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조선시대 초기의 왕릉 관련 의궤나 등록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세종실록』 권7에 실린 1420년(세종 2) 1월 3일 5번째 기사의 산릉 관련 기록은 가장 처음 등장하는 왕릉 산릉제도이므로 왕릉 연구의 기본 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이 기록은 정종의 애책문에 연이어서 기사의 제목 없이 본문만 나열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종 후릉의 산릉 기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기록과 현재의 실물이 체제와 크기에서 서로 달라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문헌 기록과 석물 분석 등을 통해 이 기록이 후릉의 산릉제도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건원릉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내용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나아가 이는 단순히 건원릉의 산릉 기록이 아니라 「세종오례」가 제정되기 이전에 건원릉을 바탕으로 조선 최초의 국상제도인 <국상의제(國喪儀制)>라는 규범을 제정한 것이고 정종 후릉의 산릉을 계기로 그 규범을 실록에 올렸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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