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삼국사기』 신라본기와 열전 및 『삼국유사』 등에는 3세기 초반에 발생한 사건으로 이른바 포상팔국의 난이 기술되어 있다. 여기에서 포상팔국이란 대체로 신라 주변의 경남 해안가에 위치한 8개의 소국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전쟁 발발 시기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3세기 초반, 4세기 전반, 6세기 중엽, 7세기 초반 등연구자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사료상에서 전해지는 3세기대 무렵의 신라는 아직 진한 제국의 일원인 사로국으로서 기원후 1세기대부터 개별적으로 서북한 지역에 위치한 한(漢)ㆍ위(魏)의군현과 교섭 내지 교류를 이어 가고 있었다. 아울러 중국의 군현세력과 교류하는동시에 이웃한 진한과 변한의 여러 소국들을 차례로 병합해 나갔다. 학계에서는 후한의 건안(建安) 연간인 2세기 말에서 3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진한의 맹주국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 소위 포상팔국의 난과 물계자 전승으로 생각된다. 옛 문헌기록 속에 남아 있는 물계자 전승에는 나해이사금(奈解尼師今)대포상팔국의 난을 승리로 이끈 신라 장군으로서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이와 함께 현악기인 금(琴)이 줄거리의 한 소재로 등장한다. 지금까지 고대사학계에서는 물계자 전승에 대해서 주로 포상팔국의 난 전개 과정을 살피기 위한 자료로만 사용했다. 그런데 『삼국사기』 잡지 악(樂) 항목에는 거문고의 유래를 전하면서 4세기 이후고구려에서 제작되어 신라에 전해진 현악기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물계자 전승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나해이사금 치세의 3세기대 시점에서는 고구려의 거문고가 신라에 전해져 존재했다거나 자체 제작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학계에서는 물계자전의 역사적 사실을 의문시하거나 후대에 만들어진 내용으로 치부하는 등 전승의 역사적 가치를 다소 무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후한서』에 진한에는 슬(瑟)이란 악기가 존재하며 그 형태가 축(筑)과 같고 연주하는 음곡(音曲)이 있다고 한 부분이다. 『삼국지』에도 진한의 풍속에 음주(飮酒) 가무(歌舞)와 함께 고슬(鼓瑟), 즉 북을 치고 거문고 타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 유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사들을 신뢰한다면 3세기대 신라에도 분명 현악기가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 3세기 대에 제작된 악기의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물계자 전승의 역사적 사실을 의문시 한다거나 후대에 만들어진 내용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 아울러 포상팔국의 난이 후대에까지 회자되며 전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진한 시절부터 이어져 온 고유의 현악기와 함께 신라와 가야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 직접 참전하여 전공을 세운 물계자란 실존인물을 연계시켜 사건을 확장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