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삼척 봉황산 미륵삼불은 봉황산에서 서쪽으로 삼척읍성의 동문을 향하고 돌출된 바위 위에 있다. 삼척읍성과 봉황산 미륵삼불의 거리는 약 60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오십천의 물줄기가 이 사이를 지나갔다. 봉황산 미륵삼불은 그동안 삼척부사 이규헌이 1835년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본문에서는 이규헌 부임 전후의 상황을 살피고 기록에 남겨진 이규헌의 행적을 분석하 봉황산 미륵삼불의 조성시기를 1838년경으로 추정하였다. 조성배경은 유례없는 흉년으로 피폐해진 읍인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삼척부사 이규헌이 종교적이며 의례적인 대책으로 석상을 조성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봉황산 미륵삼불의 양식적 특징은 괴체적인 신체에 평면적인 얼굴에서 삼각형코가 돌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형태의 얼굴은 18‒19세기 제주도 및 남부지방에서 유행하였던 동자석에서 찾을 수 있다. 괴체적인 신체 역시 18‒19세기 남부지방부터 전국으로 확산된 석장승에서 직접적인 영향관계가 확인된다. 한반도 남부지역과 제주도 등에서 나타나는 석상의 양식적 특징이 삼척 봉황산 미륵삼불에서 보이는 이유는 미륵삼불을 조성한 이규헌의 행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규헌은 1835년 삼척부사로 부임하기 이전에 지금의 전남 곡성, 전북 군산, 전북 금산 지역 등에서 관리로 근무하였다. 현존하는 사료에 의하면 이규헌은 삼척부사시절 사찰을 중건하고 건축자금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그는 불교에 우호적인 인물이었기에 삼척부사에 근무하기 이전 머물렀던 지역에서도 사찰을 자주 방문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규헌이 부임한 전라도지역의 유명한 사찰에는 18세기부터 사찰 앞에 석장승을 조성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이러한 유행은 19세기 전라도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또한 전남 지역을 비롯한 남부 지역에는 제주도 동자석과 유사한 형태의 동자석이 만들어졌다. 삼척부사에 부임하기 이전 이규헌이 경험한 남부지역 지방관 경험은 그가 1838년경 조성한 봉황산 미륵삼불의 조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봉항산 미륵삼불은 1857년 봉황대에서 현재의 장소인 미륵바위로 옮겨졌다. 미륵삼불이 1857년 이동된 이유는 삼척영장으로 부임한 이규헌의 의지가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추정하였다. 성읍 주변에 석불이나 석상을 세워 성읍을 진호하는 전통은 15세기 해미읍성, 대정현성, 정의현성 등 해안가의 읍성에서 처음 나타난 전통이다. 조선후기에 들어와서는 1754년, 제주목사 김몽규가 제주읍성 앞에 옹중석을 세워 읍성 주변에 석상을 세우는 전통을 이어나갔다. 삼척읍성 밖에도 삼척부사 이규헌이 1838년경 석상을 세웠다. 이규헌이 만든 석상은 후대에 미륵삼불로 불리게 된다. 봉황산 미륵삼불은 15세기 해안가 읍성에서 만들어진 전통이 19세 삼척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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