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신동엽은 1960년대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서 통일 조국에 대한 ‘유토피아적 지향’을 드러낸다. 신동엽은 1950년대에 유토피아적 열망으로 충만했지만 이를 현실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역사의식과 이론적 토대가 부재했다. 그러나 1960년대 동학과 아나키즘의 사상적 전유를 통해 자신만의 역사관과 ‘전경인’ 개념을 획득했으며 결정적으로 중립화통일이라는 구체적 유토피아의 전망을 확보한다. 블로흐는 막연한 열망으로서의 ‘추상적 유토피아’가 가진 퇴행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그것이 품은 유토피아적 열망을 긍정하면서 ‘구체적 유토피아’로 나아갈 것을 요청한다. 신동엽에게는 그 ‘구체적 유토피아’를 가능하게 하는 최초의 땅이 ‘정전지구’로 나타난다. 신동엽은 ‘씨앗’이란 비유와 함께 씨앗을 심고 밭을 일구는 ‘전경인’이란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신동엽의 역사관에서 부정한 현실인 ‘차수성’의 땅에 누워서 유토피아로서의 ‘귀수성’을 꿈꾸는 ‘씨앗’은 블로흐가 말한 ‘아직 아닌-존재의 존재론(Ontologie des Noch-Seins)’의 지위를 갖는다. 그의 산문 「시인정신론」에서 ‘전경인’과 ‘씨앗’은 유토피아를 향한 혁명의 출발점인 ‘아직-아닌 존재의 존재론’을 지향한다. 이 ‘씨앗’이 심겨질 장소는 바로 ‘중립 지대’(비무장지대)이다. 신동엽은 1960년 4ㆍ19혁명이라는 결정적 경험 이후에 고양된 역사의식을 가지게 되고 1950년대에 보이던 추상적 유토피아와 결별하고 구체적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즉, 신동엽에게 중립화통일은 유토피아적 사유에 기반한 ‘의식된 희망’(구체적 유토피아)의 최종 종착지이자 역사의 마지막 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