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본고는 통감부기 교파신도의 한국 포교 양상을 분석했다. 특히 교파신도의 한국 포교가 재한일본인을 주된 포교대상으로 했다는 기존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였으며, 신습교(神習敎)를 분석 대상으로 했다. 본고의 전개는 다카하시 히사시(高橋久司),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庸), 이학재(李學宰) 등 인물관계를 중심으로 초창기 신습교의 포교 양상을 고찰했으며, 이 과정에서 신궁봉경회(神宮奉敬會)와 ‘동우회(同友會)’, ‘대동회(大同會)’ 등 친일단체와 신습교의 관계, 또 천조교(天照敎)의 정체와 신습교의 관계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분석의 결과 신습교는 한국인을 주된 포교의 대상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한국인 이학재를 전면에 내세워 ‘천조교’를 만들고 이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한국 상인(商人)을 회원으로 포섭함으로써 교세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명확히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신습교는 초기부터 포교의 대상을 ‘한국인’으로 하는 포교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또한 신습교에서는 한국 포교에 있어 초창기부터 이학재를 중심으로 촉탁 포교사의 형태로 한국인을 고용하여 포교의 주체로 내세우는 등, 비록 통감부에 보고되지 않는 촉탁의 형태였지만 한국인 ‘포교사’를 선임하여 한국포교의 기초를 닦고자 시도했던 최초의 교단이라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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