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영조는 변화된 국가 제도와 시의(時宜)를 반영하여 예제 정비 작업을 시행하였다. 그리하여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누락된 항목을 추가하여 1744년과 1751년 각각『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와 국조속오례의보(國朝續五禮儀補)를 간행하였다. 이후 두 차례에 걸쳐서 흉례만을 위한 별도의 전례서인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간행하였다. 이때 간행된 『국조상례보편』은 조선시대 흉례 영역과 관련하여 정비한 전례서의 최종본이라고 할 수 있다. 『국조상례보편에 추가된 조항 가운데 조조의(朝祖儀)가 있다. 조조의란 발인(發靷)하기 전 재궁(梓宮)이 빈소를 나와 종묘(宗廟)에 가서 조상께 하직 인사를 드리는 의식으로, 유교식 상장례의 상징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절의 상징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조선 전기의 국가전례서에는 조조의 의절이 등재되지 않았고 시행된 적도 없었다. 효종 대에 김집(金集)이 왕실 흉례 의식과 관련하여 조조의 시행을 처음 언급하였는데, 효종에게 올린 고금상례이동(古今喪禮異同)에서 국제(國制)로서 설행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현재 조조의 없이 이루어지는 조전의(祖奠儀)가 종묘의 뜰이 아닌 빈전에서 이루어져 상장례의 근본적인 예의, 즉 ‘즉원유점(卽遠有漸)’과 ‘유진무퇴(有進無退)’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좌의정이던 이경석(李景奭)이 고례를 상고하여 현재의 종묘라는 공간과 고대의 종묘 공간과는 차이가 있어 현실적으로 조조의를 설행하기 어렵다고 헌의하여 무위로 돌아가게 되었다. 영조 대의 조조의 논의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당시 영조는 노론의 ‘주자예학’에 구애받지 않고 국왕의 입장에서 독자적인 예학 인식을 갖추었는데, 왕정강화론에 입각한 존왕적예학을 추구하였다. 대명회전(大明會典)과 구준(丘濬)의 문공가례의절(文公家禮儀節)을 근거로 하여 신백(神帛)으로 재궁의 역할을 대신하게 하였고, 결국 새로운 의절을 마련하여 국조상례보편에 등재하였다. 1776년 영조가 승하하자 정조 즉위년에 조조의의 시행이 다시 논의되었다. 영조 대에 조조의가 상장례에 정식으로 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조대의 논의는 조조의 시행을 원점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영조 대의 논의가 고례를 정확하게 구현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영조의 예학 인식과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조 대에 조조의의 근거로 삼았던 대명회전과 문공가례의절에 대한 고례적 관점에서의 비판과 함께 주자예학적 입장에서 사세의 편리함 보다는 고례의 입례(立禮) 정신을 회복하려고 하였다. 정조 대의 예학은 왕조례에 주자예학을 대폭 절충해 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禮記』
『孝宗實錄』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五禮儀』
『國朝續五禮儀』
『國朝喪禮補編』.
『仁元王后國恤謄錄』(K2‒3000).
『英宗大王國恤草日記』(K2‒2988).
이욱, 『조선시대 국왕의 죽음과 상장례: 애통・존숭・기억의 의례화』. 민속원, 2017.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이현진, 『조선 왕실의 상장례』. 신구문화사, 2017.
김문식, 「『국조오례통편』의 자료적 특징」. 『한국문화연구』 12, 2007, 65‒106쪽.
김진영, 「英祖代 『國朝喪禮補編』의 편찬과 『[英祖]元陵山陵都監儀軌』」. 『규장각 소장 의궤 해제집』(1),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3, 297‒311쪽.
박례경, 「조선시대 國葬에서 朝祖儀 설행 논의와 결과」. 『규장각』 31, 2007, 173‒200쪽.
송지원, 「국왕 영조의 국장절차와 『국조상례보편』」. 『조선시대사학보』 51, 2009, 171‒209쪽.
안희재, 『朝鮮時代 國喪儀禮 硏究: 國王國葬을 중심으로』. 국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이원택, 「17세기 복제예송이 18세기 복제 예론에 미친 영향: 예론의 지역적 분립과 학파 내의 분화를 중심으로」. 『국학연구』 13, 2008, 59‒95쪽.
이봉규, 「喪禮 爭點을 통해 본 『國朝喪禮補編』의 志向」: 『古今喪禮異同議』와 『國朝喪禮補編』의 관련 양상을 중심으로」. 『동양철학』 36, 2011, 88‒114쪽.
이현진, 「영조대 왕실 喪葬禮의 정비와 『國朝喪禮補編』」. 『한국사상사학』 37, 2011, 113‒155쪽.
이현진, 「정조 초 영조의 國葬 절차와 의미」. 『태동고전연구』 27, 2011, 161‒211쪽.
정경희, 「영조의 예학」. 『규장각』 제25집, 2002, 201‒226쪽.
정경희, 「정조의 예학」. 『한국사론』 50, 2004, 215‒261쪽.
안소정, 「영조대 종묘 외대문 내외 공간의 행례」. 『서울과 역사』 104, 2020, 85‒1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