가 판금과 정간 조치를 받았으며, 『청춘』, 『부부』, 『야화』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수의 대중지들이 풍기문란죄를 근거로 검열과 통제의 대상이 되어왔다. 대중지의 확산과 국가 검열은 1950년대 내내 병존하는 현실이었음을 환기하면서, 이 글은 필화 사건의 명명이 주류 언론매체뿐 아니라 대중지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되짚고자 했다. 『야담과 실화』 필화 사건을 틀 짓는 실화와 야담, 이 두 하위 장르의 선정성 논란은 2장과 3장의 주요 논점이었다. 두 장르명을 함께 내건 『야담과 실화』에 대한 가혹한 조치는 <서울 처녀 60%는 이미 상실?>이라는 발매도 전에 몰수를 불러온, 이른바 “한국판 킨제이보고서”를 둘러싼 힘의 충돌과 검열의 역학을 가시화했다. 잡지사도 예상치 못했던 파국적 전개는 남녀 성생활에 대한 과학적 통계라는 ‘트루 스토리’의 주장을 ‘허실(虛實) 조작’으로 일축해 버린 국가 검열 권력의 일방적 승리로 귀결되었지만, 이 틈새에서 성적 경제의 가십성 폭로 실화가 번성했음을 2장은 드러내 주었다. 3장에서는 실화 못지않게 야담 또한 에로+(패륜, 범죄, 여체, 기괴····)의 다양한 재조합 기술을 통해 ‘제2 전성기’를 견인했음을 중고 신인 작가 최종선의 야담을 중심으로 살폈다. 대중지에 특화된 이 야담가들의 약진은 1950년대 시대상을 비추는 또 하나의 단면이자 풍경으로 기억될 가치가 있음을 제언하면서, 이 글은 1960년대에도 외설과 정화의 명목 아래 대중지가 여전히 허용과 금기/검열의 임계선에 놓였음을 부연하는 것으로 4장의 결론을 갈음하였다.
<인 타임>은 화폐를 대신하여 시간이 모든 경제활동의 수단이 되는 사회를 묘사한다. 불멸의 시간을 소유하여 유한계급으로 살아가는 초부유층과 하루의 노동으로 하루를 생존해 내야 하는 극빈층을 대조한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는 이 두 계급 인물들의 상이한 ‘신체 움직임 속도와 신체 반응 양식’을 보여주며 이를 반복적으로 질문한다. <리플리>와 <기생충>의 인물들도 신체 행위를 통해 경제 격차를 드러낸다. 본 논문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경제체제를 신체 움직임과 연결하고 이러한 몸의 기호가 현대 사회의 계급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보면서 이를 규명하고자 한다. 영화 인물들의 ‘뛰는 행위와 뛰지 않는 행위’, ‘과장됨과 무심함의 반응 양식’은 경제 수준을 반영하는 표식이 된다. 본 논문은 이러한 신체 반응이 의식적인 판단이나 계산된 행위의 결과라기보다, 오랜 습관을 통해 몸에 새겨진 상태로, 무의식적 차원에서 즉각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에서 이를 ‘하비투스’로 개념화한다. 특히, 뛰지 않고 무심한 부자 계층의 행위 양식을 르네상스 시대 궁정인의 덕목 ‘스프레차투라’에 연결함으로써 하비투스 연구를 확장한다. 경제자본이 전환된 문화자본, 이를 드러내는 하비투스가 ‘무의식적 층위에서 발현되는 집단적인 도식’이라는 점은 ‘정동’과도 공명한다. 차별적인 신체 움직임은 빈자와 부자 계급의 ‘감정구조’를 표현해 내는 것이다. 이에, 본 논문은 체화되고 전이되는 하비투스가 집단 간 ‘구별짓기’를 통해 현대의 ‘강화된 계급사회’를 드러냄을 밝히고자 한다. 현대 사회의 경제 계급, 신체 움직임의 하비투스, 스프레차투라, 정동을 아우르는 본 연구는 상이한 집단의 미시적 신체 행위가 현대 사회의 계급 문제를 드러낸다는 점을 확인하여 이를 통해 총체적 사회 구조에 대한 통찰을 가능하게 한다. 또, 이 연구는 하비투스 이론의 외연을 확장하는 동시에, 몸과 사회의 상호 작용에 주목하는 최근의 연구 경향과도 이론적・실천적 접점을 형성한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본 논문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출간된 “큐큐퀴어단편선” 시리즈를 중심으로, 2010년대 중후반 이후 한국문학에 나타난 레즈비언 서사의 변화를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통해 레즈비언 정체성이라는 ‘특수성’이 퀴어 일반으로 확장되면서 희석될 가능성을 비판적으로 주목하고, 나아가 경계 위에 선 주체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발표된 레즈비언 서사는 주로 남성적 폭력과 가부장제의 피해자로서, 여성들 간의 연대에 초점을 맞춘 경향이 강했다. 반면 최근의 서사들은 일상적 감정, 돌봄, 공동체적 삶의 층위에서 ‘퀴어’ 정체성을 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으로 확장하고 있다. 아울러 레즈비언 정체성이 젠더・계급・인종・장애 등과 교차하며, 유동적인 사회 관계망 속에서 감정・연대・공동체를 통해 재구성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분석을 통해 본 논문은 2010년대 중후반 이후 한국문학에 나타난 레즈비언 서사의 확장 양상과 그 가능성을 조망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이 젠더 정치학의 지형을 보다 다층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해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본 연구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를 패러디한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 시즌1>을 분석하여 패러디와 복선의 양상을 밝히고자 한다. <템페스트>는 여러 형태로 재창작되어 왔으며, 작품에서 드러나는 창조적 변용은 시대와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다. 현 시대는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인간과 기계가 혼성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AI 기술의 발달로 인간처럼 상호작용 가능한 AI 비서가 등장하였으며, 로봇 기술의 발달로 사람처럼 걷고 장애물을 넘는 로봇이 등장하였다. <템페스트>의 로봇 애니메이션으로의 창조적 변용인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는 이러한 시대적 특성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의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본 연구에서는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에서 드러난 <템페스트>의 패러디 양상과 그 과정에서 드러난 복선의 구성에 대해 분석한다. 개념적 혼성 이론은 패러디에서 드러난 상호텍스트성이 문학 작품에서 작용하는 방식에 적용하여 분석될 수 있다. <템페스트>의 인물들은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에서 그 특성이 다르게 드러난다. <템페스트>에서 중심적으로 드러나는 ‘복수와 화해’의 메시지는 유지되면서, 우주를 배경으로 한 로봇 회사들 간의 암투와 충돌로 재구성된다. 로봇 회사 간의 충돌 양상을 반영하는 본작의 복선은 예상치 못한 형태로 드러나면서 즉발적으로 관객의 인지에 형성된다. 이러한 즉발적 양상을 개념적 혼성 이론으로 설명한다. 본 연구에서는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에서 드러나는 패러디와 복선의 양상을 드러내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고전 희곡과 로봇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질적인 두 텍스트의 상호텍스트성 속에서 나타난 패러디의 양상을 분석하였다. 또한 일반적으로 인간의 인지 구조 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본작에서 즉발적으로 나타난 복선을 개념적 혼성 이론을 통해 설명한 데에 의의가 있다.
이 글의 목적은 로맨스판타지의 대표 작가인 알파타르트의 서사 전략을 인물, 플롯, 웹소설의 세 층위로 나누어 살펴보고, 알파타르트가 젠더 감수성과 대중적 서사 규범을 조율하며 장르의 문법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주인공은 성장 서사를 기반으로, ‘오빠라는 존재를 둔 여동생’이라는 독특한 위치에 서 있다. 그녀는 오빠와 경쟁하며 권력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한다. 태어나면서 권력을 자연스럽게 계승 받는 오빠와 달리 그녀는 독립하기 위해 자기 증명을 해야 한다. 그녀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자기실현적 여성으로 재현되기까지 시련과 경쟁의 서사를 지나 성장한다. 또한 선행기법과 반복 서술을 공통으로 활용한다. 선행기법은 자극적인 사건을 먼저 서술한 후, 이전으로 돌아가 사건의 맥락을 점차 설명하면서 그 사건이 성취될 때까지 독자의 호기심을 지속시키는 기능을 한다. 반복 서술을 통해 독자는 사건의 의미를 처음과 달리 재해석하고, 주인공의 심리 변화에 공감하는 효과를 얻는다. 일러스트는 웹소설을 ‘보게 하는’ 큰 역할을 한다. 작품의 분위기와 캐릭터를 시각적으로 표현해서 독자들의 기대감과 몰입감을 높인다. 알파타르트와 협업하는 치런의 일러스트는 회화적 리얼리즘과 고전주의적 장식을 결합한 화려하고 섬세한 화풍을 특징으로 하며, 이를 통해 로맨스판타지 장르의 미적 기대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여성 중심의 서사 구조를 강조한다. 알파타르트의 서사 전략은 인물의 형상화, 플롯의 서술 구조, 웹소설의 시각적 전략이 긴밀하게 결합하여 로맨스판타지 웹소설의 미학적·장르적 규범을 확장하고, 현대 여성 독자의 욕망과 젠더 감수성을 깊이 있게 반영한다. 이는 단순히 알파타르트가 로맨스판타지의 인기 작가라는 위상을 넘어서, 장르 내부에서 전복과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선도하는 내러티브 기획자로서 자리매김함을 발견한 데 연구 의의가 있다.
한국의 학술장에서 돌봄 담론이 광범위한 논의의 대상으로 부상한 이후, 여성의 가정 내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문화적 인정의 요구는 점차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모성의 돌봄 노동에 대한 경제적 인정의 부재가 명확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사회문화적 인정의 문제에는 다소 모호한 구석이 있다. 대중문화의 담론장에서 돌보는 여성들에 대한 숭배가 얼마든지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맘충’이라는 혐오 표현이 일상적 언어 사이를 활보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모성 숭배와 모성 혐오 현상이 함께 발견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재클린 로즈는 사회가 그 자신의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모성 개념을 적극 활용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교육 문제의 심각성을 모성에게 전가하곤 했다. 한국에서 모성 주체는 그 자신이 이미 살인적 경쟁 교육에 휘말린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교육제도의 여러 폐해가 떠넘겨지는 문제적 이미지로 전유된다. 개그우먼 이수지의 ‘제이미맘’ 캐릭터와 박서련 소설〈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의 ‘당신’이 여기에 해당한다. ‘제이미맘’ 캐릭터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들은 자녀의 교육에 집착하는 모성 이미지에 대한 혐오 수행이 끝내 모성 신화를 강화하는 과정의 전모를 보여준다. 한편 박서련의 소설은 온라인 게임상에서 ‘엄마’가 욕으로 사용되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런 식의 혐오 발화가 가능해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 주체에게 ‘엄마’가 가장 숭고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숭배는 혐오의 원인이다. 본 논문은 숭배와 혐오가 결국 모성을 타자화하는 태도라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동일한 것일 뿐만 아니라, 숭배/혐오가 긴밀한 인과론적 순환 속에서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숭배와 혐오가 순환하는 매커니즘은 이미 한껏 왜곡되어 있는 상징적 장 안에서의 문화적 인정이 만만치 않은 문제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본고는 우리 사회의 모성 개념이 갇혀 있는 숭배/혐오의 사이클을 규명함으로써 모성에 대한 학술적 탐구가 여전히 시급한 문제임을 상기시킨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 글은 2000~2010년대 K-pop 아이돌 노래 가사에서 나타나는 친족 호칭어에 주목하여, 곡 내에서의 친족 호칭어 사용이 가수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수용자의 향유 방식을 결정하는 양상을 살피고자 한다. 특히 이는 아이돌과 팬덤 사이의 특정한 관계 맺기 양상과 깊게 관련되는바, 빈번히 사용되는 친족 호칭어인 ‘오빠’와 ‘누나’를 두 축으로 하여 K-pop 장을 들여다보는 데에 목표를 둔다. 소녀시대는 ‘오빠’를 다분히 성애적인 뉘앙스로 호명한다. 이에 호응하여 소녀시대에 열광하는 남성 대중은 소녀의 애정을 받아주지 않는 곡 내부의 ‘오빠’가 아닌, ‘삼촌’이라는 (유사) 가족의 표상을 통해 은밀한 방식으로 소녀시대의 섹슈얼리티를 소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소녀시대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계승하여 ‘국민 여동생’이라는 표상을 내세웠던 아이유는 201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소녀-국민 여동생의 자리에서 빠져나와 성인 여성-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한다. 한편 ‘오빠-소녀(팬)’의 구도를 적극 활용한 god와 슈퍼주니어의 사례는 1, 2세대 남성 아이돌의 ‘오빠’ 자칭 전략이 팬들에게 문제없이 수용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3세대 아이돌에 해당하는 방탄소년단은 페미니즘 리부트를 기점으로 ‘오빠-소녀(팬)’라는 젠더 위계에 대한 재사유를 요청받는다. 그런가 하면 샤이니와 틴탑은 ‘오빠-소녀(팬)’의 구도를 역전시켜 ‘누나’를 호명하는 연하남의 이미지를 내세웠다. 이때 틴탑과는 다르게 성애적 욕망이 탈색된 ‘누나’의 표상을 제시한 샤이니는 성공적으로 ‘누나’ 팬덤을 구축할 수 있었다. 오늘날 K-pop에서 ‘오빠’나 ‘누나’와 같은 친족 호칭어의 직접적인 사용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 자리는 이제 아이돌의 ‘어머니’를 자임하는 양육형 팬덤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수동적인 수용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요구하고 나선다. K-pop 장에서 친족 호칭어에 기반한 이성애적 관계 짓기 양상이 줄어든 것은 이들의 등장과 맞물려 있다.
본 연구는 한국 웹소설에 활용된 시스템 모티프를 도식화된 서사 구조로서 바라보고, 시스템 모티프를 활용한 웹소설의 서사적 특징을 분석한다. 대중서사체로 나타나는 웹소설은 대중의 욕망을 반영한 모티프와 도식화된 서사 구조를 가진다. 특히 ‘회귀, 빙의, 환생’이 웹소설의 마스터 모티프로 나타나는 것은 대중의 욕망만이 아닌, 경쟁사회에 지친 독자들이 도식화된 이야기 소비를 통해 피로를 해소하고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자 하는 문화적인 요소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회귀, 빙의, 환생’의 모티프와 더불어 함께 사용되는 ‘시스템 모티프’를 분석하여 웹소설에 나타나는 서사적 특징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텍스트에 함의된 문화적 요소를 확인한다. 게임 시스템을 재매개한 웹소설의 시스템 모티프는 주인공이 상태창에 표기된 텍스트를 바탕으로 이야기 세계를 분석하고 상호작용함으로써 메타데이터로서 기능한다. 또한 시스템 창을 통해 부여되는 퀘스트를 통해 주인공의 목표, 보상 패널티를 명시함으로써 이야기 전개의 동력원이 되고, 주인공의 행위에 대한 합목적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시스템 모티프는 대상을 디지털화 함으로써 관계를 물질화한다. 또한 시스템 본연의 특징인 재귀성으로 인해 주인공은 시스템 창을 통해 재현된 3차 예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소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태를 제거하고 주인공의 선택에 당위성을 부여함으로써 서사의 우연성을 강조한다. 본 논문은 웹소설에서 나타나는 시스템 모티프를 서사적, 문화적 차원에서 그 특징과 서사적 구조를 분석한 것에 의의가 있다. 시스템 모티프는 단순히 게임화 형식을 재현한 것을 넘어 디지털 사회의 관계와 그에 따른 정체성 경험을 서사로 재현한 장치로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시스템 모티프를 활용한 웹소설은 독자에게 디지털로 물화된 삶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정보화 시대에서 발생하는 피로감을 주인공의 선택으로 제거함으로써 대리만족의 경험을 할 수 있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에서 엄마는 남성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며, 딸은 여성과의 관계를 통해 존재를 확인받고자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열망하는 각각의 이성애적, 동성애적 코드는 계속 튕겨져 나가고 거부된다. 그 거부되는 요인은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제 등으로 묘사되는 관습적인 시스템이다. 여기에서 남성은 시스템에 존재하는 다소 온순한 인물들로 그려진다. 이와는 반대로 사회 시스템에 안정적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여성은 공격적이고 분열적이다. 그리고 두 명의 모녀는 그 시스템에서 거부될 때마다 다시 집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영화는 그들의 좌절되는 욕망과 관계에 집중하면서 모성에 대한 문제, 어머니의 세계, 그리고 여성들의 관계를 보여준다. 영화는 남근적 사회에 대한 여성의 권력 대체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수경과 이정의 애증적 감정의 바탕에 어머니와의 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주인공들이 회귀하는 곳이 모녀관계라는 점에 있어서 영화는 남성과의 관계가 아닌 여성들 간의 관계에 주목한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그리고 이것은 서사의 지배담론에서 변방이었던 어머니의 세계를 중심으로 위치시킨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젠더를 이야기하기 위해 남근적 세계와 그 세계의 억압을 보여주는 것에 주력한다기 보다, 젖가슴으로 상징화되는 어머니 세계에서의 갈등과 양가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서사는 확장된다. 본 연구에서는 어린 아이를 중심으로 정신분석 연구를 하였던 멜라니 클라인과 클라인에 주목하였던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살펴본다. 이러한 이론적 근거들은 영화에서의 여성과 모성재현에 대해 서술하는 카자 실버만에 이르러 구체성을 띈다. 클라인, 크리스테바, 실버만은 모두 지배적 담론으로 형성되어왔던 남근적 아버지의 세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여성과 어머니의 세계에 대해 분석과 주장을 펼쳐나간다. 실버만은 크리스테바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상징계가 아버지의 세계로서 전유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세계가 양가적으로 공존하는 세계임을 이야기하며 ‘부정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negative Oedipus complex)와 ‘동성애적-모성적 환상’(homosexual-maternal fantasmatic)을 제시한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집회 공간의 음향적 실천을 청각 정치학의 관점에서 고찰한다. 이 시기 광장은 소리와 진동을 매개로 참여자들이 정치적 주체로 이행하는 정동적 결속의 장으로 기능했다. 이 연구는 합창, 구호, 함성 같은 음향 요소가 어떻게 정치적 주체화의 조건을 구성했는지 분석한다. 구체적으로 소리의 조직 방식, 정동의 작동 구조, 새로운 주체의 형성 과정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연구의 이론적 토대는 머레이 셰이퍼, 스티브 굿맨, 홀거 슐체, 코두오 에순의 사운드 이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재구성했다. 선행 이론들을 한국의 구체적 맥락에 적용하여 12·3 사태 이후 시위 문화를 분석할 개념적 틀을 제시한다. 분석은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음향전(sonic warfare)’, ‘청각적 배치(auditory assemblage)’, ‘소닉 픽션(sonic fiction)’, ‘소닉 페르소나(sonic persona)’의 다섯 가지 개념을 활용한다. 이 개념들은 집회 공간의 소리 환경이 어떻게 정동적 정치 실천의 조건으로 작동하는지 복합적으로 규명하는 틀을 제공한다. 권력과 시민의 긴장은 다층적인 음향전의 양상을 띠었다. 광장에서 형성된 집합적 울림은 개별 주체를 초월하는 정치적 현존을 구축했다. 참여자의 신체에 각인된 공유 리듬과 진동은 강렬한 연대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 성취는 2016-2017년 촛불 집회와 구별되는 새로운 정동적 참여와 발화 윤리를 창발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국가 권력은 경고 방송과 소음 규제 같은 청각적 배치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 시도했다. 반면 시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와 노래로 대항 배치를 형성하며 그 통제에 맞섰다.
이 글에서는 퀴어와 디지털 인문학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을 살피고 교차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퀴어와 디지털 인문학과의 만남은 종종 데이터화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것, 비가시적이고 비명시적인 것, 그래서 버려지거나 폐기될 가능성이 높은 정보들과 양적 방법론의 결합을 모색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연구적 가치가 있다. 퀴어 DH 연구는 데이터를 정량적, 객관적으로만 판단하려는 통상적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낼 수 있으며 정확성이나 표준성에서 벗어나 의도적으로 불완전하거나 경계에 있는 데이터를 생산함으로써 억압적 환경과 통치 공간을 균열할 수 있는 “도망자적” 데이터를 만들 가능성을 내포한다. 퀴어 DH는, 켄트 K. 창의 주장과 같이, 문화분석(cultural analytics)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퀴어를 개체화하지 않으면서 기억 저장소가 함축하고 있는 구조와 패턴을 발견함으로써 퀴어를 역사화하고 계보화할 수 있는 방법론의 마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 중심의 접근이 아니라 퀴어 문화를 중심에 놓고 계산 가능하며 효과적인 변수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접근을 위해 퀴어에 대한 학문적 탐구와 이론적 자원이 요청된다. 또한 데이터를 보는 관점의 변화 또한 필요하다. 문화 분석에서 데이터는 확정되고 고정된 것이 아니며, 개인과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데이터 역시 지속적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다. 퀴어 문학의 시공간을 탐구하는 일은 특정 사회와 현재적 시점에서 가능한 몸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일이다. 퀴어문학이 담아내는 일상적 시공간성은 저항 운동의 관점에서 사회적 운동감각과 구별된다. 퀴어 주체들은 현재의 억압적 조건들을 체화하면서 움직임의 ‘일상적’ 가능성을 탐구한다. 퀴어 문학에 기입된 ‘눈치보기’는 그 자체로 퀴어 주체의 삶의 궤적이며 이것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며 또 공간의 성격에 따라 가변하는 퀴어 정체성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2010년대 중후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생산된 다양한 퀴어 소설을 대상으로 청소년 퀴어에서 성인 퀴어가 되어가는 과정을 공간성의 변화와 함께 탐색하였다. 퀴어의 몸이 공간 안에 위치할 때 몸과 공간은 상호 변화하며 그것이 데이터로 구조화될 때 퀴어가 창안하는 일상성을 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은 2015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춘희막이>를 한국의 공고한 정상 가족 담론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드러내는 역동적인 텍스트로 분석한다. 영화는 과거 관습적으로 허용되었던 가족실행 방식 중 하나인 ‘씨받이’를 다루고 있다. 이 글은 가족담론의 역사적 맥락과 함께 씨받이라는 존재가 한국의 규범적 가족 서사를 교란해 온 현장에 주목한다. 특히, <춘희막이> 속 두 여성이 맺어 온 관계에 집중하며, 그들이 공통의 신체적 경험을 기반으로 연대하고 있다는 점에 근거해 몸을 매개로 한 타자 인식과 공감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1950년대 이래 축첩제 폐지가 논의되는 법률적 맥락과 더불어 1987년 개봉한 영화 <씨받이>는 씨받이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했다. 전후 한국 사회의 규범 속에서 씨받이는 지양되어야 할 존재로 간주되었으나, 실제 가족 구성의 현장에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춘희막이>가 조명하고 있는 두 여성은 본처와 씨받이의 관계로, 정상 가족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 속에서도 비공식적으로 지속되어 온 혼외관계의 실재를 드러낸다. 영화는 분명히 존재했으나 가시화되지 않았던 가족 구성의 현실을 드러내는 한편 진정한 연대의 조건을 암시한다. 남성 중심의 가족제도 아래 신체적 재생산을 매개로 연결된 두 여성의 삶은, 공통된 몸의 경험에 기반한 연대로 해석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에 등장한 다큐멘터리 텍스트들은 씨받이에 대한 인식과 심상의 변화를 소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춘희막이>가 조명하는 두 여성의 관계는 사적 영역, 즉 한 가정의 문턱 안에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인정과 정상 가족 담론을 초월하는 또 다른 가족실행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비공식적이며 비혈연 관계의 두 여성이 수십 년간 서로를 돌보며 이어온 삶은, 돌봄이 더 이상 제도적 가족이나 혈연관계에 국한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재생산의 도구로만 호명되었던 두 여성이 공통된 역할과 경험을 매개로 연대한 사실은 가족과 돌봄의 구조를 재사유하도록 만든다.
이 글은 정종화의 『표절과 번안의 영화사: 1960년대 한국영화계와 일본영화』(앨피, 2024)의 성과와 한계를 되짚으면서 특히 1960년대 ‘번안 청춘영화’를 중심으로 창조적 전략으로서의 번안과 그 영화사적 의미를 고찰한다. 이 책에서 정종화는 1960년대 한국영화계의 일본영화 표절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면서, 이를 영화 산업과 정책, 검열 당국, 창작 주체, 그리고 대중의 역학 관계 속에서 역사화하고자 시도한다. 저자는 ‘영화적 표절과 번안의 양식’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표절과 번안이 공존하고 서로 얽히는 복합적인 과정을 실증적인 자료 분석을 통해 규명한다. 본 논문은 한국 청춘영화 장르의 형성과 토착화를 가능하게 한 번안의 생산적 활력에 주목하되, 린다 허천의 각색 이론과 발터 벤야민의 번역 이론을 경유해 원작과 각색의 이분법을 재고하고자 한다. 이 맥락에서 번안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글로벌한 문화 흐름과 로컬한 제약 사이에서 창조적으로 협상한 결과물로 이해된다. 또한 이 논문은 1960년대 한국 청춘영화에 대한 접근에서 냉전 시대 자유 진영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하며 상호참조되었던 청년문화의 글로벌한 미디어스케이프와의 접속을 고려할 필요성을 제기하며, 글로벌한 상호텍스트성과 로컬한 상호텍스트성을 아우르는 청춘영화 장르 사이클에 대한 입체적인 조망에 대해서도 제안한다. 정종화의 저서는 일국적인 영화사를 넘어서는 비교영화사의 관점과 방법을 통해 영화사 연구를 확장하는 데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비교영화사 연구가 학술적으로 더욱 의미있는 기여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영화사 연구를 보다 큰 틀에서 사유할 수 있는 시야와 그 분석의 층위를 심화하기 위한 노력이 요청된다.
This paper examines the achievements and limitations of Chung Chonghwa’s A History of Plagiarism and Adaptation in Film: The 1960s South Korean Film Industry and Japanese Cinema (LP, 2024), with particular attention to “adapted youth films” of the 1960s, exploring adaptation as a creative strategy and its significance in the context of film history. In this book, Chung investigates the issue of plagiarism from Japanese cinema in 1960s South Korea in a systematic and in-depth manner, and attempts to historicize it within the interplay of film industry practices, state policy, censorship authorities, creative agents, and audiences. Through the notion of a “mode of cinematic plagiarism and adaptation,” the book offers a close examination of how these processes coexisted and overlapped. Focusing on adaptation as a generative and strategic act, this paper engages with Linda Hutcheon’s theory of adaptation and Walter Benjamin’s notion of translation to reconsider the binary between original and derivative. It argues that adaptation, in this context, was not merely a imitation, but a site of creative negotiation—shaped by both global flows and local constraints. It also raises the necessity of considering the connection between 1960s Korean youth films and the global mediascape of youth culture that emerged simultaneously and inter-referentially across the Free World during the Cold War, and proposes a multi-layered perspective on the youth film genre cycle that encompasses both global and local intertextualities. Ultimately, the book is expected to serve as an important stepping stone for expanding film historiography through the perspectives and methods of comparative film history that go beyond a nation-centered approach. In order for comparative film history to make a more meaningful scholarly contribution, further efforts are needed to broaden the conceptual horizon of Korean film historiography and to deepen its levels of analy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