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신일선(申一仙;1912-1990)은 영화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획득한 첫 여배우 중 한 명으로서, 15세 때 데뷔작인 「아리랑」(나운규, 1926)으로 일약 ‘조선의 애인’에 등극했을 만큼 많은 인기를 모았다. 영화와 방송, 무대 등 조선의 초기 대중문화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 갑작스런 결혼으로 1차 은퇴(1927), 이후 1933년 컴백하여 음반 및 영화 활동을 하다가 생활난으로 기생이 되면서 2차 은퇴(1938)를 하고, 해방 후 나운규와 「아리랑」의 정전화 과정에 생존자로서 기여한다. 하지만 신일선에 대한 연구는 아직 진행된 바 없다. 본 논문은 「아리랑」 이후 「먼동이 틀 때」(심훈, 1927), 「아리랑 3편」(나운규, 1936), 필름 프린트가 현존하는 「청춘의 십자로」(안종화, 1934) 등 총 10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수종의 극 음반을 취입했으며 방송극과 무대 공연에 참여했던 신일선의 활동을 최대한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과정에서 그간 주목받지 않았던 신일선의 ‘실연(實演) 사진, ’ 즉 『백의인』(이경손, 1927)부터 「기생편: 수야(愁夜)」(박기채, 1937)까지 신문 연재 영화소설과 시나리오에서 그가 연기했던 작업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 초기 영화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스타 신일선의 면모가 드러나고, 특히 여배우로서 그의 삶과 스타 이미지가 담론화되는 방식이 비판적으로 고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