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이 논문은 최승자의 시에 나타난 오물의 의미를 재독해하고 오물이 시적 주체의 존재론을 보여준다는 것을 밝히고자 하였다. 최승자의 시적 자아는 쓰레기, 배설물, 병원체 등을 뒤집어쓰거나 자신을 오물 그 자체라고 표현한다. 오물은 최승자의 시에서 존재의 끝없는 부정성과 퇴락을 보여주는 방법일 뿐 아니라, 침윤의 방식으로 타자에게 관여하는 존재론을 수행하는 대상이다. 쓰레기나 배설물은 대상을 오염시키는 방식으로 타자에게 침윤하고, 병원균은 상대를 감염시켜 병들게 하는 방식으로 타자에게 침윤한다. 이때 오물은 시적자아의 삶에 대한 비유이기보다는 비가시적 단위에서 타자에게 확산하는 존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최승자의 시적 자아가 단순히 극단적인 죽음을 말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생의 의지를 표출한다는 방식의 독해를 넘어서, 오물 자체가 연결과 생성의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보고자 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이 논문은 그러한 방식으로 최승자의 1980년대, 1990년대 시를 읽는 방식을 재편하고자 한다. 그간 최승자의 시는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1980년대의 시편에 비해 1990년대의 시편은 시적 긴장감이 떨어졌다거나 신비 세계로 이행한 결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오물이 애초부터 확산성이 있는 존재이자 관계적인 존재라고 본다면, 1990년대의 시편에서 보여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순환적 인식 역시 침윤적 존재론으로 통합적 독해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