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서사연구
- P-ISSN : 1738-3188
- E-ISSN : 2713-9964
- Publisher : 대중서사학회
15개 논문이 있습니다.
이 글은 웹툰 <고래별>에 재현된 이성애 로맨스가 민족・젠더와 맺는 관계를 분석함으로써,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이성애 로맨스 서사에서 나타나는 특징과 한계가 무엇인가를 고찰한다. 이를 통해 경성을 배경하는 영화・드라마 속 이성애 로맨스의 전형성이 웹툰에서도 드러나는가를 살펴보고자 했다. 또한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다른 작품들과의 연관성을 바탕으로 <고래별>의 로맨스를 분석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자 시도했다. 우선 2장에서는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이성애 로맨스의 마스터플롯으로서 ‘식민지 로맨스’라는 개념을 살핀 다음, 그 연속선상에서 웹툰 <고래별>을 어떻게 검토할 수 있을지 논의하였다. 그리고 3장과 4장에서는 <고래별>의 장소 변화와 로맨스 전개 양상을 중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웹툰이 ‘식민지 로맨스’를 어떻게 변주하고 있는지를 검토하였다. 나아가 5장에서는 ‘인어공주 모티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작품의 이성애 로맨스가 이분법적 젠더 인식에 기반한 여성과 민족의 결합을 공고히 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논의하였다. 물론 웹툰 <고래별>은 ‘식민지 로맨스’의 전형적인 젠더 구도를 반복하여 재현하면서도, 왜 여성이 조선에 헌신하게 되었는가를 진지하게 탐구하면서 지금까지 당연한 전제로 제시되던 ‘조선으로서 여성’이 균열 없는 존재로만 그려질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성과를 거둔 작품이다. 사랑을 통해 여성 주체가 변화하는 양상을 세심하게 포착한다는 것이야말로 기존의 ‘식민지 로맨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 웹툰의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작품의 이성애 로맨스를 규정짓는 인어공주 모티프는 여성 주인공이 조선이라는 대의를 위한 숭고한 희생을 감수하여 스스로를 민족과 동일시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이성애 로맨스에서 여성과 조선의 결합이 여전히 공고하게 지속되도록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 연구는 최근의 아이돌 팬픽에 나타난 식민지 조선의 재현의 특징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대중이 인식하는 적법한 민족 구성원의 조건을 알아 봤다. 분석 결과 다음과 같은 특징이 발견되었다. 첫째, 독립운동에 헌신하는 것은 그 당위와 가치가 의심되지 않으며, 이것은 팬픽의 절대적 장르 관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낭만적 동성애와 결합한다. 대부분의 팬픽은 같은 아이돌에 소속된 주인공 두 명이 사랑하는 사이로서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서사를 전한다. 둘째, 독립운동하는 퀴어라는 새로운 민족 주체가 발견된다. 그동안 민족-국가의 상상에서 퀴어는 삭제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팬픽에서 퀴어들의 퀴어성은 확실히 명시되는 경향이 있고, 이 퀴어성은 그들의 적법한 민족 주체적 면모를 훼손하지 않는다. 이 팬픽들은 앞으로의 역사 서술에 퀴어 애국 주체의 포함을 요구하는 것이다. 셋째, 그럼에도 낭만적 사랑의 결합은 혈연적 민족과 국민의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믿음이 발견된다. 이 민족에 포함될 성원권을 얻기 위해 개인은 친일로 오염되지 않고, 육체적으로 무결한 조선인이어야 하며, 시스젠더여야 한다. 넷째, 이와 같은 민족-국가 인식이 지배적인 동시에 케이팝의 저변이 확대되고 구성원의 국적이 점점 더 다양해지며 팬들에게도 일본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사람들, 그리고 한국인과 그들의 관계를 새롭게 상상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따라 그간 미디어에서 틀에 박힌 듯 보여주던 나쁘고 잔인한 일본인과는 다른 일본인이 팬픽에서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이미 다문화 사회로 변화한 지 오래인 한국이 구성원에게 요구하는 인식의 확장이며 케이팝 팬들의 역사적 상상을 계속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 연구는 개별 팬픽 텍스트의 내용을 분석해서 식민지 시기에 대한 대중적 상상의 한 면을 규명했다는 의의가 있다. 이 연구를 통해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고 생성하는 대중 서사의 하나로서 팬픽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길 기대한다.
이 논문은 식민지 시기 경성을 재현하는 세 편의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아가씨>, <유령>에 나타나는 레즈비언 로맨스에 주목하며, 이 영화 속에 나타나는 레즈비언 관계가 향해가는 새로운 네이션에 대한 상상을 탐색해 보고자 했다. 식민지 경성을 재현하는 작품들은 ‘식민지 로맨스’라는 단어를 등장시킬 정도로 식민지 조선이라는 역사적 배경에 이성애 로맨스를 결합시키는 경향을 보여왔으나, 그 안에서 여성은 남성에 의해 구출되거나 남성을 조국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하며 대상화되어 왔다. 더불어 ‘식민지 로맨스’ 서사 안에는 투쟁해야 할 제국, 지켜야 할 조국이라는 대의만 있을 뿐, 새롭게 상상되는 네이션이라는 상 또한 부재한다. 한편, 이 글에서 다루는 이 세 편의 영화는 이성애 로맨스 구조의 바깥에서 여성들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네이션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경성학교>를 퀴어-호러, 그리고 SF의 상상력 속에서 읽어나가며 영화의 마지막에 떠오르는 주란의 환상 속 장면을 인간과 비인간 생명, 비생명 사물들의 이종들이 얽히고 연결되는 난잡한 돌봄 공동체의 잠재태로, 새로운 네이션에 대한 상상으로 읽어보고자 했다. <아가씨>의 경우, 여성이라는 몸의 대칭적 이미지를 통해 숙희와 히데코의 민족적, 계급적 차이뿐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삶의 차이, 개별성까지 지워버린 듯한 폐쇄적인 선실 속 섹스신을 통해 레즈비언 네이션으로의 회귀를 읽었다. 마지막으로 <유령>은 ‘식민지 로맨스’ 서사의 구조와 비슷하게 독립운동하는 레즈비언을 그려내면서 구체적으로 그들이 구축하고자 하는 새로운 네이션의 상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퀴어와 비-퀴어 존재들간의 연대를 통해 지속될 수 있는 독립운동을 끌어간다는 점, 그리고 교차성 페미니즘의 방향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포스트-퀴어네이션을 향한 보다 확장된 움직임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이처럼 이 논문은 퀴어영화 연구에서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탈식민의 가능성, 혹은 새로운 네이션에 대한 상상의 가능성을 레즈비언 로맨스와의 관계 속에서 탐색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지닌다.
본 연구는 웹소설 비평에서 매체성과 멀티모드성을 핵심 분석 범주로 설정하고, <카카오페이지> 연재작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를 사례로 삼아 구체적으로 고찰하였다. 기존의 웹소설 비평은 서사 구조나 캐릭터, 장르 변주와 같은 문자 중심 분석에 치중해 왔으며, 플랫폼 환경과 멀티모드 장치가 서사와 독자 경험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이에 본 연구는 디지털 플랫폼의 물질적・기술적 조건, 시각・언어적 형식 변형, 페이지 전환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웹소설이 구현하는 ‘감각적-서사적 복합 텍스트’의 특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해당 작품은 글자색 변화, 취소선・이탤릭체, 자간 조절과 띄어쓰기, 시각 자료, 페이지 전환 효과 등 다양한 모드를 결합하여 서사의 분위기, 인물의 심리, 장면의 긴장을 입체적으로 구현하였다. 특히 <카카오페이지>의 세로 스크롤 및 페이지 넘김 인터페이스는 이러한 장치들의 효과를 극대화하며, 독서 행위를 감각적・심리적 경험으로 확장시켰다. 이는 전통적 인쇄문학에서는 볼 수 없는 플랫폼-텍스트-독자의 삼각적 결합 구조를 형성하였다. 본 연구는 웹소설 비평이 문자 중심의 서사 분석을 넘어, 플랫폼 환경과 멀티모드 연출, 기술적・물질적 조건을 포괄하는 복합적 분석 틀을 구축해야 함을 제안한다. 이러한 접근은 디지털 서사 환경에서 독자의 ‘읽기’와 ‘체험’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과정을 포착하는 데 기여하며, 향후 웹소설 장르와 플랫폼 특성에 따른 멀티모드 구현 양상 비교 연구로 확장될 수 있다.
본고는 자전적 다큐멘터리가 팬덤 수행성을 드러내고 매개하는 방식을 고찰한다. 기존 팬덤 연구는 주로 텍스트 전유와 집단적 실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참여 문화에 집중해 왔으며, 다큐멘터리 연구는 공적 역사나 사회 운동을 기록하는 층위에서 주로 논의되었다. 팬 주체가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서사화하는 현상은 학문적으로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다. 본 연구는 이러한 공백에 주목하여 그 현상을 해명하고자 팬덤 수행의 자전적 다큐멘터리화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팬덤의 주체성과 윤리적 성찰이 어떠한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탐구한다. <에바로드>(2013)는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의 팬인 감독이 스탬프 랠리에 참가한 여정을 기록한 것으로, 그것을 통해 구성되는 팬으로서의 감정을 포착하고 서사화한다. 이 작품은 팬덤 실천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정동의 구조화를 통해 공동체 안에서 주체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하고 증명하는 수행임을 보여준다. <내언니전지현과 나>(2020)는 해체 위기에 놓인 온라인 게임 공동체의 대응을 기록하면서, 팬덤 수행이 제도적 변화를 견인할 만큼 파급력 있는 발화로 진화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성덕>은 아이돌을 향한 팬의 애정과 갈등을 다루며, 팬으로서의 정체성을 성찰하는 과정을 중심에 둔다. 이를 통해 팬덤 수행이 개인적 고백에 머무르지 않고 윤리적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세 작품은 실천, 수행, 성찰의 국면을 보여주며, 자전적 다큐멘터리가 팬덤 수행의 기록 장치이자 문화정치적 발화의 형식으로 기능함을 입증한다. 본 연구는 이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사실 기록이나 사적 기억의 도구로 한정하지 않고, 팬덤 수행과 교차하는 수행적 양식으로 조명한다. 이러한 시도는 다큐멘터리 연구와 팬덤 연구를 연결하는 학제적 지점을 마련하며, 개인 서사와 집단 기억, 수행성의 의미를 살펴보는 작업이다.
본고의 목적은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중심으로 초고령사회 속 노인의 고독이 갖는 의의와 역능을 고찰하는 데 있다. 오늘날 고독은 더 이상 환대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성공적인 노년의 방해물이거나 질병의 차원으로 취급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오늘날이야말로 무엇보다 고독이 요청되는 시대이며, 고독이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인생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이자 60대 중후반의 노인인 히라야마가 보여주는 고독의 수행 과정은 일반적인 외로움과는 차이가 있다. 외로움이 관계의 상실과 인간적 경험 그리고 사유 능력이 소진된 무기력 그 자체라면, 히라야마가 보여주는 고독은 자신을 동료로 삼아 존재의 개방성으로 나아가는 의지이다. 특히 히라야마의 반복된 생활과 유사 실어증과 거식증은 구성된 세계의 욕망으로부터 빠져나가는 방법이자 의지의 양태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행을 통해 그는 사물의 존재 자체에 접근하게 된다. 배제되고 타자화된 사물-대상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것들과의 교감을 통해 세계가 주지 못하는 감흥과 만나게 된다. 히라야마는 세계 내에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 또 다른 자신만의 충만한 세계를 구성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이 된다. 이처럼 영화는 고독의 존재 이유와 그 역능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본 연구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반 출연자들이 밝히는 자기 서사가 단순한 치유와 공감의 차원을 넘어, 주체를 드러내는 정치적 실천이 될 수 있음을 고찰한다.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이나 출연은 미디어 상품의 소비 이상의 문화를 향유하고 자신만의 사유 체계를 구성하는 미학적 실천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본 연구는 KBS Joy의 <무엇이든 물어보살> 프로그램을 그러한 문화의 장으로 보고, 사회적 통념이나 편견에 도전하는 주제를 가지고 출연한 이들의 서사를 분석하였다. 푸코의 ‘파레시아(parrhesia)’와 랑시에르의 ‘미학적 정치’ 개념을 이론적 틀로 삼아, 예능 프로그램 향유에 담긴 정치 철학적 의미를 탐색하였다. 사회적 금기, 제도적 억압과 관련된 출연자들의 말하기를 분석한 결과, 이들의 고백에는 진실을 말하는 용기와 윤리적 책임, 권력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말하기의 정치성이 내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예능 프로그램 속 일반인의 자기 서사를 미학 정치의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대중문화 연구와 정치철학, 미디어 연구의 교차점을 확장하고, 방송 예능을 공적 담론의 장이자 정치적 실천의 공간으로 재해석했다는 데 의의를 둔다.
본 연구는 <오징어게임3> 6부작의 주요 국면에서 모성 희생 서사가 세 번이나 반복되는 이례적 현상에 주목한다. 이러한 모성 희생 서사의 도구적 활용 양상과 스펙트럼을 고찰하기 위해, 본 연구는 장면・대사・미장센 중심의 영상 텍스트 분석에 다음 이론을 교차 적용한다. 첫째, ‘영웅의 여정’의 작동 원리에서 주변인 희생의 도구성을 점검한다. 둘째, ‘냉장고 속의 여인’ 및 ‘프리징’ 담론에서 희생의 성별 편향을 추적하고, 모성의 사회적 발명과 재각인 관련 논의를 검토한다. 셋째, ‘어머니 원형’과 ‘양가성’ 및 ‘극성 전환’을 활용하여 모성 서사 스펙트럼의 확장 가능성을 탐색한다. 분석 결과, 장금자는 비녀를 매개로 양가적 어머니 원형의 극성 전환을 보여주고 혈연・비혈연을 가로지르는 선택 끝에 심리적으로 붕괴하면서, 유언으로 영웅에게 새 소명을 부여하고 각성시킨다. 김준희는 영웅의 여정의 핵심 장치인 아기를 출산하고 자신의 희생으로 222번 참가 자격을 아기에게 승계하는 도구로 기능하며, 좋은 어머니 원형이자 도상으로 그려져 주제 고양 장치가 된다. 남겨진 여자 아기 역시 선택과 발화 능력이 결여된 채 사실상 프리징된다. 강노을은 총을 통해 가장 강력하고 빈번한 양가적 어머니 원형의 극성 전환과 비혈연 확장성을 보여준다. 강노을은 주인공의 최종 선택을 목격하고 자살을 중단하여 프리징 변주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이 역시 영웅의 영향력과 여정의 의의를 증거하는 도구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냉장고 담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종합하면, 세 모성 희생 서사는 데스게임의 일반적 사망과 달리 영웅의 여정 원리 작동을 위한 핵심 장치로 활용되며, 이때 저마다 고유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텍스트와 이론에 준거하여 모성 희생 서사의 도구성 비판과 스펙트럼 탐색을 병행함으로써, 향후 모성 서사 창작・비평 담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다.
본 연구는 한・일 <리틀 포레스트>가 동시대 귀향 서사의 전형성을 넘어서는 지점을 영화의 형식 미학적 전략에 주목하여 분석한다. 두 영화에 대한 기존의 사회문화적 비교 연구가 영화의 ‘내용’에 집중한 것과 달리, 본 연구는 서영채의 ‘두 번째 풍경’, 지그문트 크라카우어의 ‘물질적 현실/지표성’, 이푸 투안의 ‘공간/장소’ 개념을 통합적 분석틀로 삼아, 두 영화가 상이한 시・청각적 설계를 통해 어떻게 주체 재정초의 다른 경로를 제시하는지를 규명한다. 일본 <리틀 포레스트>는 노동과 자연의 리듬을 강조하며 화면의 지표성을 높인다. 이를 통해 주인공 이치코는 외부 세계의 물질성과 감각적 접속을 통해 ‘두 번째 풍경’을 사건으로 체험하고, 이미 존재하는 ‘장소’에 자신을 재정초한다. 반면, 한국 <리틀 포레스트>는 환경의 지표성을 약화시키고 주인공 혜원의 내면으로 초점화한다. ‘두 번째 풍경’은 ‘엄마의 부재’라는 내면의 결여를 통해 지연되며, 혜원은 추상적 ‘공간’ 속에서 기억과 관계를 재구성하여 점진적으로 자신만의 ‘장소’를 만들어간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두 영화가 단순히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 주체와 세계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두 가지 상이한 경로를 상상하고 있음을 밝힌다.
본 연구에서는 2020년 6월에 연재가 종료된 네이버 시리즈의 Seri(글)와 비완(그림)의 웹툰 <그녀의 심청>을 대상으로 하여, 댓글 분석 방법을 통해 전통으로부터 탈주한 서사에 대한 수용자의 평가와 반응을 분석하였다. 웹툰 <그녀의 심청>은 전통 서사에 내포된 성 고정관념, 남성 중심 서사, 효도 규범, 권위주의적 질서에 대한 탈주한 작품으로 간주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묘사된 심청은 외모와 효행, 여성성에 대한 기존의 이상적 규범을 거부하고, 여성 간의 연대와 자율성에 기반한 새로운 서사를 이끌어 간다. 또한 종교 및 부권적 권위에 대한 환멸적 묘사를 통해 전통 질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며, 젠더 중심 서사구조의 재구성과 확장을 시도한다. 본 연구는 댓글 분석을 통해 수용자들이 웹툰 <그녀의 심청>에 나타난 탈전통적 서사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평가하는지를 고찰하였다. 수용자들은 특히 여성 인물에 대한 공감과 연민, 남성 인물에 대한 비판과 혐오를 통해 전통적 성별 권위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이들은 고전 서사의 이데올로기를 재고하며, 현실 사회의 성별 불평등 구조에 대한 성찰로 나아갔다. 분석을 통해 수용자는 고전을 단순히 익숙한 이야기로 소비하지 않고, 작품을 계기로 젠더 질서, 도덕규범,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며 적극적으로 의미를 재구성하고 있었다. 특히 고전 속 이상화된 효녀 상과 남성 중심 권위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고전이 절대적인 도덕 모델이 아니라 시대와 맥락에 따라 재조명되어야 할 문화 텍스트임을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수용자 반응은 웹툰이라는 장르가 오락을 넘어, 고전 서사와 현대적 담론을 연결하고 전통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유발하는 유효한 문화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글은 한국의 대표적인 남성 영화스타인 신성일의 페르소나가, ‘청춘’, ‘로맨스’, ‘모더니티’, ‘영화’의 네 요소를 중심으로 구성된 것임을 밝히고, 그것이 시간의 경과 속에서 변화・지속했던 과정을 역사적으로 기술한다. 1960년대 초중반 청춘영화의 시기에, 그의 페르소나는 로맨스와 물질적 모더니티가 교차하는 성공에 대한 욕망과, 이를 매개하는 청춘 특유의 정동을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1960년대 후반 예술영화적 전환의 시기에, 청춘의 페르소나는 상호 모순적인 두 방향을 동시에 향했다. 한편으로 그는 성공적인 부르주아 남성의 형상을 띠어가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함축하는 로맨스와 물질적 모더니티에 대한 성찰이 이뤄졌다. 이는 청춘의 페르소나가 모더니즘적으로 재생산되는 과정이었다. 1970년대 침체의 한국영화계가 여성을 전경화했던 시기, 그는 가장 선호되는 상대역이었다. 모더니즘적 거리를 통해 보다 유연해진 로맨스의 역량은 그가 청춘 여성들의 연인이 되는 것을 가능케 했고, 여전히 그에게 부여되던 부르주아 남성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그의 페르소나가 이전의 형태를 지속할 수 있게 했다. 1980년대에, 쇠퇴기의 스타로서 그는 과거의 한국영화를 표상하는 존재가 되어 갔다. 이 시기 동시녹음 영화들은 영화사적 존재로서의 그의 페르소나를 해체했다. 그의 페르소나를 규정하는 개념 중 하나는 ‘자유’이다. 청춘으로 표상되는 근본적 자유와, 이를 가정과 시장이라는 사적영역으로 포획하는 자유주의적 자유 사이의 긴장이 그의 페르소나를 주조한다. 따라서 신성일은 자유주의적 사적 영역의 남성표상으로 규정될 수 있다. 그는 조국과 민족으로 대표되는 공적인 것에 대한 당대의 영화적 상상력과 구별되는, 특유의 의미와 정동을 구축하며, 산업화 시기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사적 영역의 남성상으로 구축되어 왔다.
이 논문의 목적은 국내 인기 웹소설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이하 <어바등>)의 독특한 시간성과 공간성을 분석하고, 그것이 작품 속 주요 인물들의 성격 및 전반적인 주제 의식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규명하는 것이다. 이 텍스트의 시공간적 배경은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의 크로노토프 개념에 준할 정도로 서사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에 이 논문은 <어바등>에서 일반적인 ‘회빙환’ 서사와 구별되는 독특한 시공간성이 재현되고 있음에 주목한다. 가령, 소위 ‘타임 루프’라고 일컬어지는 이 작품의 비선형적 시간성은 주인공의 능력 신장이나 외부적인 상황의 개선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하면서, 자신이 위치한 수심 3000m 아래 심해 기지의 물리적 구조 및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점차 확장해 나갈 따름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심해 기지로부터 탈출해야 한다는 그의 목적은 심해 기지에 대한 탐험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지며, 독자들은 그의 위태로운 탐험이 ‘실패한 유토피아’인 우리의 지금-여기에 관한 철저한 인식적 지도 그리기(cognitive mapping)에 다름 아님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일찍이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이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개인이 처한 방향 상실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정치적 실천으로 제시했던 것이기도 하다.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 논문은 <어바등>이 국내 웹 문학의 서사적 실험과 동시대적 시대감각에 근거한 담론 형성이라는 양 측면에서 중요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본 논문에는 <어바등>의 ‘회귀’ 요소가 최근 웹소설 시장에서 유행한 서사 장치를 단순히 차용한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강조하는 데 쓰인 사례임을 이론적으로 규명했다는 의의, 그리고 양질의 텍스트를 통해 국내 웹소설 연구의 시급한 과제인 작품론의 공백을 채운다는 연구사적 의의가 있다.
1960년대는 ‘양서(良書)’의 시대였다. 출판사는 ‘양서’의 생산으로 상징투쟁에 참여했고, 정부와 함께 ‘양서’를 장려하는 제도와 정책을 강구했으며, 대중도 ‘양서’ 읽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그러나 ‘양서’를 중심으로 한 교양의 문화정치와 문화적 근대화 과정에서도 ‘악서(惡書)’로 낙인찍힌 책은 끊임없이 생산되고 소비되었다. 이 연구는 번역된 ‘악서’에 주목하여, 그것이 문화적 정당성을 박탈당한 과정과 그 사회문화적 의미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번역서, 특히 ‘악서’의 생산과 유통 과정을 미디어 사회문화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신문·잡지·정부 자료와 당시 번역서를 통해 관련 담론과 실천을 분석한다. 당대 ‘악서’의 기준은 내용적·장르적 통속성, 중역이나 무단 복제 등 비윤리적 생산과 유통, 원천 문화의 일본성에 있었다. 일본 대중소설 번역물은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대표적인 ‘악서’로, ‘반일정책’이 막을 내린 4·19 이후 출판시장에 범람하면서 식민지 트라우마를 자극했다. 그러던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그 기준은 재편되었다. 이 지정학적 변화는 문화적 정당성의 기준을 ‘반일’이라는 민족적 감정에서 저작권과 근대적 출판 윤리의 문제로 이동시키는 계기였다. 이와 동시에 그것은 ‘양서’ 체제에 잠재해 있던 국가의 교양주의적 통제와 시장의 상업주의적 욕망 그리고 대중의 쾌락에 대한 요구 사이의 긴장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이 글은 ‘악서’의 문화정치가 지정학적 질서, 문화적 지배 집단의 기획, 시장 논리, 독서 욕망의 상호작용 속에서 역동적으로 발현되고 있었음을 밝힌다. 더불어 기존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악서’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양서’ 체제의 한계와 균열, 그리고 민족문화와 근대화라는 담론 체계 바깥으로 향하던 상업주의와 대중의 욕망을 조명한다.
로맨스 판타지는 여성의 욕망과 욕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장르다. 로맨스 판타지 장르가 확고히 자리를 잡아가면서 장르 규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다른 방식으로 전형성에서 벗어나는 ‘여성’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시도가 드러나고 있다.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 ‘여성’의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행위를 주목하는 연구가 많지만 로맨스 판타지 장르를 ‘여성서사’의 가능성으로 보는 연구는 드물다. 여성 주인공의 주체성과 행위, 악녀의 재정의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여성서사로서 결격 사유로 꼽히는 이성애, 가부장제, 계급이 온전한 사랑의 결합이라는 가치 아래 쉽게 허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여성서사로서 읽히는 경우가 많다. 상호교차성은 서로 맞물린, 다층의, 동시발생적이고, 종합의 불평등한 사회를 형성하는 억압의 구조와 작동을 분석할 수 있는 연구 방법이다. 하나의 틀로만 현상을 분석하지 않는다. 현상에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를 살피는 것이다. 상호교차성을 통해 로맨스 판타지 장르를 분석한다면 여성 취향의 소설로만 수렴되는 것에서 새로운 여성서사의 가능성이 있다. 또한 로맨스 판타지 작품 속 배제되거나 주변부에 머무르고 있는 여성 인물들을 주목할 수 있다. 따라서 로맨스 판타지 장르를 새롭게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
2020년대 한국 문학계에 불어닥친 SF 열풍은 단순한 장르문학의 확산을 넘어, 21세기 생명공학과 신자유주의가 결합한 새로운 현실에 대응하는 문학적 실천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본고는 한국 SF비평의 양상 속에서 중요한 SF비평가로 자리잡은 셰릴 빈트의 『21세기 사변소설의 생명정치적 미래』(2021)를 분석하며, 사변소설의 비평적 방법론과 포스트휴먼 형상들의 가능성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책에서 빈트는 생명과 비생명, 주체성과 객체성의 경계가 해체되는 현대적 조건을 ‘에피바이탈리티’로 개념화하며, 마르크스의 ‘실질적 포섭’ 개념을 생명정치 영역으로 확장한다. 푸코의 19세기 생명정치 형상을 대신하는 21세기 형상들로 ‘불멸의 그릇’, ‘살아있는 도구’, ‘생명 기계’, ‘예비 부품’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적 생명정치의 작동 메커니즘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잉여 생명력 개념을 통해 포스트휴먼의 대안적 가능성을 탐구한다. 또한 빈트는 ‘사회기술적 상상’과 ‘약속의 미래 담론’ 개념을 통해 사변소설을 인식론적 도구로 재정의하며, 사변소설이 단순히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맞서 현실 자체를 구성하고 대안적 미래를 상상하는 도구라는 점을 제시한다. 이러한 내용은 21세기 SF 비평의 가능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국 SF 비평이 서구 중심적 관점을 넘어 한국적 현실의 특수성과 보편적 미래 전망을 동시에 담을 수 있는 방법론적 토대가 되는 데 큰 영향을 준다.