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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입후의 요건과 첩자계승

Adoption Requirements and Succession of Illegitimate Children in the 17th Century

한국학 / Korean Studies Quarterly, (P)2671-8197; (E)2733-936X
2016, v.39 no.3, pp.175-200
https://doi.org/10.25024/ksq.39.3.201609.175
고민정 (강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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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글은 17세기 첩자계승의 실상이 어떠하며 입후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를 고찰하기 위하여 예조가 편찬한 입후사례모음집인 『계후등록』을 주로 분석하였다. 입후제에서 규정한 입후 요건, 즉 적처와 첩에게 모두 아들이 없어야 입후할 수 있게 한 것은 17세기 이후에도 그 효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적서차별로 인해 첩자의 지위가 낮아지게 되면서 첩자계승 대신 입후를 통해 가문을 계승하게 하려는 요구가 있었다. 특히 권력의 핵심층에 있었던 이들은 국왕의 특별한 허가를 받아 입후하는 경향이 있었고 또한 적장자에 한해서는 제한적으로 입후하게 한 측면도 있다. 따라서 첩자가 있어도 가문이 원할 경우 입후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었다. 이러한 경향에 따라 적자손이 첩자손의 계승권을 침탈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였다. 첩자손이 계승자가 되어 이미 봉사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자손이 신분적 우위를 이용하여 이를 빼앗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첩자손은 쟁송을 통해 계승권을 지키려고 하였고, 더 나아가 국가로부터 계승권을 인정받기 위해 승적입안을 요청하였다. 이처럼 가문 내의 입후의 선호와 첩자의 계승권 수호가 맞물리면서 계승자 선정과정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심각한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갈등 양상은 첫째, 첩자 대신 입후하여 첩자가 반발한 경우, 둘째, 입후를 고민하였으나 최종적으로 첩자계승을 선택하여 입후후보자가 반발한 경우, 셋째, 첩자계승을 했더라도 적자손이 첩자의 계승권을 뺏으려 한 경우이다. 결국 17세기 입후는 첩자만 있는 가문이 계승방식을 정하려 할 때 하나의 선택지를 넓혀준 것이었다. 따라서 가문의 선택에 따라 첩자계승 또는 입후가 이루어질 수 있었으나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갈등이 수반된 측면이 있으므로 가문 내의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keywords
입후(Adoption), 가계계승(Succession), 계후등록(Gyehu Deungrok, Resgistration Document of Adopted Son), 서얼(SeoEol, a Child by a Concubine), 갈등(confl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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