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이 연구는 제국 일본의 대표적인 침략 논리인 남선경영설이 일본사의 전개에서갖는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식민주의 역사학의 출발점이자 일본에서 근대 역사학에 입각한 역사서술의 초기작인 『조선사(朝鮮史)』와 『고본 국사안(稿本 國史 眼)』을 통해 고찰한 것이다. 이 저작들은 모두 고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우위 또는 지배를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진구황후의 신라정벌 이후 삼국의 조공을 통해 중국에서 기원하는 선진적인 문화와 기술이 일본에 유입되었다는 내용 역시 서술했다. 『조선사』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제시되었지만, 『국사안』은 일본사의 전개 과정에서 남선경영을 서술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일본사의 맥락에서 갖는 위상이 분명하게 드러나있다. 이에 따르면 일본 고대사에서 임나일본부의 설치라는 남선경영은 국내적혼란이라는 한 축에서 일본인 활동의 확대ㆍ사회적 발전이라는 또 다른 축으로 연결되는 결절점이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남선경영설은 8세기에 편찬된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근거한 것으로, 근대 이전에 일본의 전쟁기에 회자되었다. 『국사안』과 『조선사』 역시 『고사기』와『일본서기』에만 실린 남선경영설을 서술했다. 하지만, 이 두 저작은 모두 전설과설화에 가까운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기사를 중국과 한국의 역사서를 기준으로 한 기년 조정을 통해 믿기 어려운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승격시켰다. 이 점에서 이 두 저작에서 서술한 남선경영설은 근대 이전 일본사회에서 회자되었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한편 19세기 말 이래 제기되었던 남선경영설을 종합했다고 평가되는 스에마쓰야스카즈의 1949년작 『임나흥망사(任那興亡史)』는 일본부의 소멸이 아닌 다이카개신으로 끝을 맺는다. 기원 전후 이래, 특히 4세기 이후 남선지배를 통해 수용한대륙의 문화를 일본인들이 소화시킨 결과 남선지배가 끝났을 즈음에 일본인들은다이카 개신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대 한일관계, 특히 남선경영은 야마토 조정의 국외 팽창만이 아니라 일본 사회의 내적 발전이라는 역사적 서사를 구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요소로, 이는 일본 근대 역사학의 초창기 저작인 『국사안』 과 『조선사』에서부터 제기된 것이었다. 즉 일본인 역사가들이 과거와 현재를 연속체로 인식하며 자신이 위치한 당대까지 이른 일본의 과거를 재구성하는데에, 특히 고대사와 관련하여 야마토 조정과 일본 사회의 발달을 실증하는 데에 남선경영은 필수불가결한 사항이었던 것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배가 끝난 1945년 이후에도 남선경영설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비록 시간이 흘러 일본의 역사가들이 남선경영설이 갖는 일본이한국을 지배했다는 식의 논의는 부정하게 되었더라도, 고대 일본민족의 발달을설명하기 위해서는 고대 한일관계사에 대한 해명은 절실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지속했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