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 KOREAN
  • P-ISSN2671-8197
  • E-ISSN2733-936X
  • KCI

Article Detail

Home > Article Detail
  •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Developments of the Political Situation and the Revival Movement in the Reign of King Pung of Baekje: Focus on Background of Dochim’s Downfall and Boksin’s Leading

Korean Studies Quarterly / Korean Studies Quarterly, (P)2671-8197; (E)2733-936X
2013, v.36 no.1, pp.36-61
https://doi.org/10.25024/ksq.36.1.201303.36
Kim Byung Nam
  • Downloaded
  • Viewed

Abstract

서기 661년 6월에 신라에서는 무열왕의 죽음과 문무왕의 즉위라는 정치 변동이 있었고, 전쟁의 한 축인 당나라 또한 고구려 정벌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당의 고구려 정벌은 곧 백제 땅에 대한 당의 추가적인 군사 투입을 어렵게 하는 호기로 작용하였고, 따라서 이러한 이해관계는 백제 부흥 세력과 당 주둔군 지도부 사이에 외교적 교섭을 진행하게 만들었다. 이때 백제 측의 외교 주체는 영군장군으로서 자신의 세력권인 사비와 그 주변의 임존성을 근거로 한 도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백제와 당의 교섭은 중요한 이해 당사자인 신라에게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신라는 평양성의 당군을 구원하기 위해 조직된 군대를 돌려 부흥 세력을 공격하기 이른다. 서기 661년 9월 27일에 백제 옹산성을 함락시키고 장수들과 수천 명의 병사를 참살하였고, 다시 인근의 우술성마저 함락시켜 부흥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이를 통해 신라는 백제와 당의 유착을 방지하고 다시 나·당 동맹의 관계를 재확인하였다. 결국 이 옹산성 전투는 풍왕 정권의 수립과 함께 새롭게 시작되는 백제의 국가 재건 일정을 송두리째 흩어놓았다. 백제와 당의 교섭 진행과 그에 따른 신라의 반발은 유기적 지역 네트워크가 공고해지기 전에 한 부분을 와해시키고 말았으며, 나아가 지역 부흥 세력의 일부가 다시 신라에 투항하는 인적 네트워크의 결속마저도 훼손하는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백제의 정국 운영 주도권이 복신에게 넘어간 것이다.

keywords
백제, 부흥운동, 도침, 복신, 부여풍, Baekje, the Revival Movement, Dochim, Boksin, Buyeopung


Reference

1

『구당서』.

2

「당유인원기공비」.

3

『삼국사기』.

4

『삼국유사』.

5

『신증동국여지승람』.

6

『일본서기』.

7

『자치통감』.

8

김병남, 「백제 부흥 전쟁기 고사비성 전투의 의미」. 『정신문화연구』 126, 2012.

9

김수태, 「백제의 멸망과 당」. 『백제연구』 22, 1991.

10

김수태, 「문무왕」. 『한국사시민강좌』 13, 일조각, 1993.

11

김영관, 「백제부흥운동의 실패 원인」. 『선사와 고대』 19, 2003.

12

김영관, 「백제부흥운동의 성세와 당군의 대응」. 『한국고대사연구』 35, 2004.

13

김영관, 『백제부흥운동연구』. 서경, 2005.

14

김용만, 「2차 고구려‒당 전쟁(661‒662)의 진행과정과 의의」. 『민족문화』 27, 2004.

15

김종복, 「백제와 고구려 고지에 대한 당의 지배 양상」. 『역사와 현실』 78, 2010.

16

김주성, 「7세기 삼국 고대 전투 모습의 재현」. 『군사』 81, 2011.

17

김창현, 「당의 동북아 전략과 삼국의 대응」. 『군사』 47, 2002.

18

노중국, 『백제부흥운동사』. 일조각, 2003.

19

노중국, 「부흥백제국의 성립과 몰락」. 『백제부흥운동사연구』, 서경, 2004.

20

노태돈, 『삼국통일전쟁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9.

21

문안식, 『백제의 흥망과 전쟁』. 혜안, 2006.

22

서정석, 「부흥운동기 백제의 군사 활동과 산성」. 『백제부흥운동사연구』, 서경, 2004.

23

성주탁, 「도침의 사상적 배경과 부흥활동」. 『호서사학』 19·20, 1992.

24

심정보, 「백제 부흥군의 주요 거점에 관한 연구」. 『백제연구』 14, 1983.

25

심정보, 「백제의 부흥운동」. 『충청남도지』 4, 2006.

26

심정보, 「부흥군의 봉기와 부흥활동의 전개」. 『백제의 멸망과 부흥운동』 백제문화사대계 연구총서 6, 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07.

27

양종국, 『의자왕과 백제부흥운동 엿보기』. 서경, 2008.

28

이도학, 『새로 쓰는 백제사』. 푸른역사, 1997.

29

이상훈, 「신라의 군사 편제단위와 편성규모」. 『역사교육논집』 46, 2011.

30

이현숙, 「7세기 신라 통일전쟁과 전염병」. 『역사와 현실』 47, 2003.

31

임용한, 『한국고대전쟁사』 2. 혜안, 2012.

32

최현화, 「7세기 중엽 당의 한반도 지배전략」. 『역사와 현실』 61, 2006.

33

충남대 박물관·대전광역시, 『계족산성 발굴조사약보고』. 1998.

34

충남역사문화연구원 편, 『백제사자료역주집 – 한국편 Ⅰ‒』. 2008.

35

韓昇, 「당과 백제의 전쟁: 배경과 성격」. 『백제부흥운동사연구』, 서경, 2004.

36

池內宏, 「百濟滅亡後の動亂及び唐·羅·日三國の關係」. 『滿鮮史硏究』 上世 2冊, 吉川弘文館, 1950.

상단으로 이동

Korean Studies Quarte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