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이 논문은 풍산 류씨 가문이 제작한 낙동강 하외 일대의 그림을 기록과 현전 작품을 바탕으로 학맥과 가문 현창의 맥락에서 고찰한 것이다. 1568년 류중영이 정주부사로 재직 중 제작한 《하외상하낙강일대도(河隈上下洛江一帶圖)》 병풍은 고향에 대한 애정을 담아 그려졌으며, 이황ㆍ정유길 등의 시문과 독서당 출신 문사들의 제영을 통해 한강과 낙동강의 지성 네트워크로 확대되었다. 이후 1578년 류성룡은 선친의 전례를 따라 가학의 핵심인 충효에 중점을 두고 《하외산수도(河隈山水圖)》를 제작했으며, 그 내용은 그의 「옥연십영」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두 작품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전란 이후 하외도 시화는 풍산 류씨는 가문의 위상을 회복하고 선조의 업적과 학맥을 연결하는 매개가 되었다. 이런 전통은 1828년 류철조에게 이어져 강원감사 정원용과의 교류를 계기로 이의성에게 《하외팔곡도》 병풍을 제작하게 했다. 하외도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풍산 류씨뿐만 아니라 지역 명문가들의 세거지와 주요 사적을 담아 퇴계 학맥 중심의 사족 관계망이 시각화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풍산 류씨 가문에서 제작된 세 점의 ‘하외도’는 모두 풍산 류씨의 학맥과 유교적 가치, 퇴계학의 실천적 계승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 방식은 16세기 류운룡과퇴계를 시작으로 고향을 그리는 정서적 표현에서 류성룡을 거쳐 효의 실현과 도학적 공간화으로 이어졌고, 19세기에는 영남 사림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문화사적 재구성으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그림들은 풍산 류씨를 중심으로영남 남인의 도학적 정체성이 시공간 속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전승했는지를 보여 주는 시각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