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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조선의 碑學 유행과 그 의미

The Learning of Ancient Stone Monument between the Latter Half of 18th Century and the First Half of 19th Century in the Chosun Dynasty: Formation and Meaning

한국학 / Korean Studies Quarterly, (P)2671-8197; (E)2733-936X
2010, v.33 no.2, pp.129-160
https://doi.org/10.25024/ksq.33.2.201006.129
조성산 (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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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기 조선에서 유행했던 碑學 연구의 의의를 밝혀보고자 하였다.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으로 金石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그러한 가운데 古碑에 대한 연구들이 증대하였다. 비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阮元의 「南北書派論」과 「北碑南帖論」이라는 글이 나오고, 이어 包世臣의 藝舟雙楫, 康有爲의 廣藝舟雙楫이 나오면서부터였다. 고증학 범위 안에 있었던 비학이 書體의 문제와 본격적으로 결합하면서 대중화되었던 것은 이들의 논설이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랑캐로 폄하되던 北魏문화가 재조명되었고, 나아가 중국의 고대문화가 구체적인 물건으로 증명되었다. 이러한 고비에 대한 관심은 조선에도 전해져 17세기 후반 이래로 많은 지식인들이 비학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중요한 발전은 阮元 등의 이론을 수용한 金正喜에 의해 일어났다. 김정희는 신라와 고려비에 담긴 北碑的인 요소들을 발견하고 이를 중국문화와 연계하여 파악하였다. 중국과 중화문화를 과거에 공유했다는 의식을 갖는 데 신라와 고려비는 중요한 매개였다. 중화문화의 원형을 발견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고비가 소중하게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는 중국에는 현재 없고 조선과 일본에는 남아 있는 고대 중화문화의 원형을 찾는 과정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즉 고비에 대한 관심은 19세기 동아시아에서 확산되었던 同文 의식과 관련하여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碑學은 서세동점 과정에서 동아시아 한자문명권 지식인들 사이에서 어떠한 문화적ㆍ학술적 교류와 일체감이 형성되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keywords
碑學, 金正喜, 中華文化, 同文意識, 朝鮮學, 考證學, the Learning of Ancient Stone Monument, Kim, Jung Hee, Sinocentric culture, consciousness of the same letters, Chosǒn Studies, the philologico-bibliographical study, the Learning of Ancient Stone Monument, Kim, Jung Hee, Sinocentric culture, consciousness of the same letters, Chosǒn Studies, the philologico-bibliographical study

Abstract

In this study, I tried to investigate the the formation and meaning of the Learning of Ancient Stone Monument that had become popular in the Chosǒn Dynasty between the latter half of 18th century and the first half of 19th century. At that time, the great interest to the study of bronze, stone and seal inscriptions increasingly was paid on account of influence from of the philologico-bibliographical study of Qing Dynasty and made more and more researches on ancient Stone Monument therewidth. It was when Wan, Won published 「Nambukseoparon南北書派論」 and 「Bukbinamcheopron北碑南帖論」 and thereafter Po, Se Shin wrote Yejussangjeup藝舟雙楫 and Kang, Yu Wi wrote Kwangyejussangjeup廣藝舟雙楫 that the Learning of Ancient Stone Monument had developed rapidly. They had reconsidered the culture of Bukwi(北魏) that was deemed as that of barbarians and furthermore ancient culture of China was proved as a concrete object. This great interest paid to ancient tombstone was inherited to Chosǒn Dynasty, which made many intelligent to pay close attention to the Learning of Ancient Stone Monument ever since the latter half of 17th century. Significant development, however, was had been made by Kim, Jung Hee who adopted theories of Wan, Won, etc. Kim, Jung Hee found out the factors and resources of Bukbi(北碑) were contained in the stone monuments of Shilla and Corea period and tried to find more by linking them to the culture of China. Those monuments were important medium that made them be aware that they had shared Sinocentric culture with China in the past. Ancient Stone Monument of Chosǒn Dynasty were considered precious in the course of finding out original form of Sinocentric culture. That was triggered by the efforts that they made to search for original form of ancient Sinocentric culture that had remained in Chosǒn and Japan, not in China. In short, such interest to ancient Stone Monument can be found in relation to consciousness of the same letters spread in East Asia in around 19th century. The Learning of Ancient stone monument might be one of the important cases that show us what kind of cultural and academic exchange was made or what kind of identity was felt between the intelligent of cultural sphere of Chinese letters in the East Asia in the 19th century

keywords
碑學, 金正喜, 中華文化, 同文意識, 朝鮮學, 考證學, the Learning of Ancient Stone Monument, Kim, Jung Hee, Sinocentric culture, consciousness of the same letters, Chosǒn Studies, the philologico-bibliographical study, the Learning of Ancient Stone Monument, Kim, Jung Hee, Sinocentric culture, consciousness of the same letters, Chosǒn Studies, the philologico-bibliographical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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