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738-3188
이 글은 2015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춘희막이>를 한국의 공고한 정상 가족 담론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드러내는 역동적인 텍스트로 분석한다. 영화는 과거 관습적으로 허용되었던 가족실행 방식 중 하나인 ‘씨받이’를 다루고 있다. 이 글은 가족담론의 역사적 맥락과 함께 씨받이라는 존재가 한국의 규범적 가족 서사를 교란해 온 현장에 주목한다. 특히, <춘희막이> 속 두 여성이 맺어 온 관계에 집중하며, 그들이 공통의 신체적 경험을 기반으로 연대하고 있다는 점에 근거해 몸을 매개로 한 타자 인식과 공감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1950년대 이래 축첩제 폐지가 논의되는 법률적 맥락과 더불어 1987년 개봉한 영화 <씨받이>는 씨받이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했다. 전후 한국 사회의 규범 속에서 씨받이는 지양되어야 할 존재로 간주되었으나, 실제 가족 구성의 현장에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춘희막이>가 조명하고 있는 두 여성은 본처와 씨받이의 관계로, 정상 가족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 속에서도 비공식적으로 지속되어 온 혼외관계의 실재를 드러낸다. 영화는 분명히 존재했으나 가시화되지 않았던 가족 구성의 현실을 드러내는 한편 진정한 연대의 조건을 암시한다. 남성 중심의 가족제도 아래 신체적 재생산을 매개로 연결된 두 여성의 삶은, 공통된 몸의 경험에 기반한 연대로 해석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에 등장한 다큐멘터리 텍스트들은 씨받이에 대한 인식과 심상의 변화를 소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춘희막이>가 조명하는 두 여성의 관계는 사적 영역, 즉 한 가정의 문턱 안에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인정과 정상 가족 담론을 초월하는 또 다른 가족실행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비공식적이며 비혈연 관계의 두 여성이 수십 년간 서로를 돌보며 이어온 삶은, 돌봄이 더 이상 제도적 가족이나 혈연관계에 국한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재생산의 도구로만 호명되었던 두 여성이 공통된 역할과 경험을 매개로 연대한 사실은 가족과 돌봄의 구조를 재사유하도록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