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채동선의 유족은 채동선 독창곡의 작시자를 정지용에서 이은상으로 바꾸어 《채동선 가곡집》(1964)을 발간한다. 월북 작가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삭제하고 출판 판매를 금지하라는 조치에 따른 것이다. 작시자의 교체는 사회구성원의 권리를 제한하고 사회적 배제와 차별의 방식으로 자행된 ‘연좌제’의 폐해와 검열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정지용이라는 기표를 이은상이라는 기표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납・월북 작가의 흔적을 지우고 그 자리에 재남 작가의 이름을 적어 넣은 것이다. 이와 같은 개사 작업은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한 검열의 내면화가 납・월북 작가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문화계 인사들에게까지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 연구에서는 정지용 시를 채동선이 가곡으로 만드는 과정에 나타난 변화, 채동선 가곡의 가사를 이은상이 다시 쓰는 과정에 나타난 변화 양상을 일일이 비교했다. 이를 통해 정지용 시로 만든 채동선의 가곡이 이은상의 가사로 바뀌는 과정을 살폈다. 납・월북 시인의 빈자리를 대체하기 위한 재남 시인의 개사 행위가 1949년 이후의 검열 정책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지용이 납・월북 작가라는 물리적 귀속이 문제였지 정지용 시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은상은 정지용 시의 개별적 체험과 구체적 감각을 님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로 바꾸고 구체적 감각과 이미지를 소리 내 부르기 좋은 가사로 바꿨다. 하여 누구든 쉽게 감정이입을 하며 노래를 즐길 수 있었다. 이은상의 개사곡이 1950년대부터 대중적으로 향유된 결정적 이유다. 그로 인해 1960‒1980년대의 음악 교육을 통해 이은상의 개사곡을 듣고 자란 세대는 그리움의 정서를 단선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우리 가곡 중에는 연인과의 그리움뿐만 아니라 고향, 현실, 역사, 노동에 대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 노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 정부가 검열을 통해 그러한 노래를 교과서와 가곡집, 음반 등에서 삭제했기 때문에 일반인이 접할 기회 자체가 차단되어 왔다. 하여 단정 수립 후 남한에서 창작 향유된 가곡 대다수는 박화목 류의 고향에 대한 추상적 그리움을 노래하거나 이은상 류의 님에 대한 그리움과 연정을 표현한 내용으로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경향성은 냉전과 분단에서 비롯된 반공이데올로기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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