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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Diplomacy with China in the Joseon Dynasty and Utilization on Jeongmoon(呈文)

Korean Studies Quarterly / Korean Studies Quarterly, (P)2671-8197; (E)2733-936X
2022, v.45 no.4, pp.7-47
https://doi.org/10.25024/ksq.45.4.202212.7
KimDongG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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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북경(北京)에 도착한 사신들이 표자문(表咨文)을 바치고 난 뒤에는 책봉(冊封)・변무(辨誣)・사은(謝恩) 등, 사행의 목적에 따른 관련 문서의 회답(回答)을 요구하면서 중국과 발생한 여러 오해를 해소하고 이해를 구하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요구는 정문(呈文)이라는 문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원래 정문은 백성이 관청에 올리거나, 또는 하급 기관이 상급 기관에 제출하는 공문서를 가리킨다. 본고에서 다루는 정문은 중국에 파견된 조선의 사신이 현지에서 중국 측의 예부를 비롯한 여러 관련 기관에 조선 측 의사를 밝히고 외교적 이익을 꾀하기 위해 작성하여 제출하는 문서이다. 정문의 작성과 제출은 사신이 중국 현지에서 행하였던 실질적인 외교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정문에는 표문이나 자문에 담기는 적절하지 않으나 청나라에 알려 협조를 얻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을 비롯하여 조선 측의 구체적인 요구가 담겨 있다. 사신이 북경에 도착한 이후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와 청나라 측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따른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정문을 지어 제출했다. 정문의 의미를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정문의 작성 자체가 작성자의 문장력을 공인받은 증거이고, 이를 중국 문인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외국에까지 문명을 떨칠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다. 외교 현안의 성공적인 완수와 함께 ‘문장으로써 나라를 빛낸다[以文華國]’는 책무를 짊어지고 있던 사신들의 고민이 정문에 집약되어 있다. 둘째, 어려운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완수한 외교 사안은 후대에 영구히 남길 만한 업적이었다는 점이다. 현재 문집에 남아 있는 정문은 대부분 임진왜란 시기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현존하는 정문이 ‘성공적 외교의 증거’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특히 청병(請兵)과 변무(辨誣)를 통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정문이 사신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이다. 정문을 제출한다는 것 자체가 ‘제출하지 않을 수 없는’ 상당한 수준의 문제가 발생하였음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예부에서도 무시하고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정문을 당시 현안을 잘 처리하려는 사신의 고민과 최선의 결정이 담겨 있는 글이라는 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keywords
Jeongmoon, Request an army, Yeboo, Imjin War, 정문(呈文), 청병(請兵), 예부(禮部), 임진왜란(壬辰倭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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