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이 연구에서는 나말여초 선종 승려 광자대사 윤다의 활동과 고려 초 광자대사비 건립 과정을 정치사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고려 초기 왕실 중심 세력 구도와그 변동 양상을 고찰했다. 윤다는 유학 경험이 없는 선승이었으나, 나말여초 혼란기 대안사에서 후백제 계열 재지 세력의 후원을 받으며 활동했다. 그는 당시 정치ㆍ사회적 세력 구도에 따라 후백제 세력과 협력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광자대사비문」에 잘 드러난다. 이후 윤다가 주석한 일대의 재지 세력이 고려에 귀부하면서 자연스럽게 고려 왕실과 연결되었고, 특히 왕건의 서남해 지역 우대 정책덕분에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왕건 사후 왕위 계승 과정에서 세력 간 알력이 발생했고, 윤다 사후에 탑비를 건립하는 데도 정치적 긴장이 반영되었다. 윤다의 탑비가 독자적 왕명이 아닌 조정의 령에 의해 세워졌고, 비 건립 시 재가 제자가 명확히 기재되지 않은 점은 당시 정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광종 초기 황보씨 세력이 대안사에 광자대사비 건립을 요청한 것은 이와 관련 깊었다. 고려는 국초부터 서남해 해상세력의 지원 없이 개국하기 어려웠으나, 광종 시기를 전후해 황보씨 세력은 이들의 성장에 위협을 느끼고 서남해 세력을 견제하려 했다. 윤다가 황보씨 세력의 과도한 개입에 부담을 느꼈다는 기록도 이런 긴장을 반영한다. 정종과 광종 간 빠른 권력 교체 후 서남해 세력은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이는 대안사를 지지하던 서남해 재지 세력의 몰락과 개경 중심 왕실 세력의권력 집중 결과였다. 광종 즉위는 초기 고려 세력의 개경 중심 결집을 상징하며, 광자대사비는 최종 왕위 쟁탈전에서 개경세력이 서남해 세력을 견제하고 권력을장악했음을 보여 주는 역사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