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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정팔경도(永思亭八景圖)》의 문화적 함의와 회화적 특징

The Cultural Implications and Pictorial Characters of Eight Scenic Views of Yeongsa‒jeong Pavilion(永思亭八景圖)

한국학 / Korean Studies Quarterly, (P)2671-8197; (E)2733-936X
2016, v.39 no.3, pp.139-174
https://doi.org/10.25024/ksq.39.3.201609.139
정은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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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영사정(永思亭)은 전북 남원시 금지면 택내리 내기마을에서 50m 거리의 야산에 있는 누정이다. 영사정은 순흥안씨 가문의 효의 상징이자 조선중기 호남사림의 교유 장소로서 이에 대한 다수의 시문학이 전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영사정의 연혁을 사료를 통해 재구성하고, 관련 인물들의 교유관계와 영사정과의 인연을 밝혀 영사정의 연혁과 문화적 함의를 정리하였다. 그 결과 안전(1518‒1571)이 선친 안처순을 기리기 위해 거처의 남록에 영사정을 지은 시점은 안처순의 사후인 1534년 이후부터 적어도 1557년 임희무가 사제당을 방문하여 영사정 제영을 쓰기 이전임을 알 수 있었다. 정자 이름은 부모의 사후에도 길이 효성을 바치려는 『시경』 출전의 ‘영언효사(永言孝思)’의 마음에서 ‘영사(永思)’라 지었다. 이후 영사정은 1590년 안전의 아들인 안창국(1542‒1595)에 의해 중건되어 삼대에 걸친 순흥안씨 문중의 효를 상징하고, 제영을 중심으로 16‒17세기 호남사림들이 결속을 다지는 장소가 되었다. 또한 임진왜란 시에는 남원 일대에 주둔하던 명나라 장수들이 군사를 지휘하던 장소였으며, 명나라 주지번의 영사정 편액이 전하여 대외관계에서도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영사정이 주목을 받은 것은 1997년 한 전시회에서 처음 소개된 《영사정팔경도》를 통해서이다. 이 작품은 지본수묵화로 전체 8폭 중 6폭만 남아 있고, 화면의 박락이 심하여 처음에는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웠으나, 각 화면의 측면 상단에 남아 있는 ‘殘照’와 ‘孤舟’, ‘方丈晴雲’ 등 일부 화제(畵題)가 양대박(梁大樸, 1543‒1592)이 지은 「영사정팔영(永思亭八詠)」 시제(詩題)와 일치한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영사정팔경도’라고 명명되었다. 현재는 각 화폭을 유리 액자에 보관하고 있지만, 각 화폭의 크기는 박락 부분을 제외하고 대략 70×50cm로 일반 화첩의 크기와 달라 원래는 조선중기 유행한 8폭 소병풍 형식으로 장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사정팔경도》의 내용은 주로 영사정이 위치한 남원의 명승을 중심으로 선정된 팔경을 주제로 팔영시와 쌍을 이루며, 사계절의 풍광을 묘사하였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양대박이 지은 「영사정팔영」과 여러 문인의 시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영사정팔경도》의 남원 실경이 구체적으로 어디를 그린 것인지 파악하고 당대의 화풍과 비교하여 16세기 조선 회화에서 유행한 안견파 화풍과 절파 화풍을 반영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제1경 <창송냉월>은 영사정의 일곱 그루 소나무에 걸린 쓸쓸한 달빛, 제2경 <수죽청풍>은 영사정(永思亭) 뒤쪽 대숲에 이는 맑은 바람, 제3경 <순강모우>는 순강의 저녁 비, 제4경 <방장청운>은 지리산에 피는 청운, 제5경 <야도고주>는 순강 나루터의 외로운 배, 제6경 <단안쌍루>는 축천을 사이에 두고 단안 위에 마주한 보허정과 북정, 제7경 <폐성잔조>는 영사정 인근 황폐한 옛 산성 터의 낙조, 제8경 <장교효설>은 금석교의 새벽 눈발을 소재로 한 양대박의 「영사정팔영」과 《영사정팔경도》가 쌍을 이룬다. 따라서 《영사정팔경도》는 양대박의 생졸년을 고려할 때, 「영사정팔영」과 동시에 제작되었거나 그와 멀지 않은 16세기 후반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사정팔경도》는 조선중기 실경을 바탕으로 그린 현존 팔경도가 희귀한 현실과 더욱이 남원 지역의 팔경을 그린 최고(最古) 사례라는 점을 감안할 때 학술적 연구 가치가 매우 높다.

keywords
영사정팔경도(Eight scenic views of Yeongsa‒jeong pavilion), 영사정(Yeongsa‒Jeong pavilion), 팔경도(Eight scenic views), 양대박(Yang Dae‒bak), 주지번(Ju Ji‒beon), 안처순(An Cheo‒sun), 호남사림(Honam scholars), 순흥안씨(Sunheung Ann c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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