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본 연구는 박완서의 『미망(未忘)』을 여성의 역사소설 쓰기 전략의 사례로 재독한다. 조앤 스콧이 지적하였듯 여성을 ‘평등’한 역사의 일부로 가시화하면 보편으로 전제된 역사의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할 수 없게 되고, 반대로 ‘차이’를 지닌 별도의 범주로 설정하면 여성사를 역사 일반의 부록처럼 제시하게 된다. 역사 서술이 이 역설을 제시해야 한다면, 여성의 역사소설 쓰기는 이를 허구적 글쓰기의전략적 자원으로 삼을 수 있다. 이 글이 주목하는 실패는 인물들이 스스로 세운 의도와 기획에 비추어 좌절한 사례들이다. 잭 핼버스탬을 경유하여 본 연구는 이 좌절을 결핍으로 읽는 대신, 좌절 이후에 무엇이 남고 무엇이 이어지는가를 묻는다. 전처만의 마음기운, 홍씨의 살림 능력, 재득의 흙기운에 대한 앎은 의도와 기획에 따라 곧게 전달되는 대신, 그 전달이 실패한 자리에서 한 세대를 비껴 우발적으로 되살아난다. 이 ‘비스듬한 계승’은 젠더와 계급, 죽은 자와 산 자, 망각과 기억을 가로지른다. 나아가 분단으로 닿을 수 없게 된 고향을 소설로 불러내는 박완서의 소설 쓰기 자체가 그러한 계승의 실천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여성역사소설 연구의 출발점으로서 『미망』의 의의를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