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738-3188
이 연구는 최근의 아이돌 팬픽에 나타난 식민지 조선의 재현의 특징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대중이 인식하는 적법한 민족 구성원의 조건을 알아 봤다. 분석 결과 다음과 같은 특징이 발견되었다. 첫째, 독립운동에 헌신하는 것은 그 당위와 가치가 의심되지 않으며, 이것은 팬픽의 절대적 장르 관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낭만적 동성애와 결합한다. 대부분의 팬픽은 같은 아이돌에 소속된 주인공 두 명이 사랑하는 사이로서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서사를 전한다. 둘째, 독립운동하는 퀴어라는 새로운 민족 주체가 발견된다. 그동안 민족-국가의 상상에서 퀴어는 삭제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팬픽에서 퀴어들의 퀴어성은 확실히 명시되는 경향이 있고, 이 퀴어성은 그들의 적법한 민족 주체적 면모를 훼손하지 않는다. 이 팬픽들은 앞으로의 역사 서술에 퀴어 애국 주체의 포함을 요구하는 것이다. 셋째, 그럼에도 낭만적 사랑의 결합은 혈연적 민족과 국민의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믿음이 발견된다. 이 민족에 포함될 성원권을 얻기 위해 개인은 친일로 오염되지 않고, 육체적으로 무결한 조선인이어야 하며, 시스젠더여야 한다. 넷째, 이와 같은 민족-국가 인식이 지배적인 동시에 케이팝의 저변이 확대되고 구성원의 국적이 점점 더 다양해지며 팬들에게도 일본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사람들, 그리고 한국인과 그들의 관계를 새롭게 상상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따라 그간 미디어에서 틀에 박힌 듯 보여주던 나쁘고 잔인한 일본인과는 다른 일본인이 팬픽에서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이미 다문화 사회로 변화한 지 오래인 한국이 구성원에게 요구하는 인식의 확장이며 케이팝 팬들의 역사적 상상을 계속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 연구는 개별 팬픽 텍스트의 내용을 분석해서 식민지 시기에 대한 대중적 상상의 한 면을 규명했다는 의의가 있다. 이 연구를 통해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고 생성하는 대중 서사의 하나로서 팬픽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